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시공 능력 평가 16위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3조원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이에 정부와 금융사가 대출 만기 유예 등 금융 조치로 억눌러왔던 PF 위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착공이 미뤄지는 공사 현장이 많다 보니 대출금을 갚기 어려워진 건설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빚을 갚지 못하면 금융업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고 경제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날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율촌에서 글로벌 법률·정책 분석가 최준영 박사를 만났다. 그는 2024년 4월 총선 이후에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됐던 PF 위기의 시간표가 앞당겨졌다고 봤다. 태영건설의 위기 그 자체보다도 시장에서 부동산 PF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태영건설에 난 불을 끄고 말 것인지, 시장이 신뢰할 정도로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거나 정책을 바꾸는 등 대응 태세를 갖췄다는 것을 보여주고 넘어갈 것인지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최 박사는 분석했다.
그는 “(PF 부실을) 미뤄놨다가 총선 이후인 5~6월에 한꺼번에 터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도 있다”며 “다만 PF 관련 불확실성이 계속 증가하다 보니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불안해지고 이미 많이 감소한 소비 여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을 제외한 대다수 주요국이 경기 둔화에 시달리는 가운데, 국내 경제에 악재가 터진 만큼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부채 축소, 기업 구조조정에 돌입할 때라고도 진단했다.
최 박사는 구독자 43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에 주요국 경제와 산업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과 시사점을 분석한 30분~1시간 분량의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한다. 동남아 부유국이었던 미얀마가 왜 빈곤국으로 전락했는지를 주제로 한 동영상은 현재 조회 수가 112만 회에 달한다. 최 박사에게 2024년 세계경제와 금융시장 화두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최 박사와 일문일답.
2024년 미국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경기가 침체되면 고용 시장이 안 좋아지고 소비 심리도 위축되기 마련인데 미국은 고용 시장이 계속 좋은 상태로 버텼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 때문에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고, 재정·금리 정책도 뒷받침이 됐다. 이런 호황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시장을 잘 들여다보면 캘리포니아주부터 시작해서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조짐이 보인다. 일자리 1개당 몇 명이 지원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직 배율이 계속 0~1을 기록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2023년 12월 1.2로 올랐다. 구직자 간 경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 때 벌어둔 초과 저축이 거의 떨어져 가는 상황까지 고려할 때 좋게 말하면 소프트랜딩(soft landing·연착륙)할 수 있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노 랜딩(no landing·침체 없는 호황기 지속)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있다면.
“미국은 올해 선거를 앞두고 있다. 돈 쓸 데는 많고 세금 걷기는 쉽지 않아서 채권 발행을 더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 재무부는 이미 10년 만기 국채를 너무 많이 발행했다. 전체 국채 발행 물량이 줄어야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의도한 대로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시중금리도 단계적으로 내려갈 수 있다.
일본 중앙은행이 YCC(수익률 곡선 제어 정책)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인지도 주목해야 한다. YCC는 무제한 국채 매입을 통해 장기 국채 금리 상한을 1%로 유지하는 정책이다. 일본 보험사와 지방은행 등 기관이 미국 국채를 많이 사는 큰손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세계경제 흐름에서 많은 것이 바뀐다. 중국이 그림자 부채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지, 2023년처럼 질질 끌려갈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정부가 부채를 정리하겠다는 방향은 잡았으나 구체적으로 구조화하는 데 너무 속도가 느리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1~2년 지나면 부채가 정리될 것이란 시그널을 시장에 줄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올해 한국 경제는 어떨까.
“태영건설이 부동산 PF 사업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다 워크아웃(기업 구조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총선까지는 (PF 관련)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태영건설이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시간표가 넉 달 정도 앞당겨진 상태다. PF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러다 보니 불확실성이 계속 증가하고 다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서 소비가 둔화하고 대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쯤 되면 내수 경기가 침체를 넘어 일부 분야에서는 붕괴 상황까지 올 수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유통업, 소규모 제조업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도 당연히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경제가 좋아져서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건이 호전되면 좋겠지만 2023년처럼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라면 경제 충격을 우리가 그대로 맞을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구조조정이 필연적이다. 우리나라는 정책금융이란 이름으로 중소기업을 과도할 정도로 다 살렸다. 이제는 그만하고 털 건 털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2024년 이후 국내외 경제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는 연준이 도깨비방망이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인내심이 없어졌다. 경제라는 건 침체와 불황 사이클을 겪으면서 정리해야 할 건 정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한 번씩 거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후 단 한 번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본격적인 부채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의 악몽이 너무 강해서 계속 뒤로 미룬 거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한 번쯤 냉탕에 들어가 정신을 차리고 털어낼 건 털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대외 상황이 좋다면 무난하게 충격을 넘길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무서울 정도로 올라왔지만 우리나라는 치고 나갈 여력이나 힘이 떨어져 있다. 글로벌 교역 규모가 옛날처럼 지속적으로 커지는 상황도 아니다.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한 번쯤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낼 타이밍이 지금 왔다. 이런 시간을 최대한 안 아프게 지나갈 수 있게 2~3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느냐는 우리나라 재정 당국과 금융 당국의 능력에 달려 있다.”
고물가·고금리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불황이 찾아오면 빨리 끝날 것이다. 문제는 올해 전 세계 40개국에서 선거를 한다는 데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가 치러지므로 각 나라 정부가 돈을 풀고 뭔가를 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1970년대 미국은 기준금리를 18.5%까지 올리면서 3년 만에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그사이에 제조업 일자리 1900만 개가 없어졌다.”
국내 산업별 경기 전망을 해본다면.
“제조 업체들과 제조업 기반 국가들은 당분간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것이다.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주요 산업은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이다. 자동차는 2023년에 매우 좋았기 때문에 2024년은 그보다 더 좋아지긴 어려울 것이다. 반도체 경기는 좋아지기까지 1~2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