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오브 마인. 사진 다음영화
랜드 오브 마인. 사진 다음영화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마르틴 산블리트 감독의 2015년 작품, ‘랜드 오브 마인(Land of Mine)’은 1945년 5월의 덴마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당시 덴마크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겪은 독일 강점기에서 벗어나는 상황이었다. 독일군은 덴마크를 점령한 후, 서쪽 해안선을 따라 220만 개의 지뢰를 설치하여 연합군의 상륙을 막았다. 둥근 형태의 지뢰는 밟는 즉시 큰 폭발음과 함께 주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살상 무기로, 전쟁 종식 이후 덴마크는 이것들을 안전하게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이 예민한 살상 장치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누가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난제가 발생했다. 여기에서 덴마크는 직관적으로는 공평해 보일 수 있지만, 윤리적으로는 가혹한 결정을 내렸다. 독일군 전쟁 포로들에게 자신들이 묻은 지뢰를 맨손으로 직접 제거하도록 한 것이다. 더 큰 비극은 이들 중 대부분이 어린 소년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전쟁의 비극과 개인의 희생자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덴마크 서쪽 스켈링엔 해안에서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된 14명의 독일 소년병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름 낮의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사장과 파도 그리고 푸른 언덕 위의 오두막 풍경은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목가적이고 아름답다. 그러나 풍경의 한편에서는 일렬로 엎드려 바닥에 배를 깔고 지뢰를 탐지하는 소년병의 모습이 나타난다. 소년의 대열은 땅속 20㎝ 깊이에 감춰진 지뢰들을 빠트리지 않고 찾기 위해 샅샅이 모래사장을 훑는다. 지뢰가 폭발하지 않도록 가는 쇠꼬챙이를 땅속에 비스듬히 찔러가며 전진하는데, 지뢰가 있는 경우에는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소년은 모래를 둥글게 파헤쳐 지뢰 상부를 들어내고, 조심스럽게 신관을 돌려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긴장한 어린 소년의 손과 예민하고 차가운 금속 살상 장치의 표면이 숨이 멈출 듯한 대비를 이룬다. 

이 대비를 통해 영화는 국가 간 전쟁 상황에서 가해자로 간주되는 개인에 대한 복수와 처벌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극 중 14명의 소년병 가운데 8명이 지뢰 폭발로 목숨을 잃는데, 그들은 전범국의 군인이지만 신체 일부가 찢겨 나간 상황에서 엄마를 부르는 여린 아이들로 묘사된다. 이는 당시 약 2000명의 독일 포로가 지뢰 해체 작업에 동원되어 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심각하게 부상했고, 그 대부분이 어린 소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도 연결된다. 이들은 국가 폭력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온 희생자로, 거역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 시스템에 의해 휘둘리는 개인의 상황을 나타낸다. 승자와 패자,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초월하여, 영화는 궁극적으로 모든 개인이 비극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전쟁 현실을 강조한다. 전쟁은 다른 국가에 대한 폭력이면서 동시에 자국민에 대한 폭력이다. 


역사를 목격하고 기억하는 땅 

‘랜드 오브 마인’은 이러한 전쟁의 모순과 공허함을 땅을 통해 뚜렷하게 드러낸다. 독일은 땅을 침략하고 지뢰로 채웠지만, 그 위에서 많은 독일 소년이 희생됐다. 덴마크는 마침내 되찾은 동일한 땅 위에 자국 역사에서 영원히 반성해야 할 과오를 남겼다. 영화 속 땅은 언제 지뢰가 폭발할지 모를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항상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땅은 수많은 비극을 묵묵히 목격하며, 우리가 초래하는 행동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킨다. 대다수의 역사적 비극은 땅에서 비롯된다. 전쟁의 역사는 영토 지도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땅의 형상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그 위를 점령한 세력만이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이러한 땅과 비극의 역사와의 관계는 침략뿐만 아니라 특정 인종을 핍박하고 땅에서 몰아낸 홀로코스트와도 연결되어 있다. 역사의 비극을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우리는 땅을 특정하고 장소를 만든다.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은 건축물이나 정보 제공이 아닌 땅 자체의 경험을 통해 역사의 기억을 강조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사진 피터 아이젠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사진 피터 아이젠먼

다름의 영역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60년 만인 2005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에는 홀로코스트의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장소가 문을 열었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이 설계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전통적인 기념 장소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축구장 세 배 크기의 넓은 지면은 2711개의 사각형 콘크리트 덩어리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0.95m, 2.38m의 비석 같은 기둥은 0.2m에서 4.7m까지 높이가 변화하며 대지 위에서 물결치듯이 펼쳐진다. 각 기둥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0.95m 간격을 두고 격자를 따라 배치되어 주변 도시 구조의 잔향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좁은 격자 통로들은 사방으로 열려 수많은 입구를 만들며 특정한 입구도, 출구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형성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도시에서 바라볼 때 수평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바깥에 선 방문자가 벤치 높이의 낮은 기둥 영역을 거쳐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기둥들은 점진적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한다. 높아지는 기둥의 윗면에 더해 방문자의 발길이 닿는 지면의 경사가 점점 내려가면서 수직 기둥 사이에 깊이를 더한다. 그림자와 빛이 교차하는 미로 같은 좁은 길을 걷던 방문자는 어느새 기둥들에 둘러싸인 채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장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더 이상 도시의 풍경은 보이지 않고, 일상의 소리 또한 차단된다. 건축가는 이 장소에 ‘다름의 영역’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홀로코스트 당시 독일에서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이 곧 ‘다름’을 의미했던 것처럼, 시공간에서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길을 잃는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침묵하는 땅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종종 나치 독일과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부재와 추상적 형태로 인해 역사적 사건과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글자 하나 없는 기둥들로 가득 찬 장소의 풍경은 역사적 추모를 위해 마련된 땅이 쓸모없는 콘크리트 더미로 덮여버린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과 학살의 희생자를 위해 세우는 기념 건축물과 공원은 다시 현재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잠식되면서, 그 의미가 암묵적으로 희석될 수 있는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현재도 세계 각지에서 역사의 비극적 순간들이 개인과 총체의 역사 속에 기록되고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땅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과오를 반성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번영한 도시 중심부의 땅을 삭제하고 침묵하게 한다. 더 나아가, 가장 유효한 역사 추모 공간은 지어지지 않아도 되는 추모 공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