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만 2년을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서 국가 간 전면전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으며, 전쟁이 만 2년 넘게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더더욱 없었다. 1947년 냉전 시작 이후 70년 넘게 유지돼 오던 질서를 무너뜨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승패를 넘어 세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러시아가 자국의 전통적 세력권으로 간주하던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 기우는 것을 막겠다는 판단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전쟁 이전이던 2021년 7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우크라이나는 나라의 탄생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본인이 이를 바로 잡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때만 해도 러시아의 무력 사용은 러시아어 사용자가 집중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군사 작전 및 병합 정도로 예상됐다. 하지만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는 물론 남부와 북부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키이우를 빠르게 장악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정부를 붕괴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애초 전략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저항 선언과 우크라이나군의 효과적인 대응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발 빠른 지원 등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2022년 5월 이후 러시아군은 재정비 과정을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규모 포병 전력을 집중하면서 점령 지역을 확대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을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10월 기습적으로 동부 전선에 대한 공세를 전개해 방심하고 있던 러시아군을 격퇴하고 대규모 영토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성공은 군사적 지원 확대를 놓고 망설이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로 하여금 대규모 중화기 지원을 결정하게 했으며, 이후 탱크·장갑차·자주포 등 대규모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기대를 모으던 2023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은 요새화된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공략하는 데 실패하면서 성과 없이 끝났다. 2023년 하반기 이후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러시아군의 특정 지역 장악을 위한 시도를 우크라이나군이 방어하는 형태로 2024년을 맞이했다.
전쟁 2년으로 대외 전략, 군사전략 변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여러 국가의 대외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에 밀려 황망하게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며 외교·안보 전략 대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겪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러시아 침공은 이를 만회할 기회로 여겨졌다.
러시아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통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이 여전히 미국에 있음을 과시했고, 유럽에 대해서는 LNG 공급을 통한 에너지 위기 해결과 더불어 그동안 요구해왔던 유럽 국가들의 방위력 증강을 이끌어내는 등의 성과를 거두면서 전쟁의 승자는 미국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누적되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확대되면서 미국의 대외 전략이 또 한번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는 독일이다. 러시아로부터 저렴한 에너지와 원자재를 공급받는 독일의 수출산업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전쟁 발발 직전까지 독일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망설였다. 하지만 전쟁 이후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경제적 지원을 확대했고, 취약해진 독일군 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공약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고, 이로 인해 독일의 중화학 산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되면서 독일은 경제·외교적으로 큰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다양한 드론이 대량으로 사용되면서 전쟁 양상을 바꿔놓고 있다. 애초 정찰 및 제한적 공격 용도로 사용되던 드론은 이제 상대 도시와 배후에 대한 장거리 타격은 물론 전선의 보병이 직접적으로 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드론에 맞서기 위한 전자전과 대공방어 시스템도 강화되고 있다. 과거의 무기로 간주되던 포병은 확실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면서 중요성이 부각됐다. 하지만 양측 모두 탄약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하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 진영의 155㎞ 포탄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충분한 양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북한산 포탄을 대량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선과 한참 떨어진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바이든 vs 트럼프…11월 美 대선이 변수
관심은 이 전쟁이 이제 언제, 어떻게 매듭지어질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상황은 러시아에 점차 유리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제재를 뚫고 전쟁에 필요한 각종 부품과 장비를 조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군수산업으로의 전환도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으로 대량의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막대한 인명과 장비를 손실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비해 압도적인 인구와 동원력을 활용해 점점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더 이상의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병력 부족이 심화하면서 징집 연령과 범위를 둘러싼 국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전쟁을 총지휘하던 발레리 잘루지니 총사령관을 해임하면서 그동안 단합됐던 모습을 보여주던 정치권과 군부 내부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유럽의 지원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황은 더욱 러시아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향배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가 결정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반대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며 결국 불리한 조건으로 휴전에 응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전쟁은 미국 지원이 다시 본격화하면서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막을 내리더라도 평화보다는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핀란드 및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은 러시아와 무력 충돌을 각오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대규모 군비 증강을 통해 러시아와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러시아와 서방의 대결은 다시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 평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으며, 전쟁과 갈등이 일상화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