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in)’ 부산적 사고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위드(with)’ 부산을 통해 ‘비욘드(be-yond)’ 부산을 실현해야 한다. 부산은 최고의 기술이 구현된 세계적인 블록체인 시티, 디지털 금융의 글로벌 허브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김상민 부산시 블록체인 분야 정책고문은 블록체인 도시로 거듭날 부산의 미래를 그리며 이렇게 밝혔다. 부산시의 블록체인 도시 건설이 지역 사업을 넘어 국가 단위의 미래를 짊어질 프로젝트라는 게 김 고문의 설명이다. 실제로 부산시는 시 주도로 이른바 ‘블록체인 사업 특화 도시 탈바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뒤 50여 개 블록체인 기업이 부산으로 이전해 오기도 했다. 매년 시 주최로 ‘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BWB)’이란 행사도 성대하게 열린다. 아울러 부산시는 2026년을 목표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결제·송금·행정 인프라도 구축하는 중이다.
2023년 12월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이하 부산거래소) 설립의 첫 삽이 떠졌다. 부산거래소는 부산이 블록체인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시의 역점 사업이다. 이를 위해 부산시는 거래소 설립·운용 주체로 아이티센·하나은행·하나증권 등 11개 기업이 모인 부산BDX컨소시엄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부산거래소는 귀금속과 원자재 같은 실물 자산과 문화콘텐츠 등을 토큰화하고 거래를 중개한다.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와 달리 코인과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선례가 없는 독특한 사업 모델이다. 하지만 2022년부터 2023년 12월까지 부산거래소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아 거래소 설립 전 과정을 지휘한 김 고문은 성공을 확신했다. 최근 김 고문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부산거래소는 기존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달리 실물 자산 등을 토큰화하는 사업 모델로 알려져 있다. 거래소 사업 모델에 대해 더 설명해준다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3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인 16조달러(약 2경1290억원)의 자산이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토큰화돼 거래될 것으로 예상했다. 부산거래소는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로 출발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단순 투기 수단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낼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실물 자산, 토큰 증권뿐 아니라 비상장 주식, 채권 등 전통 금융 상품을 포함한 모든 자산을 거래하는 글로벌 거래소로 발전할 것이다.”
실물 자산 위주 거래소인 만큼 현물 자산의 존재를 입증해 고객의 신뢰도를 확보하는 과정도 중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부산거래소는 예탁 결제, 상장 평가, 시장 감시 기능이 분리된 분권화 거버넌스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실물 자산의 품질 및 보관 문제, 보관된 실물과 토큰화된 거래 내역에 대한 동일성 등을 보증하는 전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 분권형 상품 거래소가 될 것이다.”
부산거래소 설립은 지역 특화 사업이라는 사명도 있다. 디지털 자산 거래소라는 신사업을 꾸리면서 부산의 지역성을 어떻게 살릴지 궁금하다.
“부산은 동북아시아 물류 중심지이자, 전 세계 2위의 환적 항이다. 게다가 국내 최대 게임박람회 지스타뿐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 등 풍부한 문화 인프라를 보유한 도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원자재, 귀금속에 K콘텐츠까지 활용하는 등 부산거래소에서 거래될 수 있는 품목은 무궁무진하다. 런던, 시카고, 싱가포르 등 글로벌 대도시들은 상품 거래소 설립부터 시작해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발전한 바 있다. 부산거래소도 실물 자산부터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경제 시대 블록체인 기반으로 토큰화될 모든 가치 있는 자산을 거래하는 세계적인 거래소로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글로벌 금융 중심지를 지향하는 부산의 비전도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으로 본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부산 지역에 블록체인 기업 및 관련 인력을 붙잡아 둘 수 있는 청사진을 궁금해하고 있다.
“BWB 2023 행사에서 부산 블록체인 얼라이언스를 결성하면서 국내 120개 웹 3.0(블록체인 이용 탈중앙화 웹서비스) 및 블록체인 기술 기업이 부산을 블록체인 시티로 발전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선언했다. 당시 함께 발표했던 부산 블록체인 혁신 펀드가 조만간 구성될 예정이다. 부산이 대한민국 블록체인 업계의 요람이자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지원할 계획이다.”
부산은 2019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향후 부산에서 블록체인 및 웹 30. 산업 진흥을 위해 규제자유특구 지정 외 추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를 운영한 지 4년 정도 됐는데,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자유특구 내 시범 사업 허용에 대해 금융위원회 등 당국의 협의를 거쳐야 하다 보니 과감한 규제 특례가 이뤄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이번 정부는 기존의 규제자유특구를 ‘글로벌혁신특구’로 승격할 경우 해외 선진국 수준의 ‘네거티브 규제(우선 허용 사후 규제)’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부산이 블록체인 글로벌혁신특구로 지정돼 스위스, 아부다비, 두바이, 싱가포르 등과 동등한 규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웹 3.0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코인과 토큰을 배제한 거래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유동성 확보가 관건인데.
“코인과 토큰이 아니더라도 좋은 상품이 있다면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부산거래소는 한국거래소와 같이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하는 유통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기존의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앱 혹은 증권사 MTS(모바일 트레이딩 서비스) 앱을 통해 토큰화된 실물 자산을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 기존에 충분한 사용자를 확보한 핀테크 기업 및 증권사와 협력한다면 유동성 확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5년 전부터 블록체인 대중화가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산거래소가 블록체인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궁금하다.
“부산거래소는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블록체인 도시 부산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술의 장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 시민이 하나의 블록체인 앱에서 송금·결제, 조각 투자, 교통카드 사용, 주민 투표, 신원 인증 등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재 부산시는 지역 화폐인 ‘동백전’ 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소상공인이 부담하던 카드 수수료는 10분의 1 수준으로, 그간 3일 정도 걸리던 대금 정산은 실시간으로 바뀐다. 부산거래소는 국내외 최고 블록체인 기업과 함께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