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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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동, 밧(baht)화와 같은 현지 통화보다 미국 달러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여행객들은 거의 매일 달러를 보고 만져야 하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이 강력한 화폐에 숨겨진 다양한 상징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달러 지폐 앞면, 국가적 권위

1달러 지폐의 앞면을 보면 정중앙에 조지 워싱턴의 초상이 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혁명 당시 식민지군 총사령관을 지냈고 독립 이후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워싱턴은 불굴의 인내와 용기로 암울한 전쟁을 승리로 바꾸어놓은 인물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인은 조지 워싱턴을 ‘신뢰와 화합’의 상징으로 여긴다. 지폐의 네 귀퉁이에는 숫자 1이 새겨져 있고, 우측 중앙과 하단에는 큰 글씨로 One이 새겨져 있다. 화폐는 화폐단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폐 상단에는 미합중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연방준비은행권(Federal Reserve Note)이라는 증서 명칭이 적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1달러 지폐는 은행권(note)이 아니라 은증서(silver cirtificate)였고, 그 발행 주체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아니라 재무부(연방정부)였다. 당시 은증서는 국가가 은의 지급을 보증하는 국가화폐였고, 은행권은 일반은행이 자신의 신용으로 발행하는 약속어음이었다. 국가화폐와 민간화폐가 혼재돼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국가화폐가 화폐시장을 독점하고 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재무 장관과 재무관의 서명이 적혀 있다. 달러의 발행 주체는 중앙은행이 아니라 재무 장관인 것이다. 

지폐 우측 중앙에는 재무부 인장이 찍혀 있다. 재무부 인장은 원 안에 방패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방패 중앙에는 갈매기 모양의 꺾쇠가 있다. 이 꺾쇠에는 13개 점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13개 식민지를 의미한다. 꺾쇠 위에는 양팔 저울이, 그 아래에는 열쇠가 새겨져 있다. 양팔 저울은 세입과 세출의 균형(균형예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와 의무의 균형(정의)을 의미하고, 열쇠는 창고지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지폐의 좌측 중앙에는 알파벳 A~L 중 하나가 새겨져 있고 그 둘레에 OO준비은행이라는 글자가 원형으로 인쇄돼 있다. 미국은 연방주의에 따라 설립된 국가다. 연방국가는 국가(연방) 안에 국가(주)가 들어 있는 이중국가를 의미한다. 미국에 연방헌법, 연방의회, 연방정부, 연방법원과 별도로 주마다 주 헌법, 주 의회, 주 정부, 주 법원이 존재하는 이유다. 1913년 연준(중앙은행)을 설립하면서 미국 전역을 12개 경제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 대표 도시에 준비은행을 만들었다. 보스턴 준비은행은 ‘1A’, 샌프란시스코 준비은행은 ‘12L’이라는 기호로 표시한다. 달러 앞면에 A와 1이 새겨져 있다면 보스턴 준비은행의 요청에 따라 미 조폐청(U.S. Mint)이 인쇄한 지폐를 의미한다.

지폐의 좌측 상단에는 ‘이 은행권은 모든 채무에 대한 법화(legal tender)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영어 legal은 ‘법’을, ‘tender’는 지급수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자를 결합하면 ‘법이 정한 지급수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전 세계는 금본위제, 즉 귀금속을 화폐(종이돈)의 기준으로 사용했다. 금본위제 아래서 모든 상업은행은 은행권, 즉 귀금속에 대한 지급 청구권을 표시한 약속어음을 발행하여 지급수단으로 사용했다. 법화는 다양한 지급수단 중에서 국가가 인정한 지급수단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홍콩은 민간은행(SC·HSBC·중국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법화로 사용하고 있다. 금전 채무자(납세자)가 금전 채권자(국왕)에게 법화를 지급하면 채무(납세의무)를 이행한 것이 된다.

1달러 지폐 뒷면. 사진 셔터스톡
1달러 지폐 뒷면. 사진 셔터스톡

달러 지폐 뒷면, 국가적 염원

지폐의 뒷면에도 네 귀퉁이에 1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고, 중앙과 하단에 ONE이라는 화폐단위가 새겨져 있다. 1934년 이전까지는 이것이 전부였다. 따라서 지폐 수집가들은 1934년 이전의 단조로운 1달러 지폐를 두고 ‘재미있는 뒷면’이라고 부른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실시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질서’라는 문구가 담긴 미국 국새(Great Seal)를 돈에 찍어 넣고 싶어 했다. 미국 국새는 1776년부터 6년간 논쟁을 거쳐서 1782년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완성한 걸작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등 당대의 대가들이 참여했다.

1934년 이후 달러의 뒷면에는 미국 국새가 찍혀 있다. 우선 독수리가 새겨져 있는 오른쪽 인영(도장)을 살펴보자. 당시 의회 회의록에는 이 독수리는 단순한 독수리가 아니라 “날개를 펼치고 높이 솟아오르는 미국 독수리”라고 적혀 있다. 독수리는 숲과 나무가 없더라도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간다. 독수리의 왼쪽 발톱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13개의 화살이, 오른쪽 발톱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13개의 올리브 가지가 쥐어져 있다. 물론 13이라는 숫자는 13개 식민지를 의미한다. 그런데 처음 만들어진 미국 국새에서는 독수리가 오른쪽 발톱으로 화살을 쥐고 있었다. 일부 유럽 언론과 외교관들은 이것을 미국이 지닌 호전성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외교적 분쟁에 이용하려고 했다. 1807년 미국은 국새의 디자인을 바꿈으로써 외교적 갈등을 해결했다. 독수리의 오른쪽 발톱에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쥐게 함으로써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는 이러한 기호학의 향연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독수리는 ‘다수 중 하나(E Pluribus Unum)’가 적힌 깃발을 물고 있는데, 이것은 평화와 공존을 의미한다. 독수리 가슴은 방패가 막고 있는데 방패의 가로무늬는 연방정부(연방의회)를, 세로무늬는 13개 식민지를 나타낸다. 독수리 머리 위에 13개 별이 빛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국가가 기존 국가들 사이에서 훌륭하게 자리 잡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담았다.

‘도덕성이 나쁜 새’와 미국 국조 

지폐의 왼쪽 중앙에는 피라미드(국새)가 인쇄돼 있는데, 이는 ‘강건과 지속’을 의미한다. 피라미드는 13줄의 기단(식민지)으로 구성되며 최하층 기단에는 독립 연도(MDCCLXXVI·1776)가 새겨져 있다. 피라미드 아래에 쓰인 ‘시대의 새로운 질서(Novus Ordo Seclorum)’는 로마 건국을 노래한 버질(Virgil)의 시에서 따온 말로써 ‘새로운 미국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모든 방향으로 광선이 방출되는 눈(eye)이 있고, 그 위에는 ‘신의 섭리가 우리를 보호한다(Annuit Coeptis)’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늘날 미국 달러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이처럼 간절한 선조들의 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미국 국새에는 피라미드 대신 파라오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 제퍼슨과 프랭클린은 손에 칼을 들고 마차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이집트 파라오를 국새에 넣고 싶어 했다. 이 그림은 ‘폭군에 대한 반역은 신에 대한 순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국에 대한 뒤끝이 작렬한 것이다. 프랭클린은 칠면조를 미국의 국조로 삼고 싶어 했다. 그는 ‘독수리는 도덕성이 나쁜 새’지만 ‘칠면조는 점잖고 존경받는 새’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