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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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1월 20일(이하 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마스크를 쓴 채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치른 후 백악관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집무실 의자에 앉아 10개가 넘는 펜을 사용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는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데, 첫 네 개는 연방 건물에서의 마스크 의무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절차 중단 등 코로나19에 관한 것이었고, 다섯 번째는 바이든의 핵심 공약이었던 학자금 부채 상환 유예였으며, 여섯 번째는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정(파리협정) 재가입이었다.

4년 전에는 많은 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은 단지 시대의 불운이었고 모든 것이 이제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믿었다.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이들은 특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재대결할 것이 확실시되고, 현재의 대다수 여론조사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바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 역시 바이든의 흔적을 지우는 것으로 취임 첫날을 시작할까. 예측할 수 없는 성정의 소유자이거나 뒤집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파리협정 같은 건 깜빡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2023년 4월 2025년 공화당 재집권을 위한 920쪽 분량의 보고서 ‘프로젝트 2025’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러스 바우트 전 백악관 예산관리실장 등 트럼프 측근들이 참여한, 사실상의 ‘트럼프 재집권 준비 계획’으로서 새로운 보수 행정부의 전체 그림을 제시한다. 

기후변화와 관련되어, 해당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 정책을 ‘기후 광신주의(climate fanaticism)’라고 비난하면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이름의 정책’은 미국 서민층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가중하고, 좋은 일자리를 없애며,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다음 행정부에서는 모든 재생에너지 관련 보조금 지원을 끝내고, 에너지 효율 기준을 없애며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한다. 그리고 파리협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근간이 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까지 탈퇴할 것을 제안한다.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트럼프 재집권 땐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 어려워질 수도 

미국 컨설팅 기업 로디움 그룹(Rhodium group)의 2020년 연구는 지난 트럼프 집권 시절 기후변화 정책이 후퇴한 결과 2035년까지 18억t의 온실가스, 즉 향후 15년간 매년 1억t가량이 추가로 배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2021년 순 배출량 56억t 중 1억t이 트럼프 때문이라는 것으로, 생각보다는 트럼프의 그림자가 아주 짙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고, ‘프로젝트 2025’의 한층 정교해진 제안을 그가 성실히 따른다면 그 파급효과는 가늠조차 어렵다. 무엇보다 전 세계 탄소 배출 2위인 미국이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의 전선에서 또다시 발을 뺀다면, 교토의정서 실패 이후 국제사회가 간신히 합의한 신(新)기후 체제는 와해할 수 있다.

우리는 파리협정의 ‘섭씨 2도(2℃)’ 목표(지구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막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재선이 아니더라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IPCC 제6차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목표를 50%의 확률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전 세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1조3500t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이 수치는 2022년 전 세계 각 국가에서 배출한 온실가스 538억 톤이 25년간 그대로 지속된다면 고갈되는 양이다. ‘2050 탄소 중립’ 목표는 대략 이렇게 간단한 산수의 결과인데, 문제는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시기를 제외하고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여전히 증가 추세이며, 당분간은 그 추세가 현격히 바뀔 이유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이 ‘현대 문명의 네 기둥(four pillars of modern civilization)’이라고 칭한 것이 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너무 흔해 인식하지도 못하는 시멘트, 철강, 플라스틱, 암모니아를 일컫는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이 네 개가 없다고 잠깐 상상해 보자. 남아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암모니아는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 우리가 먹는 곡식은 모두 비료를 사용하여 재배되며, 비료의 핵심 원료가 암모니아다. 암모니아를 경제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하버-보슈법(Haber-Bosch process)을 발견함으로써 인류는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방식은 천연가스를 열분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네 기둥’ 모두 공정 과정에서 석탄, 석유 또는 천연가스를 필요로 하고,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모든 에너지원을 무탄소로 전환하더라도,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 ‘네 기둥’이 여전히 필요하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에서 앞으로 ‘네 기둥’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비탄소계 대체물은 향후 10년 이내에 상용화되기 어렵다.

1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17일 미국 미시간주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2 1월 14일 미국 아이오와주 인디애나에서 기후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캠페인 행사에서 그의 기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1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월 17일 미국 미시간주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2 1월 14일 미국 아이오와주 인디애나에서 기후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캠페인 행사에서 그의 기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이상기후발(發) 재난 예방 역량 키워야

개인적 바람을 걷어내면, 필자는 파리협정의 2℃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귀환은 아마도 2℃ 상승의 시기를 조금 앞당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도덕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돈의 흐름을 보더라도 실리적으로도 옳다. 세계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투자 2023

(World Energy Investment 2023)’에 따르면, 지난해 약 2조8000억달러(약 3734조6000억원)의 에너지 부문 투자 중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화석에너지의 150%를 초과했고,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석탄발전소 폐지,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의 전환, 저탄소 기술 개발 등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와 동시에 그만큼 중요한 것은, 평균온도 2℃ 이상 상승을 상수로 두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겪고 있는 전 세계 이상기후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폭염, 폭서, 폭우, 폭설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후 탄력적 인프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이는 건물, 도로, 배수구, 다리 등의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건설, 점검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 일상의 근간이 되는 경제, 사회 시스템의 변화도 포함한다. 2021년 7월 서유럽 홍수는 기후 탄력적 인프라의 중요성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당시 집중호우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접경 지역에서 발생하였는데, 독일과 벨기에에서는 2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사망자가 없었고 피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네덜란드의 수자원 관리 기술과 체계적인 홍수 관리 시스템 덕분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은 공급망과 생산 시설을 수시로 점검하고, 폭우나 폭설로 출퇴근이나 등교가 어려워질 때 각자가 차분히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상 기후로 인한 인명 사고, 물리적 피해나 생산성 저하를 더 이상 정쟁의 도구나 예외적 현상이 아닌,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차근차근 쌓을 필요가 있다. 2022년 강남지역 홍수,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사고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고, 그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