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 ING은행 전 아시아·태평양 금융기관영업부 대표 사진 ING은행
“2023년 10월부터 시행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배출량 1차 보고 시점이 새해 1월로 가까워졌다.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탄소 배출을 어떻게 정확히 측정하고, 줄일 것인지 등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필립 반 후프(Philippe Van Hoof) ING은행 한국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여러 전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녹색 금융의 중요성은 크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CBAM은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력 등 EU로 수입되는 6개 품목에 대해 EU 생산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10월 한국의 140여 개 기업이 CBAM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중소·중견기업의 CBAM 대응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3년 6월부터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회장직을 겸직하고 있는 반 후프 대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발행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까다로운 ESG 인증 절차를 완화하는 것 등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며 “동시에 한국 기업들이 ESG를 경영 전략의 핵심으로 여기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소매·기업금융을 제공하는 ING은행은 지속 가능 금융을 선도하는 금융사로 꼽힌다. 2017년엔 세계 최초로 지속가능성연계대출(SLL) 서비스를 개시했고, 2021년 말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ESG 평가에서 ‘AA’를 획득한 바 있다. 국내에선 1991년 ING은행 서울 지점을 개업한 이후 다양한 기업 및 투자은행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반 후프 대표는 29년간 은행(banking) 산업을 경험한 전문가로, 2021년 ING은행 한국 대표로 부임하기 전 싱가포르에 있는 ING은행 아시아·태평양 금융기관영업부 대표를 맡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화석연료 의존도가 다시 높아졌다. 녹색 금융의 입지가 위축되진 않았나.
“여러 전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녹색 금융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다, EU는 2023년 10월 1일부터 CBAM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기업들은 오는 1월 말에는 CBAM의 배출량 1차 보고를 해야 하는데, 보고 내용에는 CBAM의 적용을 받는 모든 제품을 생산할 때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했는지 등을 포함해야 한다. 이는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은 탄소 배출을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것인가, 탄소 배출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ING은행은 전 세계에서 지속 가능 금융을 선도하는 금융사로 꼽힌다. 아시아에서 이와 관련,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ING은행은 2022년 전 세계에서 약 1000억유로(약 141조3300억원) 규모의 지속 가능 금융을 조달했는데, 2025년까지 조달 규모를 1250억유로(약 1766조625억원)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ING은행이 지속 가능 금융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건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어떤 금융기관이 한 기업에 대출을 내줄 때, 지속 가능 금융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양한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사이를 조정해 주거나 금융 자문을 해주는 것이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다.”
한국의 녹색 금융 실천 현황을 평가한다면.
“ESG 채권 발행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7위 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다. ING은행이 가진 통계상 한국의 지속 가능 금융 규모는 2021년 787조원으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국민연금이 ESG 투자 비중을 2020년 7.8%에서 2021년 12.2%로 늘린 것처럼 한국의 녹색 금융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본다.”
ING은행은 한국의 녹색 금융 활성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다양한 지속 가능 채권 발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먼저 2018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유로화 소셜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발행을 성공시켰는데, 이후의 ESG 채권 발행에도 ING은행이 관여하고 있다. 또한 수출입은행과 우리카드 등이 ESG 채권을 발행할 때 관여했고, 국민은행이 그린 커버드본드(5년물)로 5억유로(약 7067억원)를 조달했을 때도, 공동 주관사로 참여했다. 그중 1억9480만유로(약 2753억원) 규모의 우리카드 소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건은 2022년 ‘디 에셋 트리플 에이 컨트리 어워드’에서 한국 최고의 지속 가능 자산 유동화 거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금융감독원의 금융·산업·자연을 주제로 한 국제 콘퍼런스에 참여해 금융 당국에 EU의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가 한국 택소노미와 무엇이 다른지, 한국 금융기관들이 택소노미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녹색 금융 활성화가 ING은행의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진 않나.
“녹색 금융은 전통적인 금융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금융을 할 수 있게 하는 미래를 위한 변화다.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속 가능 채권, 탄소 배출권 거래 등 추가적인 활동 기반이 된다. 이 때문에 ING은행은 1996년 최초로 환경 리포트를 발간하는 등 과거부터 지속 가능 금융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한국 기업들에 녹색 금융이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어떤 기업이 녹색 금융을 받는다는 것은 친환경 기업으로 인정받을 만한 프로세스를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지속 가능성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에 유럽, 미국 등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데 유리해진다. 또 자금 조달원이 다양해지고, 여러 이해관계자와 관계가 개선된다는 장점도 있다. 기후 위기 대응 차원에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ECCK 회장직도 겸직하고 있는데.
“ECCK는 다양한 ESG 콘퍼런스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2022년 처음으로 ‘ECCK 지속가능성 어워드’를 신설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유럽 및 한국 기업을 알리려는 목적이다. 더 나아가 한국 정부와 녹색 금융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ESG 채권 발행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 까다로운 ESG 인증 절차를 완화하는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ESG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닌 ‘경영 전략의 핵심’으로 여길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SG 표준과 관련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ESG 관련 규제는 EU에서 그린 택소노미,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CBAM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에는 K택소노미가 있다. 세계적으로 규제가 이것저것 생기다 보니, 복잡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인 표준을 명확히 하자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표준이 어떻게 마련되는지에 따라 한 국가,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에 대한 접근 방법 등이 달라지는 만큼, 표준 합의는 중요하다. ING은행은 EU택소노미를 핵심 뱅킹 부문에 어떻게 적용할지 등 표준 합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인지를 분류하는 체계. 유럽연합(EU)이 2020년 6월 처음 발표했으며,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기준에 속하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