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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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 경제를 바라보자면 우리 경제와는 달리 상당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연초부터 대규모 강진 피해가 발생하고 집권 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의 불법 정치자금 논란으로 정치적인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닛케이지수가 거의 34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일본의 경제만큼은 다른 부문과는 달리 전혀 딴판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일본 주오대 경제학 
석·박사, 전 대구경북
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일본 주오대 경제학 석·박사, 전 대구경북 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실제로 2023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약 2% 정도로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달성했을 가능성이 커 보이고, 올해도 1% 정도의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물가 상승과 함께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를 상회하는 이른바 GDP 갭 플러스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3% 내외 수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함께 구조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임금 상승률도 3%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여 그동안 일본 경제를 괴롭혀 왔던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서 탈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는 당연한 수순으로 마이너스 정책 금리, 수익률곡선제어(yield curve control), 시중 유동성(monetary base) 확대 등 3종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기대되는 상황인데 심지어 최근에는 정상 국가 논란이 한창이기도 하다. 재정정책과 더불어 대표적인 거시경제 안정화 수단인 통화정책이 비정상적으로 운용돼 왔던 만큼 정상화 단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니,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최근 일본 경제를 논할 때 정상 국가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는 모습도 크게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정상 국가를 논할 정도로 일본 경제는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 피크론과 장기 저성장 우려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우리 경제가 과거 일본 경제처럼 부동산을 필두로 한 자산시장 버블 붕괴와 함께 부채 상환에 내몰리면서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작아 보이고, 더군다나 30년 이상에 걸친 초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더더욱 작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성장 피크론이 우리 경제의 성장 기반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장기적인 성장세 하락이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수요 압력 약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실제 GDP가 잠재 GDP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경제 전반의 수요 압력 약화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수준 역시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에 못 미치는 현상이 동시 진행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내외 여건상 성장 애로를 겪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무리한 임금 인상을 강요할 수도 없고, 재정 여력 악화를 감내하면서까지 감세 등의 정책을 통해 가계 소득과 소비 여력을 확충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수요 압력 약화는 피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통화정책에 기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마저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정책 효율성이 낮은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일본의 경험에 비춰볼 때 적어도 올해만이라도 2% 초반대로 알려져 있는 잠재성장률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성장세를 실현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시장의 성장 피크 논란을 불식시킴으로써 경제 주체들의 저성장 기대를 꺾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운용력이다. 아울러 이는 우리 경제의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지속 성장 가능성을 키우는 수단이기도 하므로 단기 성과에만 천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