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의 맛과 멋의 시작, 과메기
이제 조금 있으면 과메기를 맛보지 못한다. 서두를 일이다. 포항은 어딜 가나 과메기가 지천이다. 어물전과 횟집마다 ‘과메기 팝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과일 가게와 신발 가게에서도 과메기를 판다. 도로를 따라가다 아무 마을로 내려서도 과메기 덕장이 널려있다. 과메기는 꽁치를 바닷바람에 ‘어정쩡하게’ 말린 것이다. 오징어로 치면 반건조 오징어 비슷하다. 이 어정쩡하게 마른 꽁치가 겨울,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이즈음이면 미식가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예로부터 구룡포에서는 과메기를 밥반찬으로 만들었다. 청어를 바닷바람에 말려 김이나 미역에 싸서 먹곤 했다. 구룡포에서 청어는 흔하디흔한 생선이었다. 지금은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 청어는 동해에서 1960년대 이후 사라졌고 꽁치가 흔해졌다. 요즘은 북태평양에서 잡힌 꽁치를 사용한다. 말리는 일만 구룡포에서 하는 셈이다. 과메기를 맛본다. 촉촉하면서도 꾸들꾸들하고 비린가 하면서도 담백하다. 동해의 바람이 만들어낸 맛이다. 등 푸른 생선 특유의 기름지면서도 구수한 맛이 살아있다. 김에 과메기 한 조각을 얹고 실파와 마늘을 얹어 쌈을 싼다. 초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할까. 다시마나 미역 같은 해조류에 과메기를 돌돌 말아 먹어도 된다. 과메기의 고소한 맛과 해조류의 상쾌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술은 소주처럼 톡 쏘는 술이 어울린다.
여성들은 과메기를 많이 먹는다고 살이 찐다는 걱정을 괜히 할 필요는 없다. 과메기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다. 접시 위에 놓인 과메기에서 기름이 흘러나오지만 소나 돼지기름과 달리 허옇게 엉겨 붙지 않는다. 좋은 지방이라는 증거다. 구룡포 술꾼들은 “밤새 과메기 안주와 술을 마셔도 아침이면 얼굴이 번지르르하다”고 자랑한다.

한류 콘텐츠 성지로 거듭나
공업 도시와 과메기가 대표하던 포항의 단조로운 이미지에 요즘에는 ‘한류(韓流) 콘텐츠의 성지’라는 이미지가 더해졌다. 각종 TV 프로그램의 단골 촬영장으로 소개되면서 해외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포항으로 여행자를 이끄는 한류 드라마 투톱은 ‘동백꽃 필 무렵’과 ‘갯마을 차차차’다. 두 드라마 모두 로맨스와 코미디를 적절히 섞어 젊은 층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포항을 찾은 여행자들은 시장 골목과 포구, 등대 등 배경을 찾아다니며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 여행을 즐긴다. 주요 배경을 찾아 사진을 찍으며 주인공이 된 듯한 설렘을 느끼고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한류 성지순례’ 포항 여행의 시작점은 구룡포다. 용두산 아래 깊은 소에 살던 아홉 마리 용이 동해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구룡포항은 바다의 거친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어부들의 부지런한 모습, 생선을 손질하는 여인네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바다를 분주히 오가는 고깃배의 모습으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포구 가운데 있는 수협 어판장은 온통 대게와 홍게로 넘쳐난다. 다리가 긴 대게와 붉은빛을 띤 홍게들이 좌판을 점령하고 있다. 어판장을 찾은 관광객과 상인들의 흥정 소리로 떠들썩하다.

역사의 현장, 근대문화역사거리
어판장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근대문화역사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은 80여 채의 일본식 가옥이 있는 곳으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공효진과 강하늘이 주연한 ‘동백꽃 필 무렵’은 최고 시청률 23.8%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구룡포는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체결되자 일본인의 조선 출어가 본격화되고 고등어를 잡기 위해 가가와현의 어업단 80여 척이 구룡포에 눌러앉으면서 본격적으로 번화하기 시작한다. 이후 구룡포는 어업전진기지로 떠오른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구룡포 앞바다는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 그물만 던지면 만선이었다. 1932년 구룡포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숫자는 287가구 1161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근대문화역사거리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구룡포로 와서 선어 운반업으로 큰 부를 쌓은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이 있다. 일본에서 공수한 자재로 지은 이층집으로 지금은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2층 목조건물인데,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곳이 여행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때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찍고 나서부터. 아직도 세트장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옛날에는 ‘과메기 마을’로 불렸던 구룡포가 이제는 ‘동백이 마을’로 불릴 정도다. 주인공 동백이(공효진)가 운영하던 카페 ‘까멜리아’ 앞은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까멜리아 오른쪽에는 드라마 이름을 본뜬 ‘동백서점’과 ‘동백점빵’ 등이 이어진다. 이 골목은 드라마 속에서 ‘옹산 게장골목’으로 나왔는데, 아줌마들이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다.
거리 가운데 언덕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면 구룡포항이 내려다보인다. 드라마에서 동백과 용식이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다.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여의주를 물고 서로의 몸을 휘감고 있는 아홉 마리 용 조형물이 서 있다. 예전에 이곳에는 신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호국 영령을 기리는 충혼탑과 충혼각 그리고 구룡포 어민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당이 자리한다. 공원을 지나면 과메기 문화관이다. 포항의 별미인 과메기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다. 기획전시관을 비롯해 해양체험관, 과메기 홍보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메기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디오라마 등을 통해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구룡포에서 호미곶이 가깝다. 해마다 1월이면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포항뿐만 아니라 전국의 해 뜨는 상징이 된 ‘상생의 손’ 조형물을 배경으로 함께 다양한 각도의 사진 찍는 것이 재미다.
호미곶 가기 전 석병1리를 지나게 되는데 이 마을 방파제에 빨간 등대가 서 있다. 석병1리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 ‘갯마을 차차차’는 현실주의 치과의사 윤혜진과 만능 백수 홍반장이 바닷가 마을 ‘공진’에서 벌이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빨간 등대는 혜진(신민아 분)이 두식(김선호 분)에게 고백했던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며 드라마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갯마을 차차차’ 주 배경지는 청하공진시장이다. 포항 북구 청하리에 자리하고 있다. 조용했던 어촌마을이었지만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국내외 팬들이 알음알음 찾아온다. 드라마에 나오는 공진반점과 보라수퍼, 청호철물점, 오윤카페가 그대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