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싫어한다. 영국 과학자들이 부모가 채소를 먹을 때 보인 표정이 어린이의 채소 기호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 셔터스톡
어린이들은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싫어한다. 영국 과학자들이 부모가 채소를 먹을 때 보인 표정이 어린이의 채소 기호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 셔터스톡

아침마다 부모는 식탁에서 채소를 두고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부모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며 설득하지만, 아이들은 브로콜리만 보면 고개를 돌린다. 아이가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부모 탓일지 모른다.

영국 애스턴대 심리학과 재클린 블리세트(Jacqueline Blissett) 교수 연구진은 1월 11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첨단 심리학’에 “누군가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보는 사람도 따라 한다”고 밝혔다.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채소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1 브로콜리를 먹으며 긍정적인 표정(왼쪽)이나 역겨운 표정을 짓는 모습을 성인 여성들에게 보여줬다. 그 결과 부정적 표정은 브로콜리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뜨렸다. 긍정적 표정은 영향이 없었다. 사진 영국 애스턴대 2 디메틸 트리설파이드(DMTS)는 탄소(검은색) 하나와 수소(회색) 세 개가 결합한 메틸기가 좌우에 있고 가운데 황(노란색) 원자가 세 개 있는 구조다. 어린이들은 채소가 분해될 때 나오는 이 분자의 냄새를 싫어한다. 사진 위키미디어
1 브로콜리를 먹으며 긍정적인 표정(왼쪽)이나 역겨운 표정을 짓는 모습을 성인 여성들에게 보여줬다. 그 결과 부정적 표정은 브로콜리에 대한 선호도를 떨어뜨렸다. 긍정적 표정은 영향이 없었다. 사진 영국 애스턴대 2 디메틸 트리설파이드(DMTS)는 탄소(검은색) 하나와 수소(회색) 세 개가 결합한 메틸기가 좌우에 있고 가운데 황(노란색) 원자가 세 개 있는 구조다. 어린이들은 채소가 분해될 때 나오는 이 분자의 냄새를 싫어한다. 사진 위키미디어

좋아하는 표정은 채소 기호에 영향 없어

연구진은 젊은 여성 200여 명에게 낯선 성인이 브로콜리를 먹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남성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브로콜리를 먹거나 무표정 또는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동영상을 시청한 실험 참가자들에게 브로콜리에 대한 호감도와 먹고 싶은 욕구를 물었다.

연구진은 부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브로콜리를 먹는 동영상을 보면 브로콜리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감소했지만, 긍정적인 표정의 동영상을 보고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논문 제1 저자인 캐시 에드워드(Katie L. Edwards) 박사는 “다른 사람이 브로콜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봐도 브로콜리에 대한 선호도나 식욕을 증가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 행동을 모방할 가능성이 크고, 부정적인 결과를 목격하면 그 반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상관관계가 절반만 나타났다.

연구진은 앞서 2021년 국제 학술지 ‘식욕’에 긍정적인 표정이 어린이의 채소 선호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4~6세 어린이 111명에게 어른이 브로콜리를 먹으며 긍정적인 표정 또는 중립적인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여줬다.

실험 결과 어른이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먹는 동영상을 본 어린이는 다른 어린이보다 브로콜리를 두 배 이상 더 많이 먹었다. 당시 실험은 이번처럼 부정적인 표정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이 성인을 대상으로 했지만, 어린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드워드 박사는 “아이가 부모가 채소를 먹는 동안 혐오감을 나타내는 모습을 봤다면 채소 섭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정적 표정 영향은 자기방어 결과

인간은 다른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어떤 행동이 효과 있고 어떤 행동이 효과 없는지 학습하고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바로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 과정이다. 그중 모방학습(modeling)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다. 이는 식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영향 중 하나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에 대해 인간의 자기방어 반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군가에게 혐오스러워 보이는 음식을 피하면 맛이 나쁘거나 해로운 음식을 먹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표정을 본다고 호감도가 증가하지 않은 것은 특별한 개인적 취향을 나타낸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긍정적 표정은 그 사람에게 좋지 누구에게나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식습관에 대한 모방학습 효과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앞으로 동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채소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선호도 변화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채소에는 어린이의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다. 어린이가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보건 문제다. 

2023년 2월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발표한 보고에서 따르면, 미국의 1~5세 어린이 중 49%는 매일 채소를 먹지 않는다. 32%는 과일을 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7%는 1주에 한 번 이상 설탕이 들어있는 음료를 마신다. CDC는 어린이의 정상적인 성장과 건강을 위해 바른 식습관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입속 세균 탓 생긴 쓴맛에 더 민감한 어린이

다른 과학자는 어린이들이 그렇게 브로콜리를 싫어하는 이유를 심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에서 찾았다. 우선 성인은 어린이보다 채소의 쓴맛에 민감하지 않다. 사람은 혀에서 맛을 감지하는 미뢰(味蕾)를 1만 개 정도 갖고 태어나지만, 40~50세가 되면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음식에서 단맛과 짠맛, 쓴맛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입속에 사는 박테리아도 채소 선호도에 영향을 준다. 호주 시드니대 연구진은 2021년 국제 학술지 ‘농업과 식품화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입속 박테리아가 만드는 효소가 아이들의 입에서 브로콜리 맛을 나쁘게 한다”고 밝혔다.

시스테인 분해 효소는 입안에 사는 박테리아가 만든다. 이 효소는 양배추나 브로콜리, 꽃양배추 같은 배춧과(科) 채소의 세포에 있는 ‘S-메틸-L-시스테인 설폭사이드(SMCSO)’라는 화합물을 분해해 황 냄새를 내는 분자로 바꾼다. 연구진은 성인보다 쓴맛과 신맛에 더 민감한 어린이들이 SMCSO 유래 화합물을 생성하는 채소를 더 싫어한다고 밝혔다.

성인과 어린이의 침은 모두 배춧과 채소에서 황 냄새를 내는 화합물을 생성했다. 성인은 이런 냄새가 나도 채소 선호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앞서 미국 오리건 주립대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황 분자는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지만 일부 음식이나 과일에서는 특유의 향을 만들기도 한다. 성인에게서 황 냄새는 무조건 식욕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린이는 달랐다. 채소를 싫어할수록 침에서 황 냄새가 많이 났다. 연구진은 황 분자와 채소 선호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시드니대 연구진은 “어린이들은 특히 ‘디메틸 트리설파이드(DMTS)’라는 냄새가 나는 황 화합물에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SMCSO 분해의 부산물이자 고기를 분해할 때 나오는 냄새”라며 “DMTS는 소량으로 섭취하면 괜찮지만, 과량으로 섭취하면 고약한 황 냄새가 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