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신경 끄기의 기술’에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마크 맨슨을 봤을 때, 나는 그가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회고록 ‘그린라이트’의 저자이기도 한 매코너헤이는 글도 연기처럼 엄청난 하이 상태에서 쓴 것 같았다.
‘똥을 밟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온 세상이 공모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매코너헤이는 회고록에서 기술했다.
마크 맨슨의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당신이 어딜 가든 똥 덩어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 그중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똥 덩어리를 찾아서 신경을 쓰라’고 그는 글로벌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열변을 토했다. 마라탕과 에너지 드링크를 동시에 들이켠 후 링에 오른 복서처럼, 그는 뼈 때리는 빡센 충고로 너덜너덜해진 우리의 신경세포를 후려쳤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앉아 소리 없이 미소 짓는 마크 맨슨은 온갖 감정을 글로 뿜어낸 후, 맑고 깨끗한 정수만 남은 상태로 보였다. 말은 느리고 목소리는 작았지만, 청회색 눈동자는 깊고 부드럽고 진지했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신경 쓰기 고수들’이 모여 사는 한국을 여행 중이며, 경이로운 K콘텐츠 이면에 위태로운 한국인의 정신 건강을 탐구 중이라고 했다.
“작은 디테일까지도 신경 쓰는 데서 오는 압박과 불안이 엄청날 거다. 그런데 그만큼 섬세한 결과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니, ‘한국인의 신경 쓰기’는 양날의 칼 같다.”
수많은 선택지와 기회비용 앞에서 목적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신경 끄기’라는 터닝 포인트를 제안한 마크 맨슨을 만났다.
마크 맨슨은 입사한 지 6주 만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던 일, 가진 것을 모두 팔아치우고 남미로 떠나기로 했던 결정을 ‘신경 끄기 명예의 전당’ 상위 리스트로 꼽았다. 우리 삶을 결정하는 건 이런 식의 무신경한 순간들이라고.
젊은 현자는 삶은 대체로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좋은 고통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 것을 당부했다. 의도적으로 작은 역경을 초대하는 스토아철학의 뼈대가 느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경 끄기’란 무엇인가.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하고,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단순히 무심함이 아니라 역경, 폭망, 비교, 과잉 정보, 두려움에 신경을 뺏기지 않는 것이다.”
자기 계발과 가장 거리가 먼 남자 찰스 부코스키로 ‘신경 끄기의 기술’ 책의 서두를 열었다. 그는 주정뱅이, 노름꾼, 구두쇠, 게으름뱅이였고, 묘비에 ‘애쓰지 마!’라고 새겨넣은 괴짜였다. 그가 신경 끄기의 모델이 된 이유가 뭔가.
“한평생 자신이 생긴 대로 살았던 사람이 부코스키다. 부코스키는 50세가 됐을 때 첫 책을 냈다. 30년간 우체국 직원으로 살며 음주와 경마로 월급을 탕진하다, 우연히 날아든 출판 기회를 잡아 3주 만에 써낸 장편 소설 ‘우체국’으로 스타가 된 사람이다. 명성을 얻은 뒤에도 그는 변함없이 루저였다. 시 낭송회에 만취한 채로 나타나 독자에게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그가 성공한 진짜 이유는 세상 사람의 시선에 그리고 자신의 실패에 신경 쓰지 않고 초연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자기답게 인생을 살고 싶다면 더 많이 신경 쓸 게 아니라 더 적게 신경 써야 한다.”
대체 어디에 신경을 써야 하나.
“좋은 질문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보다 ‘그걸 위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에 신경 써야 한다. 일례로 나는 청소년기 내내 록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무대의 환호성만 사랑했지, 고된 연습과 배고픈 밴드 생활을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날씬한 몸을 원하면 체육관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 예술가로 살려면 불안과 가난의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게 삶을 구성하는 단순한 원리다.”
하지만 누가 쾌락보다 고통을 먼저 계산하겠나.
“실제로 우리는 만족감에 젖어 있기보다 고군분투하면서 생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다. 사는 건 어차피 고군분투다. 원하는 것을 이뤘더라도 고통과 문제는 계속된다. 문제없는 삶이란 없으니까. 그래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나. 어떤 것이 내게 가치 있는 고통인가.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뇌가 신경 끄도록 자동으로 만든 패턴이 좋은 습관이고 루틴이다.”
그런데 당신은 마약과 파티와 술로 인생 초반을 탕진했다고 고백하지 않았나. 좋은 습관과는 거리가 멀었던 거로 아는데.
“맞다. 일찍부터 인생의 쓴맛을 봤다. 십대 때 가방에 숨긴 마약을 들켜서 퇴학당했다. 당시 나는 기능이 결여된 가족과 부모에게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했고, 넘치는 감정을 어디에 쏟아부어야 할지도 몰랐다. 퇴학당한 후 20대 초반까지 진지한 직업도 갖지 못한 채 술과 파티에 빠졌다. 저지르고 치욕을 당하고 자기 파괴적 행동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모든 경험을 책에 쏟아냈다. 반면 한국은 바닥을 치면 끝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인 것 같더라.”
한국에서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말을 초등학생들도 쓴다.
“(놀라며) 저런! 망하면 끝이라는 프레임은 매우 위험하다. ‘망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고 부모가 반복해서 들려줘야 한다. 성인이 되어 성공해도 자기 실패를 숨기느냐 드러내느냐에 따라, 내적 안정감이 달라진다.”
성숙해진 특별한 계기가 있나. 신경 쓸 것과 신경 끌 것을 꼼꼼하게 고르는 일을 성숙이라고 했는데.
“첫 번째 계기는 친구의 죽음이다. 친한 친구가 파티장에서 술에 취해 절벽 아래 호수로 뛰어내려, 즉사했다.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 꿈에서 그 친구를 만나 ‘네가 죽어서 유감이야’라고 했더니, 일침을 가하더라. ‘신경 꺼. 그런 너는 사는 게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잖니’라고 말이다.
두 번째 계기는 미국 밖을 7년 동안 여행한 거다. 그 경험이 내 성격 형성의 기반이 됐다. 보통의 미국인은 다른 나라에서 배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다들 미국인처럼 살고 있거나 살고 싶을 거라고 믿지. 외국을 떠돌아다니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이를테면 각 나라와 사회는 저마다 다른 가치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문제를 겪고 있더라. 미국인도 한국인도, 다 각자 그 사회가 선택한 가치와 그에 따른 고통을 안고 살지 않나.
세 번째 성숙의 계기는 아내를 만난 거다. 아내 덕분에 이기심이 줄어들고 전념과 헌신의 가치를 알게 됐다. 수많은 선택지를 거부하고, 신경 쓸 대상을 좁히는 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모른다.”
인생 중반 이후는 친구와 배우자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숙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타고난 기질 때문에 ‘신경 쓰기의 무한궤도’에 빠져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다. 내 경우엔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엔 트래픽에 온 신경을 쓰느라 주말이 통째로 날아간다(웃음).
“(미소 지으며) 수치를 챙기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나도 숫자를 본다. 중요한 건 그걸 왜 신경 쓰느냐다. 전달력 높은 글을 쓰고 독자에게 가치 있는 걸 주고 싶은 마음에 동기부여가 된다면 오케이. 그러나 사회적 위치, 명성, 인정에 불안 신호가 깜박인다면 빨리 중단해야 한다.”
70편의 소설을 썼던 작가 팀 페리스를 예로 들어서 쓰레기 같은 단어 200개를 쓰다 보면 쓰는 행위 자체에서 영감이 생긴다고도 했다. ‘일단 뭐라도 해’가 정말 그렇게 유용한가.
“처음부터 좋은 걸 시작할 순 없다. 좋은 것이 주어지기를 기다린다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 거다. 너무 하찮아 보여도 일단 뭐라도 하면, 그게 실마리가 돼서 풀린다. 나는 이걸 ‘뭐라도 해’ 원리로 부른다.
1인 기업을 시작했을 때도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는데, 부담감에 짓눌려 할 일을 계속 미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한 거라도 일단 뭔가를 하면, 어려운 일이 차츰 쉬워졌다. 책의 목차를 짜야 한다면, 일단 제목이라도 써보는 거다. 작가 팀 페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꾸준히 쓰며 영감을 잃지 않느냐고 했더니 ‘하루에 그저 쓰레기 같은 단어 200개를 쓸 뿐’이라고 하더라. ‘뭐라도 해’ 원리를 따르면, 실패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대단한 걸 시도한 게 아니라 그저 ‘뭐라도 한 것뿐’이니까.”
사실 당신의 조언은 힐링과는 거리가 멀다. ‘거창한 자아상을 버려’라거나 ‘남 탓하지 마. 선택을 했으면 책임을 져’ ‘너도 틀렸고 나도 틀렸어’처럼 엉덩이를 걷어차는 충고는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들리기도 한다.
“(미소 지으며) 신경 안 쓴다. 그게 진실이니까. 인생에서 중요한 말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여러 번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삶은 가치 있는 고통을 선택하고 책임 지는 거다. 내게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에게도 계속 이야기한다.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택에 의미가 없다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인생이 변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책임을 수용하려면 ‘극단적인 자아상’을 버리는 게 좋다. 당신은 천재나 유망주도 아니고 비참한 피해자나 실패자도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희귀한 것으로 정하면, 세상이 더 위협적으로 보인다. 그럴 땐 그냥 남과 다르지 않게 학생, 배우자, 이웃, 창작자 정도로 자신을 규정하는 게 좋다.”
평범하다는 인식이 중요한가.
“중요하다. 그래야 일상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약한 근육을 키우듯, 저지르고 책임지면서 차근차근 훈련해 갈 수 있다. 작은 일을 반복하면서 실수하고 망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특별히 그는 미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비합리적일 정도로 긍정적인 문화에 젖어서 ‘쾌락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는 건 쾌락의 쳇바퀴를 굴리는 게 아니라 ‘고군분투’라는 생각이 마크 맨슨의 신경세포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듯했다.
행복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고 가르쳐준 스승이 있나.
“부처다. 그가 내 모든 아이디어의 출발점이다. ‘고통이 곧 삶이다’라는 사실을 자기 삶을 던져서 깨닫고 알린 인물이잖아. 빈자는 가난해서, 부자는 부유해서 고통받는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해준 것들이 우리의 기분을 해치는 법이다.
미국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에게도 영향받았다. 유년의 어려움은 통제할 수 없지만 삶의 종료 시점에서 보면, 벌어진 일들을 내 책임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에 깊이 매료됐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모아 ‘지식은 반드시 삶을 향상해야 한다’는 ‘실용주의’ 철학을 창시했다.”
현재 당신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미디어 플랫폼에 글을 쓰는 것과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몰입할수록 정신 사나운 온갖 대안에 휘둘리지 않고 더 나은 기회를 얻게 됐다.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다툼이다. 정치인이 쓰는 언어 중 90%가 대중의 신경을 자극하는 멍청한 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유용했던 신경 끄기 비법을 알려달라.
“마음이 가지 않는 초대나 행사는 아무리 중요해도 가지 않는다. 열정이 없는 것은 거절해도 된다. 일상적으로 루틴을 만들어두는 게 좋다. 나는 일할 때와 잠잘 때는 휴대전화를 다른 곳에 둔다. 더 나아가 죽음을 가정해 볼 것을 권한다. 죽음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무엇을 신경 쓰고 꺼야 할지 가늠이 된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면 죽기 전에 만족할까. 앞으로 1년만 산다면 가장 후회되는 일은 뭘까. 질문하면 가치가 모일 것이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는 그 기준을 알고 있다. ‘써야 할 신경’은 친절이며, ‘꺼야 할 신경’은 욕망이라는 걸. 인생의 종료 시점을 상상하면 풍요와 인정을 갈망하는 것보다 역경을 극복하는 데서 보람을 찾는 게 결국 ‘남는 장사’라는 걸. 그럼에도 아는 것이 진짜 뼛속에 각성될 때야 비로소 우리 뇌도 과소비를 멈추고 신경 쓸 것과 끌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