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을 양어장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 
현대건설은 제 1공구 현장을 비롯해 다수의 구간을 수주해 시공하고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1월 16일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을 양어장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 현대건설은 제 1공구 현장을 비롯해 다수의 구간을 수주해 시공하고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동남아에서 ‘K건설’ 열풍이 불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수주한 누적 금액은 2023년 기준 3110억달러(약 415조5000억원)에 이른다. 오일머니가 움직이는 중동(4824억달러·약 644조5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태평양·북미(513억달러), 중남미(501억달러), 아프리카(300억달러) 등에서도 수주액이 늘고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주액을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 현장 사무소 바로 옆의 제작장에서 교량 가장 윗부분에 놓일 세그먼트(segment)가 제작되고 있다. 완성된 세그먼트의 모습. 사진 조은임 기자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 현장 사무소 바로 옆의 제작장에서 교량 가장 윗부분에 놓일 세그먼트(segment)가 제작되고 있다. 완성된 세그먼트의 모습. 사진 조은임 기자

필리핀 교통 인프라 확충 주도하는 韓 건설사

필리핀 마닐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철도공사에는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등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1월 16일 오전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한 시간 반가량을 달려 도착한 HMD JV 현장 사무실. 마닐라 북부인 아팔릿(Apalit) 지역에 있는 이곳은 현대건설과 현지 회사인 메가와이드(Megawide), 동아지질이 컨소시엄을 이뤄 마닐라 남북철도 N2구간 제1 공구를 짓는 현장이다. 16.92㎞에 달하는 철도 교량을 세우는 대형 공사이기에 현장에 나와 있는 현대건설 직원만 30명이다. 이용정 현대건설 현장 소장은 “마닐라에 남북철도를 놓는 공사는 필리핀 정부의 중점 사업”이라면서 “한국 건설사 상당수가 참여해 필리핀 수도의 인프라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당선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FULL SPEED AWAY’를 외치며 교통 인프라 확충에 사활을 걸었다. 스페인 강점기 시절인 100여 년 전 깔렸던 노후 철도를 걷어 내며 남북철도를 깔게 된 배경이다. 현대건설 현장 사무실은 직원 숙소는 물론 거대한 규모의 제작장과 야적장까지 갖추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곳뿐만 아니라 남부 구간(SC)의 4·5·6공구를 수주해 공사하고 있는데, 그곳에도 제작장과 야적장을 마련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시멘트를 공급받아 현장에서 배치 플랜트를 사용해 바로 콘크리트를 생산할 수 있다”면서 “대형 현장인 데다 운반에도 시간이 오래 걸려 현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이번 남북철도 공사는 발주처가 필리핀 교통부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차관을 재원으로 진행된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재임 이후로는 중국 차관 대신 ADB, 세계은행(World Bank) 등 글로벌 재원으로 각종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사는 2026년 12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마닐라에 남북철도가 깔리게 되면 통근 시간은 절반 정도 줄게 된다. 열차가 시속 160㎞ 달리면서다. 공사 중에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가 2만5000명, 공사 후에는 약 14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남북철도의 가장 남쪽인 칼람바~바탕가스 구간은 본래 중국 차관을 활용해 중국 건설사가 짓기로 돼 있었다. 총 58㎞인 이 구간은 필리핀 3대 항구 중 하나인 바탕가스로 이어지는 핵심 구간으로 꼽힌다. 하지만 삽을 뜨기도 전에 해당 공사는 백지화됐다. 중국 업체 일색이던 필리핀 건설 업계 상황이 급변하면서다. 재원부터 세계은행으로 바뀌는 분위기로, 우리나라와 일본 건설사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공사의 현장 소장은 “하루에 35만 명이 통근 열차를 이용해 통근 시간을 단축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필리핀 인프라 공사에서 한국 기업들이 석권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했다.

1월 16일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 현장 사무소 바로 옆에 콘크리트 제작장이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1월 16일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 1공구 현장. 현장 사무소 바로 옆에 콘크리트 제작장이 있다. 사진 조은임 기자

베트남의 하와이 푸꾸옥 ‘숍하우스 열풍’

이틀 뒤인 1월 18일 직접 찾은 베트남 최남단 휴양지 푸꾸옥에는 최근 ‘숍하우스 투자 열풍’이 불고 있었다. 숍하우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총 4~5층 규모의 빌라다. 1~2층에는 주로 상점이 들어오고 3층 이상은 소규모 호텔로 활용된다. 푸꾸옥 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20분을 이동하니 거대한 ‘메이홈즈 캐피털 푸꾸옥 프로젝트(Meyhomes Capital Phu Quoc PJ)’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최고급 숍하우스를 짓는 사업으로, 총 258㏊(약 78만 평)의 거대한 부지에 4단계로 진행된다. 

대우건설은 이곳 단지 입구 메인 상권이 될 만한 곳에 94가구를 지었다. 대우건설은 한국과 베트남이 정식 수교를 체결하기 전인 1990년부터 진출해 ‘하노이의 강남’이라 불리는 신도시 ‘스타레이크시티’를 탄생시켰다. 대우건설이 100% 지분을 소유한 베트남THT법인이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이런 대우건설이 하노이를 벗어나 첫 사업을 수행한 게 바로 푸꾸옥 메이홈즈 프로젝트다. 베트남에서 디벨로퍼를 꿈꾸는 대우건설에는 하노이라는 경계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조남일 현장 소장은 “푸꾸옥은 2011년부터 베트남 정부 차원의 개발이 시작됐다”면서 “앞으로 10년 이상 더 발전할 것으로 보고 민간 투자도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사업 참여가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캄보디아, 라오스 등 차후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저개발 국가에서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금호건설과 한신공영·계룡건설·일성건설 등이, 라오스에는 동부건설·한신공영 등 중견 건설사들이 진출해 있다.

반면 중국은 동남아 저개발 국가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국유 건설 기업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 아래 수많은 자회사를 둔 형태로 해외로 뻗어가고 있다. 번호가 붙은 자회사들이 국가별 공사를 배정받는 형식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 중 하나로 저개발 국가에서 중국공상은행 등이 차관을 대고, 중국 건설사에 일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의 경우 수력발전소의 50% 이상을 중국 건설사들이 지었다.

동남아에 진출해 있는 우리 건설인들은 동남아 내 저개발 국가는 물론 해외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하는 중국과 경쟁이 저개발 국가, 싱가포르, 중동 등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또 인도, 태국 등에서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저렴하게 공사를 하는 건설사들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경쟁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남아 현지의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질적으로 높은 결과물과 신용, 고급화, 기술화 등에 집중해 수주하고 있다”면서도 “중국도 기술적으로 많이 따라왔고, 비용은 여전히 더 싸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