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서울대 경제학, 하버드대 대학원 정책학 석·박사, 
현 성균관대 이사장 겸 행정학 명예교수, 
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현 경제교육단체
협의회 회장, 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원장,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제17대 국회의원,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전 대통령실 국정
기획수석비서관,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전 기재부 장관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서울대 경제학, 하버드대 대학원 정책학 석·박사, 현 성균관대 이사장 겸 행정학 명예교수, 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현 경제교육단체 협의회 회장, 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원장,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제17대 국회의원,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전 대통령실 국정 기획수석비서관,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전 기재부 장관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정부가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고착화’를 마주했다는 진단이 담겼다. 역동성을 앞세워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왜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성균관대 이사장 겸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그 원인을 ‘보모(保姆) 국가’라고 딱 잘라 말했다. 보모 국가란 정부 정책이 개인을 과잉보호하거나, 개인의 선택을 간섭하는 체제를 말한다. 생산성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복지를 늘려 오히려 사회 내 발전 잠재력과 혁신 의지를 발현할 기회를 빼앗았다는 게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박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발표 하루 전인 1월 3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개인 안위만 추구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다”며 정부를 향해 “큰 정부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 더 이상 복지를 늘려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 일문일답.

1기 경제팀이 퇴장했다. 성과를 평가하자면.
“전임 정부의 소득 주도, 탈원전, 부동산, 재정 팽창 등 ‘날림·선심 정책’을 정상화하고, 문명국가와 경제 안보 등 대외 협력 강화, 거시경제 경착륙 예방, 월례비·일감 독점 요구 등 노조 횡포 엄단은 성과라고 본다.

정부 간섭을 줄이고 민간 활력을 북돋우는 한편, 교육·노동·연금 등의 구조 개혁에 나서겠다는 정책 방향에도 동의한다. 다만 이들 과제를 하루아침에 다 이룰 순 없다. 명확한 청사진과 치밀한 실행 계획을 내놔야 한다. 국민과 공감대를 넓히는 슬기로운 방략도 절실하다.”

2기 경제팀이 집중적으로 대응해야 할 리스크는.
“구조적 저성장 기조 고착화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인구 배당’이 희석되고 있다. 탐구·모험·창의 등 혁신 역량도 정체되고 있다. 사회 갈등이 고조되고 자조(自助) 의식이 퇴색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제조업 비교 우위가 약화하고,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낙후하고 있다. 신산업 태동도 지체되는 모습이다.”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큰 정부’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 보모 국가를 탈피해야 한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편 가르기, 이념 지상주의·종족주의 등 포퓰리즘(대중 영합 정치)도 극복해야 한다.”

보모 국가 탈피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직전 정부의 슬로건이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였다. 황당무계한 슬로건이다. 정부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모두 책임질 수 있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과도 같은 이야기다. 그런 정도로 국가가 강한 책임을 느끼고 있으면 안 된다. ‘자기 책임 원칙’을 무시하는 표현이다. 개인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결과에 대해선 개인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방만한 실업급여 체계로 인해 ‘굳이 열심히 일해야 하느냐’는 인식이 확산했다. 혁신 역량이 퇴락했고, 도전 정신이 사라졌다. 엘리트 인재들이 혁신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공무원이나 의사 등 안정적인 직종에만 쏠린다. 개인 안위만 추구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된 것이다.”

평소 ‘작고 유능한 정부’를 강조했다. 현 정부도 성장의 주체는 민간이라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만, 정작 정책 부분에서는 ‘큰 정부’의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입김이나 규제 혹은 개입하려는 경향을 큰 정부의 성질로 본다면, 그렇게 볼 수 있다. 정부로선 지금까지 해오던 걸 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단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정부·민간·지역공동체가 할 일을 구분하고, 자율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우물가에 아이를 앉혀 놓은 것 같은 불안감이 들 수 있다. 그렇다고 계속 정부가 끈을 쥐고 있는다면 아이는 자생할 수 없다.”

그럼,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약자도 패자도 나타날진대, 정부는 시장에서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확립되도록 하면 된다. 거기서 생기는 원천적 약자는 구름판을 설치해 주거나 먼저 뛰라고 배려해 줄 순 있다. 공정한 규칙하에서 패자가 재기할 수 있는 걸 돕는 정도를 정부가 해야 한다. 결과적 평등을 위해 처음부터 강하게 개입을 하면 국민은 하향 평준화된다.”

억강부약을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슬로건이었다.
“억강부약 자체는 좋은 말이다. 약자 보호는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봤을 때 강자를 억압해야 하는가.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하는 경쟁 제한 행위는 막아야겠지만, 그 역시 더 잘 뛰라고 격려해 줄 주체다. 뛰는 무대를 옮겨주면 되는 일이다.”

교육·노동·연금 개혁과 관련해 명확한 청사진과 치밀한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현 정부가 이를 수립하더라도 차기 정부에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버넌스(Governance) 신뢰 자체가 떨어진다.
“5년 단임제의 한계다. 여기에 진영 논리로 극한 대립 구도가 만연하다. 원전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이 영향을 받는 사안인데, 정권에 따라 정책이 달라진다. 지속 가능성이 저해되고 학습 비용만 늘어난다.”

올해 657조원의 예산안이 마련됐다. 총지출 증가율이 20년 만에 최저인데, 충분한 실탄이라고 보는가.
“불경기 대응과 4월 총선 등에 견줘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는 등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당장은 금단현상 등으로 저항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작고 유능한 정부를 지향해 민간의 자율·분권·창의·활력을 북돋우는 방향과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긴축 노력이 최선이었다고 보나.
“경기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채택한 긴축재정 기조는 미래를 내다본 책임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기대한 만큼 긴축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정부에서 워낙 재정 지출을 늘려놓은 데다, 국채 이자와 복지 지출 등 의무 지출 비율이 가파르게 올라 예산이 하방 경직성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한꺼번에 바로잡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무 지출 비율이 더 올라가면 재정 건전성 확립이 더욱 어려워진다.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교육재정교부금과 복지 지출 등 의무 지출의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복지 지출 구조조정을 말했는데, 역진이 가능한가.
“역진은 어렵다.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차츰 비중을 낮춰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 시행한 정책을 뒤로 되돌리기는 어려운 만큼, 예산 증가율 대비 낮게 인상하거나 동결하는 방식으로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

핵심은 더 이상 복지를 늘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더 이상 새로운 걸 만들어선 절대로 안 된다. 빼야 할 거품은 빼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했던 전 국민 재난 지원금 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시혜성, 선심성 지출은 다시는 해선 안 된다.”

장관 시절 경제 상황을 야구 등 스포츠에 비유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 상황을 비유하자면.
“퓨처스리그에서의 눈부신 활약(압축 성장)으로 2군(개도국)에서 1군(선진국)에 콜업됐지만, 2군에서의 성공에 안주하는 팀 같다. 집안 갈등이 불거지고, 기량 발전이 없어 신흥국에 밀려 다시 퓨처스리그로 강등될 위기다.”

여전히 롯데 자이언츠 팬인가.
“2023년 손아섭 선수가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기면서 응원하는 팀도 롯데에서 NC로 갈아탔다. 손아섭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타고난 재능보다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일류 자리에 오른 선수다. 개인적인 ‘인재관’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