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숫자는 사실에 설득력을 더한다. 인간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명언은 숫자에 짓눌리곤 하는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말해준다. 여기, 압도적인 숫자를 남긴 노래가 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팝의 역사를 장식했던 스타 중의 스타 21명이 모였다. 코러스로 참여한 23명도 보컬 한 파트를 맡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1985년 3월 7일 발표된 이 노래는 그해 빌보드 핫100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호주, 프랑스를 비롯한 9개국에서도 1위에 올랐으며 발매 3일 만에 80만 장이 팔리며 역사상 최단기간에 최대 판매를 기록한 싱글이 됐다. 역사상 어떤 노래도 기록하지 못한 수치이자 달성하지 못한 영향을 만들어낸,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와 관련된 숫자들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그 숫자의 시작을 다룬다. 21명의 팝스타가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모여 보컬 녹음을 했던 1985년 1월 28일의 하룻밤을 말한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 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

전대미문의 프로젝트가 계획된 건 1984년 12월이었다. 아프리카 대기근 구호를 위해 영국의 슈퍼스타들이 모여 발매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 자극받은 한 인물이 있었다. 마틴 루서 킹과 함께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했으며 1950년대 ‘Day-O’ 같은 히트곡을 남긴 뮤지션, 해리 벨라폰테였다. 그는 미국 음악계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냐며 라이오넬 리치와 케니 로저스의 제작자인 켄 크레이건에게 제의했다. 크레이건과 리치, 로저스는 이 취지에 동감했고 스티비 원더도 함께하기로 했다. 퀸시 존스도 프로듀싱을 수락했다. 애초 원더와 리치가 노래를 만들기로 했지만 당시 원더는 영화음악 작업 때문에 연락이 잘되지 않는 상태. 사정을 들은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에게 연락했고, 흔쾌히 참가 의사를 밝혔다. 

라이오넬 리치는 잭슨의 저택에서 함께 곡 작업에 착수했고 그사이 크레이건은 뮤지션들을 섭외했다. 잭슨은 애초 작사와 작곡에만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리치와 크레이건의 설득으로 리코딩까지 같이하기로 했다. 밥 딜런,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이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함께하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Thriller’로 팝의 황제 자리에 오른 마이클 잭슨, 1984년 최다 앨범 판매를 기록한 라이오넬 리치에 밥 딜런과 브루스 스프링스틴까지. 게다가 프로듀서가 퀸시 존스. 누가 함께하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하나였다. 연 단위 스케줄로 움직이는 이 라인업을 어떻게 한자리에 모을 것인가. 게다가 발매일이 3월로 정해지기까지 했으니 촉박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특급 작전이 필요했다. 크레이건이 택일했다. 1월 28일. 바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날이었다. 인기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노래도 차근차근 완성됐다. 리치와 잭슨은 미국 국가처럼 엄숙하지 않은 노래를 만들기로 합의했고, 이 합의하에 잭슨이 대부분의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었다. 

녹음 일을 며칠 앞두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리치와 잭슨이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참여 아티스트들에게 돌렸다. 유출 방지를 위해 엄중한 경고문을 동봉했다. 퀸시 존스의 편곡으로 악기 녹음이 끝나고, 코러스 녹음도 마쳤다. 디데이, 모든 참여진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참석한 건 아니었다. 마이클 잭슨은 미리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솔로 파트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전국 투어를 마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시상식이 시작됐다. 라이오넬 리치는 사회를 맡아 동분서주했다. 카메라와 마이크가 꺼지면 크라겐과 함께 아티스트와 관계자들에게 작전 지령을 내렸다. 시상식이 끝났다. 아티스트들은 뒤풀이나 숙소 대신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향했다. 긴장되는 순간을 푼 건 스티비 원더였다. 그는 “한 번에 녹음을 끝내지 못하면 나와 레이 찰스가 운전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둘 다 맹인임을 활용한 조크였다. 뮤지션들에게 동선을 지정하는 등 준비를 마친 후 본녹음이 시작됐다. 밤 10시 반. 코러스의 합창 파트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확정되지 않은 가사를 놓고 배가 산으로 가려 했다. 그 외에도 현장에서 결정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가까스로 합창 녹음이 끝나고 솔로 파트 녹음을 앞두고 간단한 식사 겸 휴식.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이애나 로스가 누군가에게 악보를 건네며 사인을 요청하는 순간, 모두가 자각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그들 모두 스타 중의 스타였지만 동시에 함께한 누군가의 팬이었던 것이다. 가수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라이오넬 리치가 이 프로젝트는 해리 벨라폰테로 인해 시작됐다고 하자, 누군가의 선창으로 다 같이 ‘Day-O’를 합창하는 장면도 귀하다. 끝까지 참석을 요청했으나 결국 불발된 프린스를 대신해 록 보컬리스트 휴이 루이스가 마이클 잭슨 바로 뒤 파트를 녹음하는 장면에서 그는 회상한다. “프린스 대신? 마이클 바로 뒤에? 떨릴 수밖에 없었죠.” 신디 로퍼와 함께 참여진 중 가장 신입급인 루이스였다.

이토록 스타라는 무게 아래 가려진 사람들이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해프닝 속에서 가장 의외의 부분은 밥 딜런의 몫이었다. 특유의 창법 그리고 혼자 일하는 방식 때문에 그는 코러스 녹음 내내 뻘쭘하게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후반부 애드리브 파트 녹음에서 감을 못 잡고 어쩔 줄 몰라 하다 스티비 원더에게 연습 겸 연주를 부탁한다. 원더는 흔쾌히 피아노로 그의 파트를 친다. 밥 딜런의 성대모사를 하며 흥얼거린다. 다른 뮤지션들도 원더의 피아노 옆에 둘러서 원더의 성대모사와 딜런의 낯선 모습에 싱글벙글. 비로소 감을 잡은 딜런은 멋쩍게 웃으며 마이크 앞에 선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와 함께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로 여겨지는 딜런의 파트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막 투어를 마치자마자 마이크 앞에 선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좋지 않은 목 상태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녹음하는 걸 끝으로 하룻밤이 끝났다. 동이 트고 모두가 웃으며 떠나는 순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듯 진이 빠지는 기분이다. 리치와 스프링스틴, 루이스와 신디 로퍼 등의 생생한 입담과 회고가 사실성을 더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유니버설 스튜디오 앞, 퀸시 존스는 이런 글귀를 붙여 놨다. “자아는 문 앞에 두고 오세요(Check your ego at the door).” 그랬다. 역사를 만들고 산업을 지탱하며 유행을 이끄는 스타들의 에고는 매니저들과 함께 녹음실 바깥에 머물렀다. 그 위대한 밤을 함께 만든 건 그들의 유명세와 재산이 아니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의 음악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멋진 시민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들이 모여 ‘We Are The World’의 기록과 업적 그리고 숫자를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