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서울 양천구 A 대형마트에서 물가 조사를 하는 통계청 직원이 중량, 가격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해당 제품은 통계청이 물가 조사 품목으로 지정한 대상과는 관련 없음. 사진 박소정 기자
1월 19일 서울 양천구 A 대형마트에서 물가 조사를 하는 통계청 직원이 중량, 가격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해당 제품은 통계청이 물가 조사 품목으로 지정한 대상과는 관련 없음. 사진 박소정 기자

“이 김 제품은 저번보다 봉지당 무게가 0.5g 줄었네요.”

1월 19일 서울 양천구 A 대형마트에서 만난 경인지방통계청 경제조사과 조성민 주무관은 ‘맛김’의 가격을 확인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태블릿 PC 화면에는 ‘⃝⃝⃝(브랜드) △△김(상품명) 1봉지(5g×16봉)’란 조사 대상 품목이 띄워져 있었다. 기존엔 한 봉지당 무게가 5g짜리였는데, 최근 4.5g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는 화면에 가격 입력하기를 멈추고, ‘품목 일시 출회 중단’ 버튼을 눌렀다. 통계청 본청 물가 담당자에게 중량이 변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크기·용량을 줄이는 ‘꼼수’로 사실상의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정부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건 불과 2023년 11월의 일이지만, 통계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슈링크플레이션 현상까지 반영해 물가 조사를 해 왔다.

물가는 크게 ‘상품’과 ‘서비스’ 성질의 품목 가격으로 구성된다. 상품 중에서도 가공식품·내구재·섬유제품 등을 일컫는 ‘공업 제품’이 슈링크플레이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공업 제품의 물가 조사는 과연 어떻게 이뤄질까. 조 주무관을 따라 1월치 물가 조사 시연 과정을 체험해 봤다.

경인지방통계청 경제조사과 조성민 주무관이 1월 19일 서울 양천구 A 대형마트에서 물가 조사 시연을 하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품목들의 가격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내장된 태블릿 PC다. 사진 박소정 기자
경인지방통계청 경제조사과 조성민 주무관이 1월 19일 서울 양천구 A 대형마트에서 물가 조사 시연을 하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품목들의 가격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내장된 태블릿 PC다. 사진 박소정 기자

물가 조사 날짜도, 장소도, 대상도 철저히 ‘비공개’

조 주무관을 만난 이곳은 ‘서울 10권역’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이런 권역이 서울에만 13곳이 있다. 전국으로 확대해 보면, 전국 40개 도시에 총 155개 권역이 지정돼 있다고 한다.

조 주무관은 최근 사흘에 걸쳐 1월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담당 지역 조사를 마쳤다고 했다. 공업 제품은 매달 중순 3일간에 걸쳐 1회 조사가 이뤄진다. 공업 제품이 아닌 농·축·수산물은 매달 초·중·하순 1일간(3회), 전기·수도·가스는 매월 하순 2일간(1회), 서비스는 매월 하순 2일간(1회) 조사가 이뤄진다. 품목 성질을 반영한 가격 조사 패턴이다.

조사일이 되면 조 주무관 같은 전국의 모든 조사 담당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그 날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달 바뀐다. 해당 권역이 어디인지, 그 권역 내에서도 대형마트·백화점·재래시장·편의점 등 어느 대상처를 가야 하는지도 철저히 비밀이다. 조사 대상과 방식이 알려지면 정부나 업계에 의해서 가격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어서다.

조 주무관 손에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물가 조사 담당자의 필수 도구다. 과거엔 공책에 일일이 수기로 기록했다지만, 이제는 태블릿 PC에 띄운 ‘나라통계’ 조사 시스템이 공책 역할을 대신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CPI)를 구성하는 품목은 총 458개다. 그중 공업 제품은 228개다. 한 명의 물가 조사 담당자는 공업 제품 조사 기간인 3일 동안 228개 품목 가격을 모두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

조 주무관이 A 마트에서 조사해야 할 품목 중 하나인 ‘맛김’을 누르자, 더욱 구체적인 조건이 떴다. 브랜드와 상품명, 봉지당 무게(g), 봉지의 수 등이 명기돼 있었다. 실제 가격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규격’이다. 이는 통계청 본청에서 ‘대표성’과 ‘계속성’을 고려해 지정해 준다. 조 주무관은 “김이라고 아무 김이나 물가 가격으로 조사하면 안 된다”며 “조사 품목별 구체적인 크기와 모양, 중량, 상표가 정해져 있어서, 딱 거기에 해당하는 품목만 조사해 가격을 기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주무관은 수많은 ‘맛김’ 상품 중에서도 규격에서 지정하는 해당 제품을 찾아, 겉면에 적힌 무게와 재료를 체크했다. 시스템에 떠 있는 규격과 실제 물건 내용이 일치하면 가격만 입력해 넣으면 된다. 가격을 입력해 저장하니 전(前) 조사 기간 대비 가격이 ‘보합’ 혹은 ‘등락률이 올랐다’ 등의 변동 사항이 바로 화면에 떴다.

“꼼수 안 통한다” 규격 안 맞으면 가차 없이 ‘보고→심의’

만약 일치하지 않으면, 기록 절차는 한층 번거로워진다. 실제로 화면상 규격엔 1봉지당 5g이라고 적혀 있는 맛김 제품이 마트에선 4.5g으로 표기돼 있었다. 가격은 동일했다.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다.

그는 “세부 규격에 맞지 않는 품목은 우리가 가격을 현장에서 바로 반영하지 않고, ‘품목 일시 출회 중단’ 처리 후 ‘규격 변경 신청’을 한다”며 “그러면 통계청 본청 물가 담당자들이 원인은 무엇인지, 지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심의한다”고 말했다.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질 나쁜 재료로 대체)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걸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품목에 변동이 생기면 조사에 드는 시간은 평소보다 두 배, 세 배가 된다. 통계청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슈링크플레이션이 극성이던 2023년 물가 조사 담당자들이 현장에서 변경 신청을 해 본청에 심의를 요청하는 빈도가 평소보다 잦았다고 한다. 조 주무관은 “원래도 조사 기간에는 김밥이나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이동할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데, 근래 더욱 바빠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품질 변화에 따른 지수 조정 작업도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매뉴얼’에 근거한 방식을 차용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이 ‘중량 환산법’이다. 유사한 상품이 판매 단위에만 차이를 둔 경우 그 크기(중량)에 비례해 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A와 B의 가격이 1200원으로 동일하지만, 영양 성분·포장 등 다른 차이 없이 중량만 170mL에서 150mL로 감소했다면, 1mL 단위당 단가 차이(7.06원→8.00원)를 가격 변동분으로 간주해 13.3%의 지수 상승효과가 발생했다고 보는 식이다. 이 밖에도 △생산비 또는 옵션 비용법 △헤도닉 기법 △전문가 판단법 등 여러 조정 방식이 있으며, 유로스탯(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런 방식을 쓴다.

가공식품뿐 아니라, 가전제품이나 의류 같은 여타 공업 제품의 물가 조사도 마찬가지로 이뤄진다. 옷에 붙은 태그와 가전 사양을 확인하고, 직원과 대면 조사도 거친다. 역시 이 과정에서 규격과 다른 품질 변동 사항이 생기면 가차 없이 본청으로 보고해 품질 조정 지수를 산출해야 한다.

이 밖에 조사 담당자들은 ‘1+1’ 등 할인 행사 역시 ‘할인의 지속성’을 고려해 물가에 반영한다. 조 주무관은 “카드사 제휴 세일 등은 물가 조사에 반영하긴 어렵다”며 “소비자물가 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모든 소비자가 동일하게 구매하는 가격을 조사하는 만큼,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할인은 반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통계청 조사 담당 공무원들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비록 나는 한 도시, 한 권역의 물가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것이 모여 대한민국 전체의 물가지수를 이루게 된다. ‘정확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걸 가장 큰 사명감으로 삼고 이 일을 하고 있다.”

조 주무관을 포함해 전국 155명의 조사 담당자가 이렇게 발로 뛰어 조사해 만들어진 1월 소비자물가 동향 통계는 2월 2일 공표됐다. 2023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다. 정부는 올해 물가 안정 목표인 2% 상승률을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