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아 유튜브 채널 
‘헤어서은’ 크리에이터
서울시 강동구의 한 미용실 원장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서은아 유튜브 채널 ‘헤어서은’ 크리에이터
서울시 강동구의 한 미용실 원장 사진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큰마음먹고 용기 내서 유튜브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올해 가위를 잡은 지 20년째인 미용사 서은아(51)씨는 유튜브 숏폼(짧은 영상)을 만들며 제2의 도전에 나섰다. 유튜브 채널 ‘헤어서은’에서 ‘중년 남자는 머리 스타일이 자존감입니다’ ‘사모님 단발 S컬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거지존(덥수룩하게 보기 흉해지는 머리카락 길이)은 이렇게 커트해보세요’ ‘2024년에도 꾸준히 인기 있을 스타일’ 등 자신의 미용 기술을 아낌없이 공유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제2의 도전에 나선 서씨.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같은 포부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다.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 배경음악은 뉴진스부터 임영웅 노래까지 다양하게 쓴다. 처음에는 조회 수가 수십 회에 불과했지만 두 달간 80개 넘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니 수천 회가 넘었다. 미용 가위를 들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서씨는 어떻게 유튜브에서 종횡무진하게 됐을까.

최근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서씨의 미용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손끝이 까매진 채로 거울 앞에 서서 손님의 머리를 염색하고 있었다. “염색이 예쁘게 나왔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용실 한편에는 미용약과 고데기가 즐비했고 브라운부터 애시, 핑크, 레드, 바이올렛까지 다양한 색상의 염색표가 있었다. 휴대전화와 삼각대, 조명 등 유튜브 영상을 위한 촬영 장비가 눈에 띄었다.

미용사로 일한 건 언제부터인가.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여행사 가이드로 일했다. 공무원이나 정부 기관 관계자들이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로 연수 갈 때 안내했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져 새로운 직업을 알아봐야 했다. 평소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미용이라는 업(業)을 선택하게 됐다.

늦깎이 미용사가 되는 길이 쉽진 않았다. 보통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는데,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어린 미용사 선생님 밑에서 보조를 했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내려놓고 샴푸부터 커트, 염색, 파마까지 기술을 배웠다. 1990년대 후반 용산구 숙대 입구 근처에서 미용실을 하다가 2000년대 서초구 방배동으로 자리를 옮기고 2020년 강동구로 이전했다.” 

유튜브 채널 설명에 “큰마음먹고 용기 내서 첫발을 디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숏폼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일을 사랑했는데 40대 후반부터 재미가 없어졌다. 젊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보고 새로운 머리 스타일을 요구하는데, 소통에서 벽이 느껴졌다. 기술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도 작아지는 느낌. 현시대와 공존하고 싶은데 자꾸 옛날 미용을 하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SNS를 안 한다는 이유로 소외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직접 하기로 했다. 

미용을 하려면 트렌드가 중요하다. 10대, 20대, 30대부터 그들의 부모님 세대까지 아울러야 한다. 비록 젊은 사람의 언어를 모르지만 SNS에서 같이 소통하고 감성을 공유하고 싶었다.”

숏폼은 어떤 과정으로 제작하나.
“처음에는 너무 창피했다. 20년간 미용을 했지만 내가 한 걸 남에게 내보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더라. 내 특기가 볼륨을 살리는 파마다. 현대인의 머리카락은 갈수록 힘이 없어지는데, 동양인은 서양인처럼 얼굴 윤곽이 두드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풍성하게 볼륨을 줘야 생기가 있다. 이런 노하우를 영상에 담고 싶었다. 그런데 파마했을 때 실제로 보면 구불구불하게 컬이 살아도 영상에 100% 담기지 않더라.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꿀팁을 주자면 컬이 탱글탱글하게 나오도록 헤어스프레이로 고정하고 영상 각도를 다양하게 촬영해야 한다. 염색도 카메라로 볼 때 색감이 다르게 나올 수 있으니 조명을 신경 써야 한다.

콘셉트도 중요하다. 손님이 ‘사모님 머리’를 원할 때가 있다. 중년들이 좋아하는 임영웅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쓰니까 머리와 분위기도 어울리고 조회 수가 잘 나왔다. 젊은 단발머리는 뉴진스 노래를 배경으로 깔았다. 숏폼은 사람들이 오래 보지 않기 때문에 60초 안에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 빠르게 시선이 머물도록 섬네일(미리 보기)도 한눈에 들어와야 하고 자막 선정도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하루 몇 시간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나. 바쁜 일정을 쪼개서 숏폼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80%는 예약 손님을 받고 20%는 당일 손님을 받는데, 하루가 꽉 찬다. 그래도 8~10월 하루 3시간씩 짬을 내 12회에 걸쳐 숏폼 수업을 들었다. 사실 머리만 할 줄 알았지 아무것도 몰랐는데, 미용실 손님에게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 중·장년층을 위한 숏폼 수업이 있다는 걸 듣고, 신청했다.

영상 촬영, 편집, 업로드까지 배울 수 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 차이부터 배경음악 저작권은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 나이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젊은 친구들보다 느리다. 들을 때는 이해한 것 같은데 돌아서면 깜빡한다. 처음에는 숏폼을 배울 수 있을지 겁이 났는데,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줬다. 나는 이런 게 엄청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별것 아니더라.”

숏폼을 배우기 전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일단 공부가 된다. 영상으로 촬영하고 다시 보면서 ‘두상에 맞춰 머리숱을 더 치면 좋겠다’는 식으로 돌아볼 수 있다. 기록이 남으니까 편집하는 과정에서 한 번 더 되새기는 것이다. 

손님 반응도 좋다. 양해를 구하고 촬영한 뒤 유튜브에 올린 다음 캡처해 손님에게 보내준다. ‘머리가 매우 예뻐서 영상 올렸어요. 고마워요’라고 하면 ‘감사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답장이 온다. 서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는 40~50대 중·장년층에게 조언 한마디해 준다면.
“아유 내가 뭐라고… 40~50대는 사회에서 일은 계속해야 하는데 자존감은 떨어지는 시기다. 왕년에 잘나갔는데 더 이상 전성기가 없는 것 같고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 든다. 주변에 연배가 있는 미용사들도 정리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40~50대는 그간 쌓아온 삶의 노하우를 갖고 충분히 자신의 영역에서 잘할 수 있다. 계속할 수 있는데 스스로를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인기 없고 손님이 안 찾을 때가 아니라 손뼉 칠 때 스스로 떠나고 싶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려면 계속 전성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연륜이 자산이다. 거기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정말 재미있게 살 수 있다. ‘나는 늙었어’가 아니라 ‘나는 지금도 전성기’라는 마음으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