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자존심 강한 미국 ① 여피족과 은퇴한 교외 거주 부부들 사이에서 전기 제빵기가 유행했다. 전기 제빵기 판매량이 400만 대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아마추어 제빵사들이 밀가루, 달걀, 버터, 효모, 소금을 정확한 양과 비율로 넣으려면 동네 빵집에 가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유행은 곧 사라졌다. 우리 시대의 빵 제조기는 전기차가 아닐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뛰어난 기업가 정신과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차고를 개조하거나 쇼핑몰 주차장에서 충전소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주유소에서 5분 만에 주유하는 것을 여전히 더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② 전기차의 공공 충전 인프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전기차를 기피하기 시작하면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미·중 관계나 미국 국가 예산과 원자재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 증거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2021년에 10만 대의 테슬라 전기차를 구입했던 허츠는 올해 1월, 180도 방향을 틀어 전기차 3분의 1을 폐기하고 2억4500만달러(약 3278억원)의 손실을 감수하기 시작했다. GM으로부터 17만5000대의 전기차를 구매하겠다는 약속도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은 부자 동네나 유행에 민감한 지역이 아니고서는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가솔린엔진 차를 더 많이 구입하고 있다.
2023년 4분기 미국에서 판매된 전기차 수는 전 분기 대비 불과 1.3% 증가했다. 미국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 에드먼즈에 따르면, 전기차는 가솔린엔진 차보다 자동차 딜러의 차고지에 약 3주 더 오래 보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벤츠의 전기차 EQS 판매량이 4개월째 부진을 이어가자, ‘전기차 시장이 상당히 살아남기 힘든 영역’이라고 인정했다. 포드, 테슬라, GM이 전기차 가격을 평균 20% 인하하며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고객은 떠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포드는 2023년 3분기에 전기차를 한 대 판매할 때마다 3만6000달러(약 4816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동시에 미국 각 주는 자체 예산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전기차에 쏟아붓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680억달러(약 90조9704억원)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신형 전기차 한 대당 7000달러(약 936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세수가 감소한 뉴저지주도 전기차 구매자에게 4000달러(약 535만원)의 수표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 주는 언제까지 돈줄을 열어둘 수 있을까.
하이브리드에 베팅한 도요타처럼 전기차에 의구심을 품었던 사람들이 이제 선견지명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23년 한 해 동안 도요타 주가는 GM 주가를 40%나 앞질렀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의 비난을 받았던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2023년 10월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전력망의 결함’이라는 난관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미국인이 어둠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정전 시간은 2013년 약 3.5시간에서 2021년 약 7시간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정전 빈도도 20%가량 급증했다. 특히 날씨에 취약한 태양열과 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원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고려하면, 소비자가 자동차를 벽면 플러그에 묶어두길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미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자동차 제조 기업 BYD는 전기차는 물론 하이브리드까지 포함한 신에너지 차량의 전 세계 판매량이 2023년 300만 대를 기록했다. 테슬라(180만 대)를 가볍게 제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민도 깊다. 중국 정부와 민간 기업은 배터리를 생산하고 리튬, 코발트, 카드뮴 및 기타 주요 광물을 채굴하는 짐바브웨·콩고민주공화국·쿠바·러시아 같은 국가에 큰 투자를 해 왔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을 계속 매수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그 수도꼭지가 열린 채 유지될까.
1990년대 제빵기 열풍은 공공 보조금, 치열한 시장 경쟁에 따른 파격적인 할인 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유행이 몇 년 더 지속됐을 것이다. 대통령, 주지사, 국세청, 기술 전문가들이 전기차를 장려해 왔지만 대중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여전히 내연기관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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