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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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당에 준 게 없으면, 나중에 정치인으로부터 받을 것도 없다. 

그들에게 최소한 오이라도 쥐여줘야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홧김에 B정당에 포도를 쥐여주고 나서, 오이 한 조각 던져주지 않은 A정당에 보은을 바라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는 불공정한 행위다.

인간은 세 살만 돼도 “너무해! 나빠!(공평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인간은 동전과 지폐의 가치를 알기 이전, 내 집 마련이나 소액 코인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말을 한다. 유치원에서 다툼이 일어났을 때는 “저 아이가 먼저 그랬어.”라고 말한다. 인간은 유아기에 이미 공정(fair)이라는 관념을 터득하는 것이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함무라비 법전과 부채의 등가성

부채는 미묘하고 흥미로운 관념적 구조물이다. 부채는 좌우대칭의 직선적 구조물이다. 0을 기점으로 채권자와 채무자가 등거리에 존재한다. 겉으로 보기에 채무자는 ‘종이(돈)’를 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시간’을 빌리는 것이다. 채권자는 일정한 시간을 빌려주고, 채무자는 그 대가로 이자를 지급한다. 부채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중세 내내 유럽에서는 이자를 금지했다. 유한한 인간이 시간이라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슬람에서는 이자를 금지하고 있다. 적어도 법적, 종교적으로는 그렇다.

로마 이래로 법학에서는 부채(금전 소비 대차)의 구성 요소로 주체, 객체(급부), 기한을 들고 있다. 하지만 부채라는 구조물이 만들어지려면 이외에도 추가적인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등가(equivalent value) 관념이다. 등가성은 공정성을 숫자상(정량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왕국의 함무라비 대왕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일한 형태의 보복을 허용하는 공정한 법(lex talionis·同害復讐法)을 만들었다. 이러한 중동의 전통은 기독교 경전에도 살아남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이 됐다.

우리는 항상 기록하고, 계산하고, 기억한다. 유튜브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시키는 한물간 왕년의 야구 선수들이 펼치는 불꽃 투혼을 보면서도 승리와 패배라는 잔인한 좌우대칭을 그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냉정한 좌우대칭인 회계장부의 양쪽(차변과 대변)이 동일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한솔에게 귤 5개가 있고, 채령에게 볼펜 2자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귤 1개와 볼펜 1자루를 맞바꾸면 서로 조건이 맞을까. 한솔이 귤 1개를 더 주든가 연필 1 자루를 더 받아야 할까. 이것은 한솔과 채령이 서로의 물건에 대해 어떤 가치를 두느냐에 달린 문제다. 가치의 크기는 채령이 얼마나 허기를 느끼는지, 한솔이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렇듯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거래에서는 준 것과 받는 것이 동등하게 상쇄된다. 따라서 서로 갚아야 할 것이 없어진다. 당사자 모두에게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한쪽 당사자가 얻는 이익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경제학은 상상의 학문이다. 실제 거래에서는 양 당사자의 효용이나 필요에 근거한 교섭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방 당사자가 평균비용에 일정한 마진을 얹어서 가격을 설정하면 그 상대방은 주어진 가격하에서 물건을 구입할지 말지만 결정한다. 그래서 블랙프라이데이에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에 죽을 듯이 몰려드는 것이고, 상업은행이 저금리로 대출 세일을 하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빚을 이용하는 것이다. 채무자가 자제심이 부족하거나 방종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부족하고 결핍된 사람에게 기적 같은 풍요를 제공한 사람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원숭이들의 파업

2003년 ‘네이처’에 에모리 대학의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연구자들은 카푸친 원숭이들에게 매매와 유사한 거래 방법을 가르쳤다. 원숭이는 오이와 포도를 둘 다 좋아하는데, 단맛이 나는 포도를 더 좋아한다. 연구 초기에는 원숭이가 연구자에게 조약돌(화폐)을 주면, 연구자는 원숭이에게 오이(물건)를 줬다. 사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는 이와 비슷한 거래다. 다만 상업은행이 썩은 오이(부실 채무)를 던져주면, 중앙은행이 맛있는 포도(현금)를 건네준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연구 후기에는 대부분의 원숭이에게 오이를 주고 특정 원숭이에게만 포도를 주었다. 포도가 개입되자 오이를 받은 원숭이들이 동요하면서 조약돌을 우리 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가치적으로 동등한 것(조약돌)에 불공평한 대가(오이와 포도)가 주어지자, 원숭이 사회가 동요한 것이다. 

결국 원숭이들은 실험에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불공정한 성과 배분, 경영진은 각성하라!’ 원숭이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이다. 원숭이들이 화폐(조약돌)와 가격(교환 비율)을 알게 된 것은 인위적 교육을 통해서였지만, 불공정한 포도 분배에 분노한 것은 자연 발생적이었다.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제인 구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팬지는 콜로부스원숭이를 잡아먹는다. 침팬지는 사냥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협력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오랜 기간 우간다의 침팬지 집단을 연구한 결과, 침팬지들이 공동 사냥의 결과 획득한 사냥감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침팬지 사회에서도 공정(fair)과 동등(equal)은 다르다. 직접 사냥에 참여한 성체 침팬지와 길목만 지킨 미성체 침팬지가 똑같은 양의 음식을 분배받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 성격이 강하고 체격이 큰 침팬지가 더 많은 음식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누구나 사냥에 참여하기만 하면 최소한 어느 정도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었다. 알렉산더나 시저가 정복과 살육을 통해 얻은 노획물을 병사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옥스퍼드대의 연구 집단은 태국의 고립된 섬에서 마카크원숭이들에게 도구 사용법을 가르쳤다. 원숭이들이 석기 사용법, 즉 돌로 조개를 쪼개는 방법을 알게 되자 해안가에 서식하던 조개류가 파멸적인 수준으로 감소했다. 기존에는 인간만이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남획한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원숭이들이 도구 사용법을 알게 되자 자원을 착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학자들은 생산함수를 투입물(노동·자본)과 산출물의 관계로 정의한다. 더 적은 투입물을 가지고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산성 향상, 기술 발전이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기술 발전이 경제 발전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태국 마카크원숭이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본(돌)의 투입과 기술의 발전(조개껍질 부수기)을 통해 생산성이 현저히 높아졌고, 그 결과 해안에 서식하던 조개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포퓰리즘과 자연 상태의 ‘공정’

이상주의자들은 대의제도와 선거제도를 혐오한다. 우민정치,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비난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한 플라톤 이래로 그랬다. 승리한 정당이 관직을 독점하는 엽관제도나 특정 지역에 개발 예산을 몰아주는 지역 예산에 대해 부정적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특정 그룹에 이권을 몰아주거나 특정 지역에 편파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식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치자금과 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이라며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정당에 준 게 없으면, 나중에 정치인으로부터 받을 것도 없다. 그들에게 최소한 오이라도 쥐여줘야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홧김에 B정당에 포도를 쥐여주고 나서, 오이 한 조각 던져주지 않은 A정당에 보은을 바라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는 불공정한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