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사는 미생물이 아토피 피부염이나 습진 환자가 느끼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질병 치료제로 미생물이 작용하는 분자를 차단하자 가려움증도 사라졌다. 아토피 피부염이나 습진 환자를 치료할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아이작 치우(Isaac Chiu) 교수 연구진은 11월 22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셀’에 “피부에 사는 박테리아인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이 신경세포에 직접 작용해 가려움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가려움증 촉발하는 점화 플러그 확인

아토피 피부염은 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하는 만성 염증 피부 질환으로, 소아의 20%가 걸리지만 마땅한 치료제는 없는 실정이다. 환자는 극심한 가려움증에 피부를 긁어 상처를 입는다. 피부 과민 반응까지 생겨 부드러운 양모 스웨터에 닿아도 통증을 느낄 정도다. 연구진은 황색포도상구균이 피부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단백질을 과도하게 작동시켜 극심한 가려움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는 박테리아 효과를 확인하고, 작용 과정을 분자 단위에서 확인한 다음, 치료 방법을 찾는 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생쥐 피부를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황색포도상구균에 노출시켰다(MRSA). 쥐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겪고 피부를 심하게 긁었다. 황색포도상구균에 노출된 쥐는 일반적으로 가려움증을 유발하지 않는 자극에도 과민 반응을 보였다. 만성 피부 질환이 있는 환자가 양모 스웨터에도 긁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과 같다.

치우 교수는 박테리아가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단계적 접근을 시도했다. 연구진은 미생물이 피부에 닿으면 방출한다고 알려진 효소 단백질 10가지에 주목했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효소 단백질을 하나씩 없애면서 쥐의 반응을 살폈다. 그 결과 V8 단백질분해효소가 단독으로 가려움을 유발하는 것을 알아냈다. 피부염 환자는 건강한 사람보다 피부에 황색포도상구균이 더 많았고, V8 수치도 더 높았다.

V8 효소는 ‘단백질분해효소 활성화 수용체 1(PAR 1)’을 통해 가려움을 유발했다. PAR 1은 유발하는 촉각이나 통증, 가려움 같은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피부 신경세포에 있다. 평소엔 작동하지 않다가 V8 효소가 한쪽 끝을 잘라내면 깨어났다. 생쥐 실험에서 PAR 1이 작동하면 뇌에서 가려움을 인식하는 신호가 나타났다. 인간 신경세포도 V8 효소에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자동차에서 연료를 폭발시키는 점화 플러그처럼, V8이 가려움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1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2 미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황색포도상구균이 신경세포에 직접 작용해 가려움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사진 셔터스톡
1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의 전자현미경 사진. 사진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2 미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황색포도상구균이 신경세포에 직접 작용해 가려움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사진 셔터스톡

혈전 막는 항응고제로 치료 가능성 제시

하버드대 연구진은 가려움이 발생하는 분자 경로를 밝혔을 뿐 아니라 치료 방법도 제시했다. 황색포도상구균이 깨우는 단백질인 PAR 1은 혈액이 엉겨 붙어 핏덩이가 생기는 데도 관여한다. 그렇다면 혈전을 막는 항응고제로 PAR 1을 차단하면 가려움증을 멈출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상대로 효과가 있었다. 황색포도상구균에 피부가 노출돼 가려움증을 겪는 생쥐에게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항응고제를 투여하자 증상이 빠르게 개선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긁고 싶은 욕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피부 손상도 감소했다. PAR 1 차단제로 치료받은 생쥐는 더는 해가 없는 자극에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PAR 1 차단제는 이미 사람에게 혈전 예방용으로 처방되고 있다”며 “이 약을 가려움증 치료제로 용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항응고제를 피부에 바르는 가려움증 치료 연고로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 피부재단 대변인인 엠마 웨지워스(Emma Wedgeworth) 박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황색포도상구균이 습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것은 알지 못했다”며 “이번 연구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공생미생물) 교란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앞으로 황색포도상구균 외에 다른 미생물이 가려움증을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그렇다면 왜 박테리아가 가려움증을 유발할까. 하버드대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신경 반사를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본다. 황색포도상구균이 사람이 가려움을 느끼고 피부를 긁도록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그러면 황색포도상구균이 인체 다른 곳이나 다른 숙주로 퍼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0년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핵균은 뇌 신호를 장기에 전달하는 미주신경을 자극해 기침을 유발한다. 이러면 결핵균이 다른 숙주로 쉽게 퍼질 수 있다.


이로운 장내세균 줄면 아토피 잘 걸려

우리 몸에 공생(共生)하는 미생물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장내세균은 소화 기능은 물론 뇌를 포함해 다양한 장기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피부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미생물의 균형이 깨져 황색포도상구균이 번성하고 가려움증이 유발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진은 몸에 이로운 장내세균이 줄면 아토피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와 한림대 생명과학과 김봉수 교수 연구진은 2018년 국제 학술지 ‘알레르기와 임상면역학 저널(JACI)’에 “생후 6개월 된 아기들을 조사한 결과, 장내 미생물에서 면역 관련 유전자 양이 줄면 아토피 피부염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항생제를 투여한 적 없는 생후 6개월 아기 129명의 분변에 있는 장내 미생물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면역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적으면 아토피 피부염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면역 유전자를 가진 미생물이 줄면서 아기의 면역 기능에 이상이 생겨 아토피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분유를 많이 먹는 아기는 장 벽면에 있는 뮤신(점액을 끈적하게 하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세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균이 분해한 당분은 다른 장내세균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