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는 위기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어야 한다.”

최근 신간 ‘같이 식사합시다’를 펴낸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은 12월 4일 인터뷰에서 한국 정치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신간 ‘같이 식사합시다’는 1988년 23세의 나이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3선 국회의원,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 총장의 인생 이야기를 10가지 음식 에세이 형태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신간 출시 열흘 만에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총장은 “지금도 국민은 전쟁 같은 삶을 견뎌내고 있다”며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다음 국가 목표(가치)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돼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연세대 법학, 전 국회의원(故 노무현 전 대통령)보좌관,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7·18·21대 국회의원, 전 강원도지사,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같이 식사합시다’ 저자 사진 심민관 기자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연세대 법학, 전 국회의원(故 노무현 전 대통령)보좌관,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제17·18·21대 국회의원, 전 강원도지사,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같이 식사합시다’ 저자 사진 심민관 기자

‘같이 식사합시다’는 어떤 책인가. 

“일종의 정치 벤처 신화 기록물이다. 최근 (12·12 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화제다. 그 사건 발생 이후에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학생이었던 내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함께 꿈을 이뤄갔는지에 대해 담은 작은 기록물이 이 책이다.”


책에 첫 번째 등장한 음식이 새우 라면이다. 

“시간 순서대로 적다 보니 새우 라면이 맨 앞에 등장했다. 1986년 대학생이던 21세 때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수배된 적이 있다. 당시 수배를 피해 천안에서 막노동 일을 하면서 지냈는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인근 저수지에서 민물새우를 잡아 와 라면을 끓였다. 아직도 그때 그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청진동 오므라이스다. (노 전 대통령의 선거 낙선 후 자금 문제로) 내가 식당을 열어 장사할 때 메인 메뉴였다.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는 주로 여성이 선택한다는 점에 착안, 여성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메인 메뉴로 밀기로 한 것이다. 나의 첫 자영업 도전이었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은 선거에 여러 번 떨어졌었다. 1992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떨어졌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낙선했다. 특히 1996년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에 출마해 떨어지고 나선 정치를 포기하려고 했다.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지금은 15% 이상 득표한 후보에 대해선 상당 부분의 선거 비용을 국고에서 보조해 주는 제도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정치를 계속하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당시에는 선거운동원(당원)들 밥 먹이고 이런데 돈이 많이 들었다. 고민 끝에 청진동 해장국 골목에 약 265㎡(80평) 규모의 ‘소꿉동무’라는 식당을 열었다. 우리에겐 이 장소가 일종의 아지트 역할을 했는데, 당원들 밥도 여기서 먹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심기일전해 다시 정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곳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처음 만났나.

“1988년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보좌관 면접을 봤다. 당시 3시간 동안 노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고, 내게 보좌진 구성의 전권을 줬다. 그때 내 나이가 23세였다. 당시는 학생 운동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간다고 하면 변절자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도전했을 때 허삼수라는 어려운 상대 후보를 선택해 출마한 점이 인상 깊었다. 또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선 국회로 가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한 정치 혁명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봤다. 이것이 내가 노 전 대통령 국회 보좌관이 되기로 결심한 배경이다.”


노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자기 의견과 다른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할 줄 아는 리더였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장관급 인사 초안을 보고 몇 사람을 반대하는 직언을 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내가 인사권자’라면서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전화를 해서 ‘너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잤다. 이 부분은 네 생각이 합리적인 것 같다’며 내 의견을 일부 수용해 줬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모든 인간과 조직은 오류를 범한다.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제일 중요한 것이다. 오류를 발견할 촉수가 없는 조직은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법시험 출신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사법시험이 폐지되자,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좀 더 제도를 보완하려고 노력했을 것 같다. 로스쿨 제도의 근간은 유지하더라도 방송통신대나 야간 로스쿨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비가 너무 비싼데,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문을 좀 넓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인재 유입이 로스쿨의 초기 목적이었는데, 그 부분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해 아쉽다.”


정치인으로서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나.

“국민이 행복한 나라다. 국민의 삶의 질이 높은 나라다. 이를 위해선 일대(一大)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쓴 신간 ‘같이 식사합시다’. 사진 시공사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쓴 신간 ‘같이 식사합시다’. 사진 시공사

구체적으로 어떤 대전환인가. 예를 든다면. 

“우선 국회를 혁신해야 한다. 생산성 높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본회의가 미국 하원은 연평균 100회 열리는 반면, 한국 국회는 연평균 37회 열린다. 전체회의는 미국 하원이 연평균 3000회 열리지만, 한국 국회는 500회에 불과하다. 미국 하원이 한국 국회보다 여섯 배나 생산성이 높은 것이다. 국회 생산성을 높이려면 정치인 성적표를 만들어서 정치인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고 찍어주는 이미지 시대는 끝내야 한다. 정치인 성적표가 만들어지면 정치인은 싸울 겨를이 없어질 것이다. 성적표를 채우기 위해 숨 가쁘게 열심히 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치인 성적을 평가할 데이터는 국가가 제공하고, 평가 기준은 학계와 언론이 만드는 게 좋다고 본다.”


작년 7월 국회 사무총장 취임 후 여러 성과가 있었다. 스스로 평가한다면.

“일류 국회가 없으면 일류 국가가 안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똑똑한 국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안의 쟁점은 무엇이고, 어떤 어려움이 예상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다른 나라 사례도 있을 텐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려면 이에 대한 근거 데이터 비교가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가 인공지능(AI) 국회 초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배경이다. AI 국회는 국회에서 논의된 모든 자료를 AI가 분석해 국회가 의사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분석 시스템이다. 그리고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회의)를 국민이 유튜브로 볼 수 있도록 중계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난 1년간 1400여 개의 세미나가 국회에서 열렸다. 온라인에서 5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것도 임기 중 이뤄낸 성과다.”


성장과 복지도 중요한 화두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인데,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2위다. 진보는 성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보수는 복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성장의 목표는 결국 국민의 삶의 질을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국가가 성장하려면.

“국가가 성장하려면 결국 경제력이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경제력은 기술력에서 나오고, 기술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미⋅중 패권 경쟁의 본질도 결국에는 기술 전쟁이다. 각 국가가 어떤 인적 자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판이 난다. 사람의 역량이 극대화되는 나라가 성장의 힘이 있다.”


지금 같이 식사하고 싶은 사람은. 

“매일 오전 5시에 집에서 나오는데 배드민턴 클럽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매일 새벽에 나와서 배드민턴 경기장을 청소하는 85세 할아버지가 있다. 이분에게 매일 청소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은 적이 있는데 ‘빗자루질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 대답에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분과 식사하고 싶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