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 참석한 전 세계 175개국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올해까지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류의 역사를 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구분한다면 현대는 플라스틱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물질이 됐다. 그런데 인간의 삶을 한없이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줄 것만 같았던 플라스틱이 치명적인 환경오염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1950년대부터 인류가 생산한 플라스틱은 83억t에 달하며 이 중 79%가 매립되거나 자연에 그대로 버려졌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플라스틱이 만들어져 버려진다면 2050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더욱이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폐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기후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
2060년 10억1400만t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 전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4억6000만t에 달한다. 이 중 약 3억5000만t이 쓰레기로 배출됐는데 이는 무려 에펠탑 3만500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추세로 플라스틱을 계속 생산하고 소비한다면 2060년에는 지금보다 세 배 많은 양인 10억1400만t의 쓰레기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재활용 비율이다. 2019년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9%에 불과했으며, 2060년에도 재활용 비율은 고작 17%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 OECD의 예측이다. 플라스틱 수요를 억제하고, 플라스틱 제품들의 수명을 늘리며, 폐기물 관리와 재활용 가능성을 개선하기 위한 급진적 조치가 없다면 플라스틱 오염도 세 배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약 44㎏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한 가정에서 하루에 약 0.5㎏ 이상의 플라스틱을 버려 2020년 기준으로 매일 1만2000t의 폐플라스틱이 발생했다. 정부에서도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 억제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2025년에도 매일 1만t 이상 배출될 전망이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와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처리에 관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생산 감축, 재활용, 대체 소재 개발을 꼽는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 지나치게 낮은 재활용 비중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폐플라스틱 재활용…물리적·화학적 재활용
현재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은 크게 ‘물리적 재활용(MR·Mechanical Recycling)’과 ‘화학적 재활용(CR·Chemical Recycling)’으로 구분된다.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의 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이물질이 묻어 더러운 플라스틱을 세척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폐플라스틱을 물리적으로 가공해 다시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것으로 상대적으로 공정이 단순하고 재활용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적다는 장점이 있어 현재 대부분의 플라스틱 재활용은 물리적 재활용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염된 폐기물도 활용 가능하며 복잡한 선별 과정을 줄일 수 있는 화학적 재활용도 주목받고 있다. 화학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순수한 원료 상태로 되돌려 재활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물리적 재활용은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재질까지 분해해 원료를 추출할 수 있으니, 폐기물과 자원 낭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최근 화학적 재활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물리적 재활용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 재활용은 환경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아직 화학적 재활용보다 더 우세하기 때문에 중·단기적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또한 최근에는 재활용할수록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네덜란드 조사 기관 CE델프트에 따르면 페트(PET) 1t을 물리적 재활용할 경우 이산화탄소 2.4t을 감축할 수 있고, 약점으로 꼽히던 재활용 횟수에 따른 품질 저하 문제도 계속 개선되면서 3~4회 수준에서 7~8회 수준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삼성증권 ESG연구소도 향후 10년간 물리적 재활용의 점유율이 80~9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리적 재활용 확대하려면
무엇보다 플라스틱 재활용 인프라가 개선돼야 한다. 현재 플라스틱 수거 작업은 민간과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영세기업이고 소규모 작업장에서 수작업으로 선별하는 수준이다 보니 평균 선별fbf이 63%에 불과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플라스틱 국제 협약 협상 동향 조사·연구’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재활용의 가장 큰 문제는 재생 원료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한 해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가운데 44% 정도가 재활용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는 재활용 업체의 수거율을 근거로 한 것이다. 실제로 기업이 이를 자원화하려 해도 분류 체계와 유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활용할 수가 없다. 국내에서 수거하는 폐플라스틱 품질이 낮아 해외 폐플라스틱을 수입해 재활용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탄소 감축 효과에 대한 정확한 산정과 인센티브 제공도 필요하다.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 석유·화학 기업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석유제품 원료로 활용할 경우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하지만 물리적 재활용의 경우는 실질적으로는 탄소 효과가 가장 큼에도 불구하고 탄소 감축 사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탄소배출권을 본뜬 ‘플라스틱 크레디트(Plastic credit)’도 떠오르고 있다. 쉽게 말해 자연에 버려지거나 버려질 뻔한 플라스틱을 수집 또는 재활용했음을 나타내는 인증서로서 플라스틱 크레디트를 통해 폐플라스틱 수거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해 플라스틱 재활용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도 해결해야 할 큰 문제다. 재생 원료 사용에 대해 소비자들이 거부감이 있어 이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탄소 중립과 친환경 소비 실천에 중요한 방법이란 홍보가 필요하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이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현재 60조원 규모인 전 세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이 2050년쯤에는 6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 독일, 인도에 이어 플라스틱 생산 5위 국가로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그간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금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역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업계가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R&D)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인센티브 개발과 지원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