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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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몇 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어느날 한 유명 사찰을 방문했다가 재미있는 포스터를 발견한 적이 있다. 단아하게 승복을 차려입고 방석 위에 앉은 미남·미녀 스님. 두 사람은 활짝 웃는 얼굴로 두 손을 내밀며 출가(出家)를 권유한다. 포스터의 제목은 이랬다.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선택, 출가’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는 목회자를 구하지 못해 빈 성당이 허다했다. 민간에 팔려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으로 변한 성당도 꽤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종교인의 수가 격감하고 있다는 소리도 바람결에 들려온 지 오래다. 하지만 특성상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정적이고 조용한 불교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성직자 모집 광고를 내다니 의아했다. 

불교도가 아닌 나도 이렇게 당혹스러운데, 정작 불교도들이나 종단 관계자들 마음은 어떠했을까. ‘무소유’의 저자로 유명한 법정 스님도 이런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생전에 이런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하고도 도저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또는 그 이후에도 중 모집한다는 광고 보고 출가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신학대학이 있어서 신부나 목사 될 사람을 공고하고 모집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스님을 모집해서 양성하는 곳은 없습니다. 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옵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겁니다.” 

이 말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당시 교단 관계자들에게는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불교계에서 발행하는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조계종은 그 해에 출가자 수가 100명 이하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이렇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출가자를 공개 모집하는 고육책을 냈다는 것이다. 만일 살아 돌아온다면 법정 스님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 된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진국 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인구 감소, 경기 침체 영향도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최대 종단인 조계종 소속 승려는 1만2000명이다. 이 중 상당수의 승려가 50대 안팎이다. 20년 정도 지나서 이들이 은퇴하고 나면 승단의 존속 자체가 문제가 될 정도다. 출가자 공개 모집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나온 배경에는 이런 위기의식이 자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로 무섭게 질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 그 현실의 소용돌이가 불교계에까지 엄청난 파장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이나 개신교도 어렵기는 피차일반이다. 각급 신학대학이 학생 모집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급기야 최근 개신교에서 가장 유명한 모 신학대학원 입시에서 사달이 났다. 지원자 수가 정원에 미달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 이것은 불교계에서 출가를 권하는 홍보 포스터를 만드는 일에 비견되는 충격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그 대학원은 치열한 경쟁률 때문에 입학하려면 재수, 삼수는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최근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게 일반적인 추세다. 특히 앞서 말한 초저출산·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절대 인구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종교인들의 절대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반 신자의 절대 수가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성직자가 되겠다는 지원자도 줄고 있다. 게다가 기존 성직자 중에도 자신의 사역지를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종단의 입장에서 보면 이중고(二重苦)의 상황이다. 

‘2024년 목회자가 직면하게 될 10가지 과제’, 얼마 전 미국에서 20년 넘게 목사, 선교사를 지낸 제프 하비라는 콘텐츠 전략가가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물론 이 글은 기독교에 한정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프 하비는 교인들이 감소하는 와중에 목회자들이 겪고 있는 각종 문제를 하나하나 짚고 있다. 

하비에 따르면 오늘날 많은 목회자는 피곤하고, 궁지에 몰리고.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집중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을 종종 잊어버린다. 전직 개신교 목사 73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하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32%의 목회자가 ‘번아웃’을 경험한다. 사역지에 처음 부임한 목회자의 15%는 5년 이내에 사임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인구 감소로 인해 종교인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팬데믹은 종교계에는 원자폭탄급 재앙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경제 상황마저 녹록지 않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에 직면한 사람들은 헌금을 줄이는 등 지갑을 닫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목회자들의 급여 삭감, 교회 지출 감소, 사역 프로그램의 축소 혹은 중단 등으로 이어진다. 

성직자들은 재정 문제, 인간관계, 시간 관리 등 여러 방면으로 직무 관련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반적인 리더들도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데, 목회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데다가 전지전능한 모습까지 보여주기를 바라는 일반 신자들의 한없이 높기만 한 기대치에 부응하려면 스트레스는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다. 

나의 대학 동기였던 친구 A는 학사 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후에 신학대학에 입학해 신부가 됐다. 불교 승려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청빈한 생활을 해야 하는 A에게 나는 물었다. “성직자로서 받아야만 하는 많은 인간적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 그 질문에는 친구로서의 우의와 심리학자로서의 궁금함이 섞여 있었다. A의 대답은 뜻밖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우리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아.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신학대 입학 동기 모임에는 반드시 참석해!” “왜?” “가재는 게 편이라고 신부들끼리 받는 스트레스와 애환은 신부들이 젤 잘 알 꺼 아냐? 월례 모임에서 우리는 한 집에 모여 밤새 포커를 치거나 술을 마시기도 하지!” “그것뿐이야?” “아니, 우리를 괴롭히는 선배 신부님들이나 일반 신자들 욕도 하면서 밤새 웃고 떠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아!”

일리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친구 A 신부와 그의 동료들은 일종의 ‘집단치료’를 주기적으로 받는 셈이다. 배출구를 못 찾고 쌓여가는 스트레스 요인들, 그러니까 감정의 쓰레기들을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분리수거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나마 우회적이지만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그마저 못 견디고 사역지를 떠나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다. 이런 정황을 모를 리 없는 성직자 후보들은 아예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도 줄고, 기존에 있던 사람도 떠나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저간의 정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인류는 종교적인 본능을 가진 호모 렐리기우스(Homo Religius)다. 아무리 세상이 감각적 쾌락에 찌들어 있다 해도 모두가 그 속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성직자가 줄어들면 우리의 이런 종교적 본능을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인도해 줄 멘토 역할은 대체 누가 해 준단 말인가. 우리가 도대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같은 실존적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심리학 전문가나 정신의학자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성직자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