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 참가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신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인도 공보부·AFP연합
1월 22일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 참가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신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인도 공보부·AFP연합

인도 역사상 최악의 종교 분쟁 지역으로 꼽히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서 대형 힌두교 사원 축성식이 1월 22일(현지시각) 열렸다.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올해 총선에서 3연임에 도전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이를 계기로 본격 선거 캠페인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북부 아요디아에서는 모디 총리, 고탐 아다니 아다니그룹 회장을 비롯해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등 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힌두교 ‘라마신’ 사원 축성식이 열렸다. 모디 총리는 약 1.2m 크기의 라마신상 앞에서 힌두교 사제들과 함께 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어 그는 군중에게 “정의가 이뤄졌고, 자부심이 회복됐으며, 기다리던 영광스러운 새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이날 아요디아 거리는 금잔화 등 꽃으로 채워졌고, 힌두교를 상징하는 샤프란(주황)색 깃발이 곳곳에 휘날렸다. 수만 명의 신자는 라마신을 외치며 축하 행렬에 함께했다. 인도 정부는 축성식 치안 유지를 위해 2만여 명의 보안 요원을 배치했으며 1만 대 이상의 보안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3만3000㎡(약 1만 평) 부지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은 모디 정부가 2019년부터 재건축한 것으로, 1단계 완공에 맞춰 이날 축성식을 열게 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사원 건축 비용으로만 2억5000만달러(약 3345억원)가 들었다. 2단계인 최종 완공은 2025년 12월로 예정돼 있다.

힌두·이슬람 최악 분쟁지에 개관

그런데 라마신 사원이 들어선 이 장소는 인도 역사상 최악의 종교 분쟁으로 꼽히는 힌두교와 이슬람 간 유혈 충돌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아요디아는 힌두교도가 라마신 탄생 성지로 여기는 지역이다. 1528년 인도를 지배한 무굴제국이 힌두교 사원을 허물고 이슬람 모스크를 세운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이후 500여 년 동안 이 지역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이 이어졌다. 결국 30년 전인 1992년 일부 과격 힌두 민족주의자가 모스크를 파괴하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무력 충돌하며 최소 2000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은 모디 총리의 정당이자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운 인도인민당(BJP)이 제1당에 오른 와중에 일어난 것이었다. BJP는 아요디아 참사 이후 1996년과 1998년, 2019년 선거에서 잇따라 제1당에 올랐다. 그사이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이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벌였는데, 2019년 대법원은 힌두교 손을 들어주며 힌두교 사원 건립이 시작됐다.

많은 인도 국민이 1월 22일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 축성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인도 공보부·EPA연합
많은 인도 국민이 1월 22일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 축성식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인도 공보부·EPA연합

3연임 노리는 모디, 사실상 4월 총선 출정식 무대

모디 정부는 이날 축성식을 이유로 정부 부처 반나절 휴무를 결정했고, 주식시장도 문을 닫게 했다 일각에서는 모디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아요디아 사원을 정치적 무대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억 명에 달하는 인도 인구 가운데 약 80%는 힌두교도이며 15%는 무슬림이다. 모디 총리가 이 사원을 통해 표심 대다수인 힌두교도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인도에서는 5년마다 하원 의원 선거를 하고, 승리한 당에서 총리를 배출한다. 모디 총리는 올해 4월 예정된 총선에서 3연임에 도전한다. 2014년 처음 총리직에 오른 그는 2019년 총선에서 BJP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다. 현재 분위기는 집권당인 BJP의 승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AP통신은 “힌두교 사원 개관식이 대규모 국가 행사로 변질됐다”며 “사실상 모디 총리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것”이라고 전했고, CNN은 “이번 축성식은 모디의 선거 캠페인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아요디아 힌두교 사원은) 이 나라를 힌두 국가로 변화시키려는 모디 총리의 꿈을 실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도 야권에서는 모디 총리의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디 총리의 최대 경쟁자로 꼽히는 라훌 간디 전 인도국민회의(INC) 총재는 “모디 총리가 (아요디아 사원을) 완전히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인 전인도이슬람교연맹이사회의 아사두딘 오와이시 의원도 “이슬람 모스크는 매우 체계적으로 약탈당했다”며 “1992년 (힌두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같은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印 정부 ‘힌두 민족주의’ 기조 강화하나

모디 총리는 10년 가까이 집권하며 종교를 내세워 지지 기반과 정치 세력을 확장하는 정책을 펼쳐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힌두트바(힌두 근본주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모디 정부는 2023년 9월 인도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초청장에 인도(India) 대신 바라트(Bharat)란 국명을 사용했다. 바라트는 힌두교 신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모디 총리와 BJP는 ‘인도’라는 명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쓰던 것이기 때문에 국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도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는 모디 정부가 힌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소수민족과 무슬림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모디 정부의 힌두트바 정책이 비(非)힌두교도에 대한 차별과 탄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주지사를 지내던 2002년 당시 힌두교도의 공격으로 무슬림 2000여 명이 숨진 폭동 사태를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2005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그의 미국 입국을 불허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19년 모디 정부는 무슬림이 총인구 3분의 2를 차지하는 잠무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65년 만에 박탈하고, 사실상 무슬림 배제를 겨냥한 시민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2년에는 일부 지역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해 무슬림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최근 들어 BJP는 무슬림 남성과 힌두교도와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까지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모디 총리의 최근 행보를 두고 추후 인도 정부의 힌두 민족주의 기조가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도 역사학자 카필 코미레디는 영국 가디언에 “모디 총리와 BJP가 헌법상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믿는 세속 공화국인 인도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했고, CNN은 1992년 유혈 사태 당시 가족을 잃은 현지 무슬림의 말을 인용해 “아요디아의 50만 무슬림은 추방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며 “이들은 30년 전 종교적 폭력이 재발할까 봐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