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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장비 업체 하나마이크론이 2023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베트남 생산법인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 반도체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 매출 경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성장세는 반도체 업황 회복이 예상되는 올해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3년 사상 첫 매출 1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상장사로 삼양식품, 파라다이스, 티웨이항공과 함께 하나마이크론이 꼽혔다. 하나마이크론은 2023년 매출액이 1조215억원으로 전년(8944억원)보다 14%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영업이익은 803억원으로 전년보다 약 22% 감소한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 고객사 재고 조정에 따른 물량 감소, 가동률 저하 탓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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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이크론은 국내 반도체 산업 태동기인 1980~90년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임원을 지낸 최창호 회장이 2001년 설립한 반도체 후(後)공정 기업이다. 제조된 반도체를 최종 탑재하기 전 진행하는 테스트(test), 패키징(packaging·조립)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최대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 업체다. 테스트는 수율(정상품 비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패키징은 칩을 보호하면서도 고성능 칩을 최고 성능으로 집적하는 과정이어서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인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이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성능 칩 투자에 집중하고 있어 기존 제품의 후공정 작업은 외주화하는 등 낙수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매출 비중이 80~90%에 달했던 하나마이크론은 2021년 11월 SK하이닉스와 반도체 후공정 완제품 외주 임가공(외주 생산) 계약을 체결하며 매출 다변화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 전용 베트남 생산법인인 ‘하나마이크론 비나’는 2022년 하반기부터 일부 가동을 시작해 매출 증대에 기여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곳에서만 2023년 1~3분기 2205억원의 매출이 나왔다. 2027년까지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하나마이크론은 2019년부터 베트남 진출을 타진해 왔다. 박장성에 1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2공장도 설립했다. 두 공장을 합친 부지 규모는 6만6000㎡(약 2만 평), 총투자액은 6억달러(약 7893억원)에 이른다. 하나마이크론은 매년 현지 인력을 대폭 충원하는 등 2025년까지 총투자액을 10억달러(약 1조3155억원)로 늘려 비나 법인 생산 여력을 키우는 데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3교대로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OSAT 사업은 인건비가 경쟁력이어서 베트남 생산 물량이 늘어날 경우 수익성 개선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부터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테스트·패키징 부문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점도 호재다. 회사는 비메모리 완제품 테스트 수요 증가에 따라 아산사업장 내에 관련 생산 라인을 확장하기 위한 1500억원 상당의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2019~2020년에 450여억원을 투자한 데 이은 것이다. 비메모리 매출 비중은 2023년 3분기 기준 28%다. 삼성전자가 새해 1월에 공개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 S24’에 자체 제작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를 탑재하는 것도 하나마이크론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마이크론의 최대 주주는 창업자인 최 회장으로, 지분율은 16.56%다. 하나머티리얼즈가 9.89%, 최 회장의 배우자인 오문숙씨 0.98%, 이동철 대표이사가 0.35%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있는 
하나마이크론 본사. 
사진 하나마이크론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있는 하나마이크론 본사. 사진 하나마이크론

온디바이스 AI 부상, 반도체 회복 견인

반도체 업황이 기지개를 켤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하나마이크론은 사상 최대 매출을 다시 갈아치울 전망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 업계는 하나마이크론의 올해 매출을 1조5000억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차용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장기간 하락세가 올해부터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는 만큼 패키징 물량이 늘어나고, 가동률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마이크론의 주요 연결 회사인 하나머티리얼즈도 올해부턴 실적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007년 설립한 반도체 전(前)공정 업체 하나머티리얼즈는 반도체 식각(반도체 원판에서 특수 화학약품을 사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씻어내는 것) 공정에 사용되는 실리콘 등 소모성 부품을 생산한다. 2023년 반도체 불황 여파로 매출이 2600억원대로 전년 대비 두 자릿수 감소한 것으로 추산되지만 식각 장비 고객사의 재고 조정이 일단락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 새해 전망은 밝다.

여기에 생성 AI(Generative AI)를 넘어 올해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가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 2024 주 무대를 장식하는 것도 반도체 시장 부활을 견인하는 큰 트렌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를 거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기술이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고, 비행기 안에서 AI 서비스를 쓸 수 있는 식이다. 삼성·애플의 올해 신작에 온디바이스 AI 기능이 탑재되는 등 업계는 2024년이 ‘AI 스마트폰’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성능은 매우 중요해지며 후공정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KB증권은 “2028년이면 PC 시장의 80%, 스마트폰 시장의 60%가 AI를 탑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