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중국 상하이 시내에 설치돼 있는 증시 전광판. 사진 EPA연합
1월 29일 중국 상하이 시내에 설치돼 있는 증시 전광판. 사진 EPA연합

중국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428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고, 주요 투자자에 대한 공매도 제한을 실시하는 등 각종 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부양책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경제 부진과 투자자 신뢰도 하락이라는 근본적 원인에 대한 처방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는 데다, 중국 부동산 위기 진앙인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이 청산 명령까지 받는 등 각종 변수가 중국 증시를 위협하고 있다.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1월 22일 국무원 상무회의(국무회의)에서 자본시장 현황을 보고받은 뒤, 시장 안정과 투자 신뢰도 회복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새해 들어 미국과 일본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중국 증시는 철저히 소외된 데 따른 것이다. 상하이·선전 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중국 대표 주가지수 CSI300지수는 5년 사이 최저치를 찍었고, 홍콩 항셍지수도 1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중국 증시 투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차이나 런’ 현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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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총리가 ‘강력한 조치’를 주문한 바로 다음 날,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위안(약 372조원)의 ‘증시 안정화 기금’을 조성, 증시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금은 중국 국유 기업의 해외 계좌를 통해 조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안정 기금은 직접 주식을 매수하거나 증권사에 추가 자금을 푸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와 동시에 3000억위안(약 56조원) 규모의 ‘국가대표 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인 중국후이진투자공사와 중국증권금융공사가 펀드를 만들고, 부실 채권을 많이 보유한 국영 자산운용사들을 해당 펀드에 합병하는 것이다. 국가대표 펀드는 중국 증권 당국의 단골 부양 메뉴다. 이외에도 국유 기업 핵심 성과 지표(KPI) 항목에 ‘시가총액 관리’를 추가하고, 시장에 유동성 공급 효과를 주는 은행 지급준비율도 이전보다 두 배 확대된 0.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중국 증시는 즉시 반등했다. 1월 25일 중국 본토의 상하이종합지수는 2022년 3월 이후 약 22개월 만에 일일 상승률 3%대를 기록했고, 선전성분지수, CSI300지수도 2% 이상 올랐다. 홍콩의 항셍지수는 부양책이 쏟아진 사흘간 8% 넘게 올랐고, 홍콩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HSCEI)도 상승세를 보였다. 중국 정부의 증시 살리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는 1월 28일 사실상 공매도 제한에 나섰다. CSRC는 “비유통주 대여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다”면서 “1월 29일부터 비유통주 대여를 잠정 중단하고, 3월 18일부터 주식 대여 거래는 승인일로부터 1거래일 이후 실행이 이뤄지도록 제한한다”고 밝혔다. 비유통주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유통주와 달리 중국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주주들의 거래가 제한되는 주식을 말한다. 대여 주식이 공매도 물량으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이를 금지해 시장의 매도 압력을 줄이려는 것이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의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해당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투자 기법이다.

중국광다은행의 저우마오화 거시경제 연구원은 “내수 촉진과 경기 회복 모멘텀 강화를 위해 지급준비율을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민은행의 발표는 시장 기대보다 더 강력했다”며 “실물 경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성장을 안정시키려는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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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진 해결 위한 부양책이 우선

하지만 중국 정부가 내놓은 증시 부양책이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국 증시를 현 수준까지 끌어내린 근본 원인인 경제 위기에 대한 처방은 감감무소식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은 2023년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5.2% 성장하며 중국 정부의 공식 경제성장률 목표치(5% 안팎)는 달성했지만, 내수 부진으로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연속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여기에 신규 주택 가격이 급락하는 등 중국 경제성장 동력인 부동산 시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민간·외자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기업 환경은 반간첩법 시행 등으로 오히려 나빠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중국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자국 이익 위주이자 주먹구구식 규제, 경제성장률 둔화로 인한 결과물”이라며 “증시 부양책이 아닌 경제 전반에 걸친 강력한 부양책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악재까지 추가됐다. 1월 29일 홍콩 법원이 중국 부동산 위기의 시발점인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에 청산 명령을 내린 것이다. 헝다는 중국 정부의 부동산 대출 제한이 시작되자 2021년 말 외화 표시 채권에 대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이후 2조3900억위안(약 443조원)의 빚에 허덕이며 투자자, 당국과 부채 조정 협의에 나섰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해 청산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날 헝다 주가는 20% 넘게 급락했고, 그룹 관련 주식들은 거래가 중단됐다. 당장 중국 증시가 헝다 청산으로 인해 폭락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증시 부양책 효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형국이다.

Plus Point

헝다 청산 장기화 가능성…中 비관론 커질 듯

중국 장쑤성에 있는 헝다 주택단지. 사진 AFP연합
중국 장쑤성에 있는 헝다 주택단지. 사진 AFP연합

2조3900억위안(약 443조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그룹에 파산 명령이 떨어지면서 시장의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으로 수년이 소요될 파산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해외 투자자 이익보다는 자국 이익을 우선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투자자 신뢰도를 더욱 갉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월 29일 홍콩 법원이 헝다에 청산 명령을 내렸지만, 최종 청산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홍콩 법원의 청산 결정을 본토 법원이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헝다의 자산 중 90% 이상은 본토에 있어 이를 압류하려면 본토 법원의 허가가 필수적이다. 크레디트사이트의 제를리나 쩡 수석 신용 애널리스트는 “홍콩 법원의 청산 명령이 본토에서 집행될 수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이라며 “홍콩 법원과 본토 법원 사이 파산 절차에 대한 상호 인정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집행이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헝다 최종 청산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자신의 이익이 공산당의 이익보다 후순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는 중국에 대한 극심한 비관론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의 자금 조달 중심지라는 홍콩의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디폴트 위기에 놓인 또 다른 부동산 개발 업체인 위안양(遠洋·시노오션)그룹은 최근 달러 표시 채권보다 위안화 표시 채권의 상환을 우선순위로 두겠다고 투자자들에게 밝혔다. 위안양은 국유 기업인 중국생명보험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어 국영 부동산 개발 업체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