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Kim Yu)의 ‘동물학교 졸업 앨범
(The Animal School Yearbook)’ 표지. 사진 김진영
김유(Kim Yu)의 ‘동물학교 졸업 앨범 (The Animal School Yearbook)’ 표지. 사진 김진영

얼마 전 1990년대 미국 졸업 앨범 스타일로 사진을 만들어주는 앱이 유행이었다. 일명 이어북(yearbook) 사진으로 불리는 이미지였다. 이어북은 주로 미국에서 졸업 앨범을 지칭하는 단어로, 졸업 사진과 함께 동아리 활동, 파티 활동 등 학교에서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모아 놓은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에 자신의 사진을 넣으면, 인공지능(AI)이 입력된 사진을 1990년대 미국 졸업 앨범 스타일로 합성해 보여주는 것이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졸업 앨범 사진이 이렇게나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은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열풍이 상기시켜 준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른 사진 분야와 마찬가지로 졸업 앨범 사진 역시 시대별로 변화해 왔다는 점이다. 촬영 기술이나 인쇄 방식 같은 기술적 측면 그리고 의복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문화적 측면 등이 반영된 졸업 앨범에는 각기 다른 시대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작가 김유는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 집에서 낡은, 아버지의 1968년도 중학교 졸업 앨범을 보게 됐다. 오래된 흑백사진이 가득한 앨범이었고 그 안에는 굳은 표정을 한 수많은 학생의 얼굴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 보았지만, 들여다볼수록 각자의 얼굴이 지닌 개성과 차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동물에 관한 다른 작업을 하고 있던 작가는 아버지의 졸업 앨범을 보다가 독특한 상상을 해보았다. 동물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면 그리고 그 학교에서 졸업 앨범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말이다. 

‘동물학교 졸업 앨범(The Animal School Yearbook)’은 아버지의 졸업 앨범에서 영감받아, 앨범의 이미지와 동물들의 사진을 콜라주하여, 가상의 동물학교를 상상해 만든 책이다. 우선 작가는 아버지의 1968년도 중학교 졸업 앨범과 1971년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스캔해 바탕이 되는 이미지를 수집했다. 또한 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특별활동이 담긴 이미지가 필요했고, 외삼촌, 지인 등의 앨범을 빌려 추가적인 이미지를 수집했다. 

작가는 다양한 동물 선생님 그리고 사슴반, 사자반, 올빼미반, 코끼리반, 개구리반 학생들로 구성된 학교를 상상하고 작업에 착수했다. 동물 사진을 구하기 위해 처음에는 동물원에 가서 직접 사진을 찍어 보았다. 하지만 실제 동물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동물원에는 종류별로 동물 개체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동물마다 다양한 이미지를 얻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 개구리반 같은 경우는 개구리 108마리가 필요했는데, 현실적으로 직접 개구리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작가는 웹에서 가능한, 저작권이 없는 동물 이미지를 수집하는 방식을 택했다. 바탕이 되는 이미지는 오래된 졸업 앨범에서, 그 안에 사용된 동물 이미지는 동시대 웹에서 찾은 것이다. 

‘동물학교 졸업 앨범’은 학교 이미지와 교가로 시작한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각 과목 선생님의 이미지부터 각 반의 구성원 그리고 학교 소풍이나 특별활동을 보여주는 졸업 앨범의 전형적이고 익숙한 순서를 따라 이미지가 전개된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 교감 선생님은 울부짖고, 올빼미반 담임인 박쥐 선생님은 밤에 날아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몸집이 큰 코끼리는 한 반의 정원이 적은 반면, 몸집이 작은 개구리반은 정원이 많은 등 각 동물의 특성이 반영된 재미있는 디테일이 숨어 있다.

이러한 책의 내용을 더욱 와닿게 하는 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기술로 이미지를 만들고 인쇄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만들어져 오랜 시간 책장에 꽂아둔 앨범 그러니까 정말 마법같이 1968년도에 만들어진 그런 앨범의 느낌을 준다. 동시대에 만들어진 책이 이런 느낌을 선사한다는 것은 책의 모든 세부 요소를 세심히 작업한 결과일 것이다. 

졸업 앨범처럼 디자인되고 패브릭으로 감싼 표지를 열면, 작가가 만든 가상의 동물학교 엠블럼이 가득한 빛바랜 느낌의 면지가 등장한다. 면지를 넘기면 낡은 느낌을 주는 꺼끌꺼끌한 거친 질감의 내지가 시작된다. 타자기를 연상시키는 폰트와 손으로 쓴 레터링 글씨체는 향수를 자아낸다. 

또한 작가는 기존 졸업 앨범의 교복 사진과 웹에서 수집한 동물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세심한 이미지 작업을 했다. 이렇게 합성된 이미지가 이질감 없이 전달되는 데는 모든 이미지에 망점 인쇄 스타일을 차용한 덕분이 크다. 아날로그 인쇄 시절, 망점 인쇄는 이미지를 수많은 크기의 점으로 변화시켜 인쇄하는 방식이었다. 연속계조가 있는 사진을 인쇄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세밀한 점의 집합으로 변환해야 했다. 신문에 인쇄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망점이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작가는 모든 이미지에 의도적으로 망점을 넣어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면서 동시에 각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

책에는 동물학교를 상상해 만들어진 졸업 앨범이 담겼다. 가상의 동물학교에서 각 반의 학생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진영
책에는 동물학교를 상상해 만들어진 졸업 앨범이 담겼다. 가상의 동물학교에서 각 반의 학생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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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든 가상의 동물학교에서 각 반 학생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들은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획일화된 하나의 단어나 개념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성에 관한 책이다. 동물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같은 이름의 동물들은 서로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유심히 보면 제각각 다른, 개성 있는 얼굴들이다. 같은 얼굴은 없다.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바라봐 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획일화된 틀 속에서도 개성과 독특함이 얼마나 뚜렷하게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통해 우리는 각각의 동물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내재된 다양성을 목격한다. 이는 인간 사회에도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가진 개성을 존중하고 발견하는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