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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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필자는 여름방학을 맞아 동네 제일 부잣집 앞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인간이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흑백 TV를 통해 목격했다. 8월 한가위 신화 속 그 둥근 달에 인간이 착륙했고 그 장면을 지구인에게 생중계했던 과학의 위대함에 소년의 가슴은 뛰었다. 그로부터 47년 후 2016년 3월 알파고와 바둑 대결은 인간의 위대함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 시대가 왔음을 깨닫게 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성공 방정식이었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이를 극복해 마침내 성공하는 과정을 이제 굳이 인간이 감당할 필요가 없게 됐다.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감성인 친절함, 따뜻함, 용서와 사랑이 더 가치를 갖는 미래를 예고했다. 인간의 달 착륙은 신화와 전설의 역사를 과학과 이성의 시대로 전환했다. 그리고 AI는 과학과 효율이 지배하는 미래에 다시 인간 본성의 중요함을 부각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의 인식 체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이 두 사건은 온전히 미국의 교육과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덕분이다. 미국인은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온 그들의 업적에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신동우 나노 회장
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현 한양대 특훈교수,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신동우 나노 회장
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현 한양대 특훈교수,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우리 국민만이 갖는 가슴 뜨거운 순간들도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일본 선수를 몬주익 언덕에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올림픽 스타디움에 힘차게 들어오던 황영조 선수의 그 감격스러운 우승 장면은 우리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마라톤 경기를 하듯 뒤처지고 소외된 국가에서 일본을 제치고 우승한 것을 우리는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의 주역이 됐다고 받아들였다. 

그 이듬해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내 세계화를 주창한 것은 그런 시대적 상황에 연유된다. 서울 올림픽은 한국전쟁 후 세계 최빈국의 이미지를 씻고 세계 무대에서 신흥국임을 인정받게 했다. 특히 북한과 대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우월함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 올림픽이 독일 통일과 구소련 붕괴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인 샤흐나자로프와 면담을 한 정치학자인 라종일 교수가 기고한 적이 있다. 구소련과 동독 등 공산권 사람들이 서울 올림픽을 TV로 시청하면서 전쟁으로 파괴된 최빈국 중의 최빈국인 대한민국이 어떻게 저렇게 자유로운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북한과 대비해 결국 체제 변화가 그들에게 자유와 풍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서울 올림픽은 그 이듬해인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에 따른 독일 통일 그리고 구소련 붕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고백했다.

우리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순간 가운데 2002년 6월 월드컵의 함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한여름 밤 온 국민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 달 내내 열기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1997년 말 국가 부도의 경제 위기가 남긴 깊은 패배감을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치유하며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우리는 서울 올림픽,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가슴 뜨거운 순간을 통해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한 순간은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다.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 잦을 때는 새로운 희망으로 국운도 융성했다. 오래전 미국과 그 뒤를 이은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랬다. 최근 인도가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착륙해 인도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자신감을 갖게 했다. 온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한 주인공은 과학자, 스포츠 스타, 기업가이나 이 드라마의 감독은 국가 지도자다. 국민 모두의 가슴을 자부심으로 뜨겁게 하는 순간은 새로운 희망을 불러오고, 희망을 품으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그리고 희망은 그 무엇보다도 현실의 고난을 담담히 맞을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