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표 
SK하이닉스 소프트웨어
(SW) 솔루션 담당 부사장
서울대 컴퓨터공학·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SoC 아키텍처와 시스템 
시뮬레이션 전문가 사진 SK하이닉스
주영표 SK하이닉스 소프트웨어 (SW) 솔루션 담당 부사장
서울대 컴퓨터공학·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SoC 아키텍처와 시스템 시뮬레이션 전문가 사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통틀어 가장 빠르고 기민하게 인공지능(AI) 광풍에 대응하고 있는 기업이다. AI 메모리로 각광받기 시작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엔비디아, AMD 등과의 끈끈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고성능 서버용 D램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DDR5(Double Data Rate·메모리 반도체인 D램의 표준 규격) D램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한발 앞서나가고 있다.

메모리 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주문형 메모리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은 도드라진다. SK하이닉스는 애플의 차세대 MR(혼합현실) 기기 ‘비전 프로’에 탑재되는 ‘R1’ 칩에 맞춤형 특수 D램을 단독으로 공급하며 주문형 메모리 시장에 첫발을 디뎠다.

주영표 SK하이닉스 소프트웨어(SW) 솔루션 담당 부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종합반도체회사(IDM)는 몇 년 앞을 내다보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 특성상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며 이 같은 보수성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요구하는 시장에 반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의 SK하이닉스는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엔지니어와 새로운 형태의 제품 요구에 민감한 기획자들, 새로운 사업 모델에 진심인 경영진이 포진하고 있다”며 “기존의 소품종 대량생산의 공식에서 벗어나 다변화되어 가는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이러한 문화가 큰 강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AI 반도체 분야에서의 성공 열쇠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강조했다. 그는 “(인텔이나 엔비디아 등)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들이 현재의 시장 주도자적 지위를 획득한 데는 반도체 설계·제조의 역량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량이 한몫하고 있다”며 “AI 반도체 시대에 메모리 역시 CPU, GPU와 마찬가지로 SW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는 메모리 시장 지각변동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주 부사장은 “2022년까지 업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던 새로운 메모리 솔루션의 트렌드가 2023년을 거치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며 특히 생성 AI(Generative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함께 AI에 최적화된 스페셜티(specialty) 메모리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가 시작될 것으로 관측했다. 다음은 주 부사장과의 일문일답.

최태원(오른쪽 첫 번째)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SK
최태원(오른쪽 첫 번째)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SK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할 수 있었던 동력은.
“기존의 메모리 시장은 DDR 스펙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2010년대 중반부터 고객 요구가 기존 DDR 스펙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예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요구하는 대역폭(초당 데이터 전송량)과 용량의 두 마리 토끼를 DDR로는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HBM 같은 고성능의 방향과 CXL 같은 대용량의 방향이 양분되어 기술을 준비해 오고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이 기술들에 대해서 꾸준히 센싱(Sensing)해 왔으며, 가능성 큰 기술들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연구개발을 비롯해 고객과의 협력을 진행해 왔다.

가능성 있는 신기술들을 끊임없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 고객 대비 호흡이 긴 반도체 업계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SK하이닉스는 이러한 시도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SK그룹이 AI에 진심이었던 점도 변화의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하는 데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AI를 관계사의 다양한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AI가 컴퓨팅 시스템의 근본을 변화시킬 파급력이 있다고 포착할 수 있었다.”

AI와 XR(확장현실) 같은 첨단 기기의 등장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처럼 범용 메모리만 공급하는 것만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갖춰야 고객사가 원하는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메모리는 국제반도체표준화기구(JEDEC)로 대표되는 스펙을 맞추면서 가격과 파워에서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CPU, GPU는 명시적인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품마다 차별화의 가능성이 크게 열려 있고, 구현하기에 따라 수십~수백 배의 성능 차이를 보일 수 있는 SW 경쟁력이 중요하다.

이제는 메모리도 컨트롤러 SoC(System-on-Chip)를 탑재한 솔루션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 컨트롤러에서 CPU가 수행하던 연산의 일부를 처리하는 콘셉트도 논의되고 있다. 아예 PIM(Processing-In-Memory), PNM(Processing-Near-Memory) 같이 메모리 솔루션이 핵심 연산을 수행하는 콘셉트도 이미 기술 실증까지 진행됐다. 메모리 분야에서도 SW 역량이 본격적으로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업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2014년부터 ‘메모리시스템연구소’를 만들어 관련 역량을 준비해 왔다. 현재 해당 조직은 ‘Memory Systems Research’라는 이름으로 AI 인프라 조직 내에서 차세대 메모리·스토리지 솔루션을 위한 연구개발에 힘쓰고 있다. 메모리 회사를 위해 일하지만, SoC, 시스템 그리고 SW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고객 관점에서 메모리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I 광풍과 함께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메모리 반도체의 퍼포먼스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인텔의 기술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인텔에는 터보 부스트라고 업계에 알려진 기술이 있다. 최신 CPU는 수십 개의 코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중 사용하지 않는 코어들을 잠시 끄고, 사용하는 코어만을 더 높은 속도로 돌리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SW의 제어가 중요하다. 워크로드에 따라 몇 개의 코어를 켜야 하는지 그리고 잠시 꺼두었던 코어들을 언제 켜야 하는지, SW와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 SW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오히려 성능이 하락하거나 파워 소모가 커질 위험도 있다. CPU, GPU 시장 리딩 업체들이 현재의 지위를 획득한 데는 반도체 설계·제조 역량뿐만 아니라, 이러한 SW 역량도 한몫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메모리도 CPU·GPU같이 SW 경쟁력이 중요해지는 변곡점에 있다.”

2023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총평과 올해 SK하이닉스 소프트웨어 솔루션 조직의 전략적 목표가 있다면.
“2022년까지 업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던 새로운 메모리 솔루션의 트렌드가 2023년을 거치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2022년 말까지는 대용량 메모리 논의가 주를 이뤘다면, 2023년 하반기부터는 AI를 위한 스페셜티 메모리에 대한 논의가 데이터센터·클라우드부터 온디바이스 AI까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 중 어떤 분야의 제품이 유망한지 그리고 해당 제품의 스펙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SW 관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