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원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수학,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 전 럿거스대 경제학 교수,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객원연구위원, 
전 댈러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외부연구위원, 
전 버지니아대 경제학 교수 사진 한국은행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원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수학,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 전 럿거스대 경제학 교수, 전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객원연구위원, 전 댈러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외부연구위원, 전 버지니아대 경제학 교수 사진 한국은행

“연구 조직이 잘되려면 직위가 아니라 전문성이 중심이 돼야 한다. 선배의 연구라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원장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연구 조직의 모습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2023년 9월 선임된 이 원장은 1975년생으로 미국 럿거스대 교수, 버지니아대 교수, 서울대 교수 등을 역임한 거시경제 전문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의 연구 활동을 통해 연구 교류 경험도 풍부하다.

그가 수장을 맡은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경제 중장기 과제 심층 연구와 국내외 연구 교류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한국은행의 ‘싱크탱크’인 셈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수십 명의 박사급 연구 인력이 모여있어 자율적인 연구 환경 조성이 필수다. 그래서 이 원장은 “아직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면서도 조직 내 연구자들이 편안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에 애쓰고 있다. 가령 올해부터 각종 학회 참석에 필요한 결재 시스템을 대폭 간소화했다.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외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아야 조직에 뛰어난 연구자가 많아지고 좋은 연구 성과도 나온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간의 소회는.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갔다. 새로운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경제연구원에 오기 전에는 학교에서 주로 연구와 강의만 했다. 외부 활동도 거의 안 했는데, 이렇게 큰 조직의 장을 맞게 돼 사실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경제연구원과 한국은행 내 구성원들이 많이 도와줘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능력은 없어도 인복은 많다고 느꼈다(웃음).”

한국은행 생활이 대학에 있을 때와 매우 다른가.
“한국은행은 정책기관임과 동시에 연구기관의 성격을 가진 매우 유니크한 조직이다. 이 중에서도 경제연구원은 연구 쪽에 가장 중점을 둔 부서다. 통화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엄밀한 분석 방법을 통해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의 수월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 교수로 있을 때보다 큰 조직을 맡게 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2023년 9월 경제연구원 원장으로 내정됐을 때 젊은 나이로 화제가 됐다. 1월 26일 한국은행 상반기 정기 인사에서도 주요 정책 부서장에 1970년대생들이 전면 배치돼 눈길을 끌었다.
“아무래도 원장이 젊으면 경제연구원 직원들도 좀 더 편하게 느끼고, 이것이 수평적 조직 문화 정착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특별한 조치를 취하려는 건 아니다. 가급적 구성원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특히 개별 연구자들 모두 직급에 상관없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는 원장인 나보다 더 전문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들의 의견을 대부분 존중하려고 한다. 물론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젊은 연구자들의 경우 선배의 멘토링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때 직장 상사보다는 학교 선생님 입장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실제로 학교에 있을 때 가르쳤던 학생들이 지금 한국은행에 꽤 있다.”

수평적 조직 문화가 연구 성과에도 도움을 주나.
“당연하다. 연구 조직이 잘되려면 직위가 아닌 전문성이 중심이 돼야 한다. 선배의 연구라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적에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된다. 오류를 잡아주거나 좋은 제안을 해주는 것에 고마워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다행히 경제연구원 내에는 이런 문화가 이미 어느 정도 정착돼 있는 것 같다.”

미국 교수 시절 연구 활동을 위해 연준에 자주 방문했을 텐데, 그곳의 분위기는 어땠나.
“굳이 한국은행으로 비교하자면 지역 연방준비은행은 경제연구원에 가깝다. 리서치 중심이다. 이곳에선 기본적으로 ‘50 대 50’으로 개인이 하고 싶은 창의적 연구 절반, 정책 집행을 위해 필요한 연구 절반씩 하도록 지원한다.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면 좋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야 뛰어난 연구자가 조직에 더 많이 오고, 좋은 연구 성과도 더 많이 나온다. 이런 연준의 분위기를 경제연구원 내에서도 가져가 보려고 한다.”

실제로 경제연구원 내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경제연구원 내 젊은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노동조합에서 부서장 평가 설문 결과를 보여줬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조직 내 연구자들이 편안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일례로 과거에는 국내외 학술대회나 워크샵에 참석하려면 논문이 반드시 채택되어야 하는 등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웠다. ‘다들 바쁜데 어디 가느냐’는 보이지 않는 압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 입장에선 이런 행사에 참석해야 배우는 것도 많고, 네트워킹에도 도움이 된다. 올해부터는 결재 과정을 간소화하고 외부 행사에 참석을 원할 경우 가급적 모두 보내주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리더십)’의 모습 같다. 1970년대생만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나.
“1970년대생 소위 ‘X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 면에서 ‘86세대’와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이어주는 역할을 잘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면서 무뎌지긴 했지만, X 세대는 한때 반항의 상징이었다. 기성 문화에 제동을 건 ‘문화적 브레이크’를 겪은 세대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MZ 세대의 자유로운 생각에 X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거꾸로 MZ 세대도 X 세대가 만들어낸 콘텐츠에 거부감이 적다고 느낀다. K컬처를 이끄는 콘텐츠 제작자, 인플루언서, 경영자에 X 세대도 다수 포진해 있지 않은가. 다른 세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녔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한국은행에서 나온 보고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더 높이고자 한다. 한국은행의 연구자들은 최고의 엘리트이자 통화정책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인재들이다. 지금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연구 결과와 보고서가 훌륭한 만큼 외부에서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봐줬으면 한다.”

경제 전망을 안 물어 볼 수가 없다. 새해 국내 경제 전망은.
“한국 경제는 수출 중심의 완만한 개선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 업황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데, IT 부문은 한 번 회복 사이클에 접어들면 통상 2년 이상은 개선세가 이어졌다. IT 중심의 수출 회복에 힘입어 올해 경제성장률은 2.1%일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내수 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체감 경기는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올해는 특히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도 높다.
“그렇다. 주요국의 선거 결과에 따른 국제 정세의 급변 가능성, 세계 교역의 분절화, 중동·동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 2023년 IMF는 향후 5년간의 세계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3%대 초반으로 전망했다. 이는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의 전망이다. 우리 경제의 대외 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는 인류 역사상 최대 선거의 해다. 문제는 선거 결과는 사회·경제 현상, 국제 정세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예측이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불확실성이 높을 때 정책의 강건성(robustness)과 경제의 복원력(resilience)이 중시됐는데, 불확실성이 높은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