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M&A 시장이 어땠는지 총평 부탁한다. 삼정이 굵직한 딜을 여러 건 자문하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고금리와 유동성 부족 등의 이유로 상당히 어려웠다. 체감상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25%가량 작아진 것 같다. 우리는 시장 침체 속에서 먼저 협력을 통한 가치 창출에 주력했다. 140명의 M&A센터 멤버와 함께 ‘잠재적 매수자’를 찾아내고 투자 아이디어를 내서 거래 종결 건수를 늘렸다. 그 외에도 감사·세무·컨설팅 부문 파트너들과 협력해 고객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재무자문 서비스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잠재적 매수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과거엔 ‘소비재 관련 기업은 신세계, 롯데, CJ가 인수한다’는 식으로 접근했지만, 이제는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딜 클로징이 안 된다. 시장 난도가 높아졌고 시장 유동성이 축소돼 투자자들이 높은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과거 코웨이를 매각할 때 넷마블이 인수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잠재적 매수자 풀(pool)을 확대하는 것 외에 딜 성사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요즘 M&A 딜 자문은 창의성이 관건이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창의성이란 ‘점(dot)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나. M&A 시장에서의 창의도 없던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에어퍼스트 소수 지분을 매각한 것이 좋은 사례라고 본다. 그동안은 ‘인수→경영→매각 및 회수’가 전형적인 M&A 사이클이었다면, IMM PE는 ‘인수→추가 투자(자본 지출·capex)→장기 경영→일부 매각’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에어퍼스트 지분의 성격을 인프라 같은 자산(infra-like asset)으로 규정하고 새 투자자에게 어필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2024년에는 불황이나 성장 정체가 지속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내수에 기반을 둔 업체들은 경쟁사들과의 과감한 합병, 지분 스와프, 조직 교류 등 과거엔 생각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하다 보니 지분 스와프를 택하는 기업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분 스와프를 하면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당장 현금으로 엑시트하는 게 어렵지 않나. 큐텐의 11번가 인수가 무산된 것도 그런 한계 때문이었고.
“지분 스와프를 할 때 꼭 엑시트해야 하는 FI가 있다면, 기존 대비 훨씬 더 강한 조건들을 내걸고 신규 투자를 유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지분이나 특정 자산을 담보로 걸면서 크레디트 성격의 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11번가의 콜옵션 포기 여파로 콜 앤드 드래그(call and drag·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대주주 지분까지 끌어와 강제 매각할 수 있는 조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앞으로는 풋옵션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될 것 같은데.
“풋옵션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부채로 인식되므로, 기업은 이를 고려해 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해야만 한다. FI 입장에서는 안정성을 높인 대가로 만기 수익률(YTM)을 보다 유동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YTM 5% 보장’이라는 단순한 조건을 내거는 대신, 해외 진출 등 어떤 경영 목표나 상장을 달성하면 YTM을 조정해 주는 식이다. 그게 안 된다면 YTM 5%를 받고 엑시트하면 된다. 소수 지분에 투자한 FI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전략적 투자자(SI)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금만 지원한 뒤 소극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데서 벗어나 기업 가치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FI의 참견을 허용할 대주주가 얼마나 될까 싶긴 하다.
“아무래도 아직은 좀 그렇다. 미국에서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PE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 PE들은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게 아니라 전문성을 갖고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제안을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기업 회생에 따른 M&A 매물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지.
“그럴 것이다. 이미 회생을 신청하는 기업이 늘고 있고, 보다 다양한 기업이 회생 법원의 문을 두드릴 것 같다. 과거엔 전통 제조업이나 한계 산업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추가 투자 유치가 어려운 스타트업, 플랫폼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부동산은 어떨까.
“아직 매수인과 매도인 눈높이의 간극이 큰데, 2024년에는 전반적으로 시장이 조정될 것 같다. 유동성이 개선될 조짐이 별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해외 연기금들도 지금 북미 시장의 성장률이 워낙 높아 아시아에 대한 투자 비율을 늘리지 않을 것이다.”
해외 연기금이 아시아 투자를 늘리지 않는 게 미·중 갈등과 관련 있나.
“아니다. 사실 2022년 이미 해외 연기금들이 미·중 갈등 때문에 중국 투자를 줄이면서 한국과 일본 비중을 상대적으로 늘려놨다. 그러나 2024년엔 아시아 전체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것 같다. 지금 미국 경제나 증시 상황이 좋지 않나. 아시아 비중을 줄이고 미국에 좀 더 투자할 가능성이 크다.”
회생에 따른 M&A를 자문할 때는 다른 일반적인 M&A와 비교해 어떤 점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지.
“기업이 도산할 위기에 처한다면 가장 먼저 종업원이 이탈하기 시작한다. 이는 연쇄적으로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M&A의 성사 확률을 낮추게 된다. 따라서 다른 때와 비교해 더 신속한 거래 종결 전략을 수립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경쟁사에도 과감하게 M&A를 제안하고 가격도 낮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수자가 종업원의 고용을 보장하는 합의서 도출도 필요할 수 있다.”
회생 기업 M&A에서는 인수자가 소위 ‘갑(甲)’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매각되는 기업을 자문할 때 회사 몸값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같은 회사라도 각자 느끼는 밸류에이션이 다 다르지 않나. 어떤 이유에서든 그 회사의 값을 높이 쳐줄 수 있는 인수자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직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미술품 조각 투자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금흐름할인법(DCF)을 토대로 밸류에이션을 계산하면 턱없이 낮은 값이 나온다. 그러나 오너가 미술 산업을 굉장히 사랑하는 기업이라면, 이 회사를 높은 가격에 인수할 수도 있다. 그런 기업을 찾도록 돕는 게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