김현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박사, 
전 서울대학교병원 외래교수,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저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현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박사, 전 서울대학교병원 외래교수,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저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아이는 천천히 팔소매를 걷어 보였다. 하얀 팔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가로로 그어진 칼자국들이 있었다. 사회성이 없어 힘들어하는 큰애에 비해 둘째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둘째가 무너지고 있었다.”(김현아 에세이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중에서)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김지수 마인즈 커넥터 (Minds Connector) 전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위대한 대화’ 저자

정신 질환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은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쓴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김현아를 만났다.

걸어 들어오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뿐사뿐 기척 없이 고요한 내향인이었다. 가을볕 아래 멈춰 선 그 앞에서, 사진작가가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자, 어깨가 소라게처럼 움츠러들었다.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열변을 토하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침착하고 치밀하게 뇌 질환자 딸과의 동행을 글로 남길 수 있었을까. ‘내 새끼 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아픈(양극성 인격 장애) 아이의 엄마로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현아 교수의 저서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에는 정신 질환자 가족으로 사는 구체적인 애환과 뇌 질환의 스펙트럼을 파고드는 의사로서의 확대경이 교차하고 있다. 김 교수의 둘째 딸 안나는 7년 동안 정신 병동에 16번 입원했다. 카카오톡 메시지 확인 표시가 바뀌지 않아도 내 아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삶. 그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에 달관한 초연한 얼굴로, ‘공포와 취약함이 삶 그 자체’라고 얘기하는 의사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다음은 일문일답.

김현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현아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지금, 안나의 상태는 어떤가.
“요맘때는 늘 입원했는데, 지금은 잠잠하다. 자기 집에서 음악 작업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틈틈이 한다. 스물여덟인데, 여전히 아기 같다. 병원비는 다 부모가 내는데도(웃음)… 아이가 자존심 때문에 증세가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서, 일상이 늘 조마조마하다.”


들릴 듯 말듯 고요한 목소리로 김현아가 웃으며 말했다. 큰딸은 적응 장애, 둘째 딸은 자살 충동과 자해로 7년째 보호 병동을 오가는 양극성 장애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찌든 기색 없는 해사한 얼굴이었다.


양극성 장애는 어떤 병인가.
“양극성 장애는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이다. 우울증은 본인이 가장 힘들고 조울증은 옆 사람이 함께 힘이 든다. 20대 초반에 가장 흔하게 발병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좋아진다. 유사 증상 환자까지 포함하면 유병률을 6.4% 정도로 본다. 참고로 천식 유병률이 4%, 위궤양 3%, 우울증은 30%다. 통계로 보면 양극성 환자는 천식보다 흔한 거다.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증상과 중복되는 지점도 있다.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이 대부분 문제를 주변 사람에게 투사하면서 환자와 부모가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공격성도 없고 부모 탓도 안 해서 예후가 좋은 편이다. 주변을 보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해 경찰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


안타깝게도 양극성 장애 환자는 2000년대 들어서 성인은 두 배, 젊은 층은 4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치료는 요원한가.
“우리 가정은 7년이 됐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처럼 약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 애는 약 먹으면 3일을 못 일어날 때도 있다. 뇌라는 복잡계를 이해할 수 없으니 어렵다. 힘들어도 가족이 정서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다.”

견디기 쉽지 않았을 텐데, 겉으로는 나보다 더 평온해 보인다.
“사회적으로 보면 남편과 나 같은 안정된 사람들은 냇물 따라 흘러가는 인생을 산다(김현아는 류마티스, 남편 정청기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다). 그러다 50대에 이르러 망망대해를 만났다. 내 집안에 공개할 수 없는 법적 송사가 16개가 걸렸고 지금은 그중 14개를 해결했다. 큰애는 성장기 내내 괴롭힘을 당한 적응 장애였지만, 둘째가 뒤늦게 자해와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양극성 장애가 발병해서 이중고를 겪었다. 그럴 땐 가족이 뭔가 싶다. 이 소용돌이에서 내 탓 네 탓 했으면 깨졌을 텐데, 다행히 우리는 함께 잘 헤쳐가고 있다. 나와 내 남편이나 둘 다 매우 낙천적인 성격이다.”

성경 ‘창세기’에도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은 이브 탓부터 한다. 남 탓을 하는 죄의 뿌리가 깊은 데, 거기 빠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남 탓이 나쁜 건 자기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몹쓸 부모를 만나도 성인이 되면 선을 긋고 자기 기준을 세워야 한다. 뇌 회로의 문제겠지만, 남 탓 특히 가족 탓을 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남 탓은 미성숙의 시그널이다.”

하지만 병원의 카운슬러(상담사)들은 성장기에 겪은 트라우마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부모와 관계를 체크하지 않나.
“글쎄, 양극성 장애도 열 명, 백 명 다 증상이 다르다. 진단도 오락가락한다. 양육 환경 탓을 하면 엄마들이 제일 불쌍해진다. 내 아이 주변에 시설에 간 아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 아이, 뛰어내린 아이가 다 있다. 예후가 나쁠수록 1부터 10까지 부모 탓을 한다. 어릴 때 종아리 맞은 것부터, 말로 받은 상처⋯ 하나하나 애매한 영역까지 들춰내면 전부 부모 잘못이 된다. 하지만 부모는 의식도 못 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은영 선생의 ‘금쪽 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이 기여한 부분이 ‘내가 양육받은 방식으로 아이들 키우면 안 된다’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과하게 책임을 물으면, 엄마가 또 깊은 우울로 간다.”

가장 큰 발병 이유는 뭔가.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크다. 자살, 알코올…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가족 백그라운드가 있다. 면역 질환보다 정신 질환이 유전 요인이 더 많다. 넓게 퍼져 있다가 강박, 편집증 성향이 한데 모이는 거다. 누구나 그런 성향을 미세하게 갖고 있다가 자살 등 문제 행동이 드러나면, 진단될 뿐이다. 요즘엔 사회적 요인도 커지고 있다.”

어찌 보면 남들은 부끄러워 감추는 집안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어떻게 용기를 냈나.
“통계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에 정신 질환이 폭발한다. 인생 초창기에 학교도 못 다니고 무너지고 타격받는 거다.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딛고 자립하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치료에 중요한 건 약보다는 생활 자립이다. 플렉시블한 일자리와 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

나는 장애는 낙인이 아니라 인생의 한 모습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안나가 병세가 나아질 때까지 국가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 등급을 신청했는데, 매번 거절당했다. 자살, 자해, 보호 병동 입원 기록, 진단서를 첨부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꾀병도 아닌데⋯’라며 아이도 속상해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책을 써서 공론화하는 것에 가족 모두가 동의했다. ‘정신 질환자들이 일하고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일반 사람에게도 숨 쉴 만한 환경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어려움을 공중의 문제로 넓혀서 사회 전체가 수혜자가 되도록 한 현명한 ‘게임 체인저’들을 나는 그동안 여럿 보았다. 대체로 그들은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였다. 조금만 삐끗해도 ‘내 새끼 지상주의’나 ‘괴물 부모’로 빠질 수 있는 세상에서, 그들 가족이 낸 용기가 고마웠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별히 20대 여성들의 정신 질환 유발률과 자살률 증가 속도가 소름 끼칠 정도로 가팔랐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우울증 등의 기분 장애는 2020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의 두 배 수준이고 특히 20대가 가장 많았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43% 늘었다. 2015년 이후 남성 자살자가 19.7% 증가한 데 비해 여성 자살자는 64.5% 증가했다. 젠더 미디어 ‘슬랩’은 ‘조용한 학살이 시작됐다’라는 영상을 통해 1990년대생 여성들이 목숨을 끊고 있는 현상을 조망하기도 했다. 대체 생물학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의 암울한 연관 임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 사람이 아프면 개인 문제지만, 여러 사람이 아프면 사회 문제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자랄 땐 평등하게 컸는데 졸업해 보니 이 사회는 그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거다. 일자리도 급여도 차이 나고, 폭력적인 환경을 접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다. 우울이 시대의 정서처럼 번져가고 있다. 20대 여성들은 그렇게 디스토피아적인 우울로 무너지는데 정부는 아이 낳으면 돈 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지뢰계가 뭔가.
“밟으면 지뢰처럼 터져서 ‘지뢰계’라고 부른다. 딸아이가 말해줘서 알았다. 버블 경제 붕괴 후에 부모와 연이 끊어진 아이들이 거리로 나온 거다. 양극성 장애, 경계성 인격 장애 아이들이 화장 진하게 하고 자해 상처를 드러낸 채 번화가 전철역에 모여 노숙하는 광경이 흔하다. 그들 사이에서 자해도 점점 늘고 있다.”

자해 얘기를 해보자. ‘죽고 싶지 않지만 자해는 하고 싶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고대 이집트에도 자해 기록이 있다. 손목을 칼로 긋거나 하는 걸 통해서 통제감, 존재감을 느끼는 거다. 영화 ‘세 자매’를 보면 노래 부르다 말고 마이크로 자기 머리를 치는 남자아이한테 주인공이 다가가서 ‘그렇게 하면 좀 시원해지죠?’ 하면서 공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해하면 좀 터지는 느낌이 있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날카로운 것만 봐도 충동이 일어났다. 커터 칼을 다 없애고 칼을 파는 문구점도 피해야 한다고 주지시켰다. 영국 통계에 따르면, 16~24세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자해를 경험한다고 한다. 요즘 심각한 마약 문제도 자해의 연장선에서 심리적 고통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접근해야 한다.”

딸의 손목에 그어진 칼자국, 자살 시도 흔적을 처음 보았을 때, 어땠나.
“(미소 지으며)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자기 자식일 때는 완전히 다르다. 자해 이후 지속해서 자살 충동과 시도가 반복된 후에도 우리 애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다. 그거 아나? 아픈 아이들은 괜찮은 척하는 데 선수다. 그래서 ‘도와 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파급 효과처럼, 충동적으로 자살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그린 만화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오픈되는 바람에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 정도인데 ‘극단적 선택’이라는 회피적 표현으로 ‘자살 왕국’을 덮고 갈 수 있을까?”

자녀는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세상에서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자기 삶을 사랑하며 살았으면… 나는 아이에게 그것만 바란다. 자식은 부모에 의해서 세상에 던져졌다. 그래서 나는 늘 미안하다. 너무 삭막한 세상에 던져놓고 살라고 해서. 우리 아이에게서 시작했지만, 우리 아이만의 문제는 아닌 거다.”

아픈 자식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 될 만한 팁이 있을까.
“정신 질환 아이도 천식이나 면역 질환과 다를 바 없는 환자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무엇보다 재정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부모 세대가 부동산값 폭등 같은 과실을 취해서 너희 세대가 가난해진 건 불공평하니, 그건 도와줄게. 하지만 나머지 생활은 네가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지속해서 가르쳐야 한다. 아픈 가족과 생활은 부단한 선 긋기의 삶이다. 이걸 안 하면 부모도 아이도 불행해진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자기 자존감과 생활 감각을 지켜야 한다.”

요즘 안나는 자기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고 있나.
“우리 애는 손재주가 많아서 수선실에서 몇 시간씩 일할 수 있다. 찢어진 옷도 잘 꿰매고, 솜씨가 좋다. 아프지 않을 때는 그렇게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를 벌고, 남는 시간에 음악 작업을 한다. 목표가 높으면 자괴감도 커질 테니 무계획으로 그날그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