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스노커 토카이 아수 5 푸토뇨스 .
2 디스노커 토카이 아수 6 푸토뇨스 카피 빈야드.
3 디스노커 토카이 1413.
4 디스노커 토카이 인스피레이션
사진 디스노커
1 디스노커 토카이 아수 5 푸토뇨스 . 2 디스노커 토카이 아수 6 푸토뇨스 카피 빈야드. 3 디스노커 토카이 1413. 4 디스노커 토카이 인스피레이션 사진 디스노커

토카이 아수(Tokaj Aszu)는 헝가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스위트 와인이다. 왕실과 귀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이 와인을 두고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왕을 위한 와인이자 와인 중에 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나는 이 와인에 정복됐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진한 단맛에도 불구하고 우리 음식과도 의외의 궁합을 보여주는 토카이 아수. 그 달콤한 매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토카이 아수란 토카이에서 아수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는 뜻이다. 토카이는 헝가리 북동쪽 끝에 위치한 와인 산지이고 아수는 곰팡이에 감염돼 바짝 마른 포도를 말한다. 곰팡이라니!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음식 중에도 곰팡이를 활용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메주다. 메주로 만든 간장, 된장, 고추장이 없는 한식은 상상이 안 된다. 물론 메주와 포도의 곰팡이는 종류가 다르고 거의 모든 곰팡이는 포도에 해롭다. 오직 한 가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만 감미로운 황금빛 와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곰팡이를 노블 롯(Noble Rot) 또는 귀부균(貴腐菌)이라고도 부른다.

귀부균에 감염되면 포도는 서서히 마르면서 당분과 향을 농축시킨다. 이런 포도로 만들기에 보디감이 묵직하고 농익은 과일 향이 풍부하며 꿀처럼 달콤한 와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귀부균은 어디서나 발생하지 않는다. 주변에 강이 있어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한낮에는 밝은 햇살이 비치며 맑고 건조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한다. 드물게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이 토카이 지방이고, 그곳에서도 가장 유명한 밭이 디스노커(Disznókő)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토카이 아수 최고의 밭, 디스노커

디스노커에 대한 기록은 14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면적이 1.5㎢나 되는 이 밭은 당시에 이미 최상위 등급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데 헝가리의 공산화가 디스노커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디스노커가 국유화되면서 이곳의 포도가 다른 밭의 포도와 마구 뒤섞여 양조됐고 낙후된 기술 때문에 와인의 품질도 저급했다. 디스노커의 부활은 헝가리의 자유화와 함께 찾아왔다. 1992년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악사(Axa)의 자회사 악사 밀레짐(AXA Millésimes)이 디스노커를 매입하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옛 영광을 되찾기 시작했다.

얼마 전 디스노커의 디렉터 라슬로 메사로스(László Mészáros)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1995년 대학 졸업 후 디스노커에서 28년간 일하며 토카이 아수 와인의 현대화와 고급화를 이끈 인물이다. 그에게 디스노커의 특별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물었다. “디스노커 밭은 세 개의 경사지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화산 토양이지만 토질이 구획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같은 포도를 재배해도 맛에 차이가 있다. 이런 특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우리는 포도나무부터 새로 심었다”라고 그는 답했다.

메사로스에 따르면 아수 포도는 한꺼번에 수확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포도알마다 귀부균에 감염되는 정도가 달라서다.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수확 팀은 매일 포도밭을 방문해 곰팡이가 슬어 잘 마른 포도알만 알알이 수확하고, 이렇게 모은 포도알을 한창 발효 중인 화이트 와인에 투입한다. 2~3일 뒤에 바짝 말랐던 포도알이 와인을 빨아들여 촉촉해지면 압착해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를 마무리한다. 일반 와인에 비하면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지 묻자 메사로스는 “옛 문헌을 보며 연구해서 찾아낸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만들면 아수 포도의 진한 풍미를 최대한 추출할 수 있고 와인에서 탄탄한 구조감도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다.

1 가을 단풍에 물든 디스노커 밭. 2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가 말라가는 과정. 3 알알이 수확하는 아수 포도. 4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토카이 아수 와인. 
5 짭짤한 블루 치즈에 곁들인 토카이 아수 와인. 6 한국을 방문한 디스노커의 디렉터 라슬로 메사로스. 사진 디스노커·김상미
1 가을 단풍에 물든 디스노커 밭. 2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가 말라가는 과정. 3 알알이 수확하는 아수 포도. 4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토카이 아수 와인. 5 짭짤한 블루 치즈에 곁들인 토카이 아수 와인. 6 한국을 방문한 디스노커의 디렉터 라슬로 메사로스. 사진 디스노커·김상미

다양한 당도와 스타일, 한식과도 환상적인 궁합

토카이 아수 와인의 당도는 푸토뇨스(po-ttonyos)라는 숫자로 구별된다. 27L 용량의 나무통을 푸토니라고 하는데 136L의 와인에 아수 와인을 다섯 통 투입하면 5 푸토뇨스, 여섯 통 투입하면 6 푸토뇨스가 된다. 숫자가 클수록 아수 포도가 많이 들어가니 와인의 당도가 높아지고 풍미도 진해진다. 디스노커의 토카이 아수 5 푸토뇨스를 맛보면 꿀, 살구, 복숭아, 망고 등 달콤한 향이 가득하고 질감에서 탄력이 느껴진다.

디스노커의 6 푸토뇨스 와인 중에는 카피(Kapi)라는 단일 구획에서 생산된 싱글 빈야드급도 있다. 150~180m 고도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푸르민트(Furmint)라는 청포도 한 가지만 재배한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금빛이 영롱하고 복숭아와 파인애플 등 잘 익은 과일 향이 풍성하며 아카시아와 바닐라의 향긋함이 우아함을 더한다. 보디감이 묵직하고 단맛이 진하지만 신맛이 균형을 잡아 여운이 깔끔하다.

산뜻한 맛을 선호한다면 디스노커의 1413을 추천할 만하다. 이 와인은 약간 덜 마른 아수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5나 6 푸토뇨스보다 단맛이 덜하다. 은은한 꿀 향과 함께 레몬이나 자몽 등 과일 향이 신선하고 스타일이 경쾌하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당도가 낮기 때문에 어울리는 음식의 폭이 넓은 것도 장점이다.

디스노커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 푸르민트 100%로 만든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은 복숭아, 배, 리치 등 싱싱한 과일 향과 여운에서 살짝 느껴지는 짭짤함이 매력적이다. 늘 마시던 와인에서 벗어나 색다른 맛을 찾는다면 인스피레이션이 좋은 선택이다.

“유럽에서는 토카이 아수를 블루 치즈나 푸아그라에 자주 곁들이지만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 매운맛과 짠맛이 와인의 단맛을 상쇄하고 과일 향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불고기와 함께 마셔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메사로스는 토카이 아수를 한식과 꼭 즐겨 볼 것을 권했다. 떡이나 한과와도 궁합이 좋으니 오는 설에는 토카이 아수로 근사한 와인 상을 차려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