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의 ‘영양국제밤하늘 보호공원’. 사진 영양군
경북 영양군의 ‘영양국제밤하늘 보호공원’. 사진 영양군
2003년 봄, 전북 고창군은 버스터미널을 군 직영으로 전환했다. 인구 부족으로 수익성이 떨어지자 민간 기업이 운영을 포기했다. 2022년 한 해에만 10곳이 넘는 터미널이 폐업했거나 지자체 직영으로 바뀐 곳이 우리나라다. 2023년 2월 기준 28개 기초지자체(시·군·구) 중 절반이 넘는 118곳(51.8%)이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20년 전 행정 수도를 옮기려는 시도가 위헌판결로 좌절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이 정도까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7년부터 1971년까지 한 해 100만 명 이상의 신생아가 태어나던 나라다. 2002년은 신생아가 50만 명 밑으로 태어난 첫해다. 2022년 태어난 신생아는 25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100만 명에서 절반으로 주는 데 30년, 거기서 다시 절반이 되는 데 불과 20년 걸렸다. 매해 100만 명 이상이 태어나던 시장이 50만 명 그리고 25만 명으로 준 것이다. 속도는 더 큰 문제다. 2000년에 1.48명이던 합계 출산율이 2018년 이후로는 1명 이하로 내려왔다. 2022년도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2021년 0.81명보다도 더 낮아졌다. 지금의 속도대로 간다면 15년 후에는 출생아 수가 10만 명 이하로 내려앉는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지방 소멸? 지역 소멸!

고속버스 이용객은 줄었다. 이용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경쟁하는 교통수단에 비해 이동 소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소요 시간을 줄이면 고속버스는 건재하게 되는 건가. 아니다. 마냥 빨리 달리게 할 수는 없다. 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그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하면 된다. 어차피 빨라질 수 없는 것, 편하고 즐겁게 갈 수 있도록 하면 고속버스는 살아남는다. 우등고속버스가 나오고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등장한 이유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인구가 주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동네,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인구의 자연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일,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주하는 사람의 수가 늘지 않는다면 다른 형태의 거주자를 늘려야 한다. 살던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시작은 지역 경제 활성화다. 그래서 지방 소멸이란 표현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방은 중심에서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서울에서 떨어져 있는 시골이란 함의가 있는 표현이다. 따라서 지방 소멸 대신 지역 소멸이란 좀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꿔서 쓰는 것이 좋겠다. 지역은 일정한 영역을 뜻한다. 서울도 당연히 하나의 지역이다. 서울 일극화도 문제인데 지방 소멸이란 표현으로 서울은 별문제 없는 곳이라는 인식까지 가져간다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 들어도 싸다.

로컬 브랜딩 혹은 스몰 타운 브랜딩

최근에는 ‘로컬’이란 말도 많이 쓰이고 있다. 로컬은 살고 있는 특정 ‘지역의’ ‘현지의’를 의미한다.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지, 현장이란 의미가 은연중에 강조되기에 지방이란 말보다는 좋은 말이긴 하다. 서울에서 일어나든 서울에서 떨어진 산골에서 일어나든 지역이 다시 활기를 찾고, 사는 사람은 떠나지 않고 외부 사람들이 많이 찾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재생부터 도시 재생, 로컬 활성화까지. 이 모든 것은 지역 소멸을 막는 방법을 부르는 각각의 이름일 뿐이다. 지역 소멸을 걱정하는 단위는 일반적으로 도시보다는 작다. 대도시라면 구나 동에 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도시가 아닌 경우, 군이나 읍에 해당한다.

‘도시 브랜딩’이라고 하면 대개 ‘대도시의 브랜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동네나 마을이란 말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도, 산골에 있는 군이나 읍에도 다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작은 마을의 브랜딩이란 뜻으로 ‘스몰 타운 브랜딩’이란 말을 지역 소멸을 막는 브랜딩 노력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로컬 브랜딩‘과도 비슷하다. 지방 소멸, 지역 소멸의 위기일수록 작은 도시의 장점과 매력을 찾아야만 한다. 소멸 위험의 경고등이 켜진 대도시의 하위 자치단체에도 스몰 타운 브랜딩이 적용될 수 있다. 스몰 타운 브랜딩의 불변의 원칙은 좁혀야 한다는 것이다. 타깃이나 소재를 좁혀야 한다. 좁히면 결국에는 넓어진다는 믿음으로. 테마를 하나로만 집중해야 한다.

관계 인구를 늘리자

‘관계 인구’는 지역과 관계를 지닌 외부인을 뜻한다. 관계 인구는 ‘일상 생활권과 통근권 이외의 특정 지역과 계속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강원도를 생각해 보자. 강원도의 면적은 국토의 6분의 1이다. 그런데 인구는 3%에도 못 미친다. 그 넓은 땅에 사는 사람은 150여만 명에 불과하다. 강원도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1억 명이 넘는데 상주인구는 관광객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강원 지역 군 장병, 강원도 소재 대학으로 유학 오는 외지 학생들 가운데 얼마라도 강원도에 눌러앉도록 하고자 하지만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지역 소멸을 먼저 고민해 온 일본에서 고안한 개념인 ‘관계 인구’는 여행이나 방문 등을 계기로 그 지역을 좋아하게 된 ‘교류 인구’와 해당 지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정주 인구’의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이다. ‘방문 인구→관계 인구→체류 인구→정주 인구’, 이런 질적 변화가 가장 이상적이다. 인구는 줄지만, 개인의 활동 반경과 역량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교통수단의 문제, 시간 할당의 어려움 때문에 방문이 극히 어려운 지역은 이제 없다. 소문난 특정 장소를 보려고 짧게 다녀가는 사람들을 만들어 보자. 사람들은 흥미로운 축제 등의 행사를 보러 올 수도 있다.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면 된다.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방문을 유도하는 것, 바로 스몰 타운 브랜딩이 할 일이다.

‘밤하늘’로 브랜딩한 영양군

2015년 산간 오지 경북 영양군이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됐다. 국제밤하늘협회(IDA·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는 2015년 9월 31일 인터넷 홈페이지(darksky.org)를 통해 “영양군 일대를 아시아의 첫 국제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협회는 “영양군이 빛 공해나 인공조명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양질의 밤하늘을 갖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밤하늘 보호공원은 미국·영국·헝가리·독일·네덜란드 지역에 지정됐으며 영양군은 세계 여섯 번째이자 아시아에서는 첫 보호공원이 됐다. 협회는 “영양군은 수도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반이 걸리는 오지로, 한국과 같은 조명의 바다에서 가장 어두운 섬 같은 지역”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영양군의 사례는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동아시아의 밤하늘을 어떻게 보존할지 해법을 제시해 주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밤하늘 보호공원 선정 이후 영양군을 찾는 관광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반딧불이와 밤하늘 보호공원을 주제로 생태체험 관광이 활성화된 결과다. 수하계곡이 지나는 3.93㎢(약 119만 평) 지역, 40가구에 주민 69명이 살고 있는 곳 주변에 자연생태공원과 생태숲이 조성돼 있다. 인공 시설은 반딧불이 천문대와 청소년수련원이 전부다. 영양군은 관광 브랜드 슬로건으로 ‘대한민국 별천지, 영양’을 제정해서 쓰고 있다. 스몰 타운 브랜딩은 ‘사람을 끌어오는 지역만의 차별적 매력을 만들고 경험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에 집중하라’는 것이고 영양군은 그 원칙을 지키는 모범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