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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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 중인 내 딸. 결혼한 지 몇 개월 안 되는 갓 서른 살의 내 아들. 이들과 같은 1990년대생들은 아마도 확실하게 130세를 훌쩍 넘어서서 장수하는 첫 세대가 될 것 같다. 인구학자들이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추정에 따르면, 1958년 이후 출생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20세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의 기대수명은 130세 정도인데, 한국인의 수면의 질이 너무 낮아서 10년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수도권에는 밤 12시가 넘어서도 시내버스가 다니고 새벽까지 문을 연 카페나 가게가 즐비하다. 이런 불야성(不夜城)의 현실이 기대수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나는 아직 그들이 생각하는 기대수명의 절반도 살지 못한 셈이다. ‘아! 정말로 재앙이 시작되었구나!’ 나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40대 초반의 한 후배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럼 저는 지금 제 아내와 앞으로 70년도 넘게 더 살아야 한다는 거네요?”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구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압도하는 듯 보이는 것들 앞에서는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특별히 사람들은 무서운 자연재해나 감염병, 예기치 않은 사고로 존재 자체를 위협받을 때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이 실존적 불안은 사람을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에 의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종교의 기원을 말하는 융의 이 말을 뒤집어보면, 사람들에게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강렬한 본능적 욕구가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려는 ‘안전 본능’과 건강을 유지하려는 ‘건강 본능’을 본능의 으뜸으로 꼽는다. 이런 본능들이 확대되어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으로 나타나고, 더욱 발전하면 영생(永生)의 비전으로 표현된다. 

얼마 전에 출간된 ‘영 포에버(Young Forever)’라는 대중 의학 서적이 있다. 책의 부제가 흥미롭다. ‘25세의 신체로 영원히 젊고 건강하게’,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젊고 건강하게’라는 말 앞에 붙은 ‘영원히’란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었던 기원전 진시황의 불로장생의 신화가, 한 서양 의사의 책을 통해 수천 년이 지난 21세기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 엄마는 병환으로 고생하시다가 향년 85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아버지랑 나랑 셋이 함께 식사했는데, 다음 날 아침 먼저 가신다는 작별의 인사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주무시다가 편안히 떠나셨다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초에 아버지는 간암으로 쓰러져 입원하신 이래 6개월 동안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향년 91세. 평소 쇠약했던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평생을 건강하게 사시다가 가신 편이다. 하지만 마지막 투병 기간에는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을 만큼 통증이 심해서, 당신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자식들도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호상(好喪)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아무리 오래 복된 삶을 살았어도 자식들에게 호상이란 말은 없는 법이다. 떠나신다는 말도 없이 떠난 엄마나 나름대로는 이별의 모양새를 갖춘 아버지나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승에서 아무리 오래 함께했어도, 부모 자식 간의 이별은 사별이 아니라, 생이별이나 다름없다. 이 힘든 작별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모님을 다 여의고 고아가 되었을 때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과 이별하는 게 이렇게 힘든데, 언젠가는 장인, 장모님과 또 이런 작별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만 해도 벌써 내 마음이 이렇게 아려오는데, 어떡하지?” 부모님에 이어 장인, 장모님과의 기약은 없지만 필연적인 이 이별은 솔직히 생각조차 하기 싫다. 부모님과의 이별까지 오버랩되면서 더 힘든 과정이 될 거라는 슬픈 예감 때문이다.

기대수명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왜 양가 부모님 얘기를 하느냐고? 1930년대생인 부모님과 1940년대생인 장인, 장모님의 경우를 보면서, 내가 아니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갈 것인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과잉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 부모님 세대가 자신의 힘으로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나이가 평균적으로 대략 80세 전후가 아닐까 싶다. 

매우 외향적이고 활동적이었던 한 살 터울의 장인, 장모님은 80세가 넘으면서 기력이 눈에 띄게 쇠해졌다. 지방이나 외국으로 여행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고 고백하신다. “아침 산책도 이제는 오래는 못 하겠고,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장거리 비행을 해야만 하는 해외여행은 엄두도 안 나!”

장인어른은 50년 이상 개업한 건축사사무소를 접으면서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인구 절벽이 현실화되면서, 지방 소도시까지 내려와 일하려는 건축기사를 구하기 어려워 결국은 현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이제는 노령으로 제대로 업무를 보시기가 쉽지 않았던 현실 또한 부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50년 가까이 소지했던 운전면허증도 한사코 반납을 거부했지만, 급격하게 떨어진 시력과 운동감각의 저하를 고려해 결국에는 반납하셨다. 엄마와 아버지의 경우를 미뤄 짐작해 본다면, 오래지 않아 두 분은 요양병원이나 실버타운 같은 곳에서 전문 의료 인력이나 복지 인력의 지원과 보조를 받으면서 생활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계가족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런 과정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고, 다음에는 우리 세대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즐겁고 재미있는 100세 시대 

우리 인류에게 불로장생은 오랜 꿈이었다. 진시황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120세, 130세가 아니라, 100세 시대도 아득히 먼 꿈같은 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유전과학의 발달과 의학기술의 진전, 보건위생의 발전에 힘입어 현생 인류의 기대수명이 이렇게 빨리 늘어날 줄 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인구학자들의 예언대로 120세까지 산다고 치자.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90세에 큰 병이 들어 병상에 누워서 생활한다면 어떨까? 90이 넘었는데도 앞으로 3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게 재앙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리처드 쉔크만 감독의 SF영화 ‘맨 프롬 어스(2007)’는 1만4000세인 존 올드 맨이 주인공이다.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고 실화라면 과연 주인공 올드 맨의 삶은 즐거웠을까. 불로장생을 넘어 영생의 삶을 누리는 그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은 아니었을까. 신체적으로는 건강했지만 말이다. 올드 맨은 신체적인 건강은 매우 좋았다. 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가 100세를 넘어 살면서 건강이 담보되지 않으면 어떨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1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120세 시대를 맞은 지금 나는 미당의 이 시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오래오래/ 그러나/ 아주 오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그러나 건강하게” 

120세 시대, 이미 재앙은 시작됐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일 뿐이다. 일상은 지루하지 않고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 심신은 모두 건강해야 한다. 과연 24시간 병상에 누워 간병사에게 의존하여 기저귀를 갈아야만 하는 인생에 즐거움과 존엄함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로병사가 불가피한 섭리라 해도 말이다. 아버지 말년 투병 중에, 휴가를 간 간병사를 대신하여 내가 대신 목욕을 시켜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에게 들키기 싫은지 나 몰래 살짝 눈물을 훔치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무조건 오래만 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너무 오래지는 않게, 좀 섭섭한 듯하지만 건강하게, 그게 진정한 장수다. 미구에 닥칠 이 지독한 미증유의 재앙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구차하고 황폐하게 만들지 모른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그것도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