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트가 2019년 8월 15일 늦은 오후 그린란드 동부 쿨루수크 타운 부근의 빙하 옆을 지나가고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북극 아래 그린란드 빙상의 2001∼2011년 온도가 20세기 평균보다 섭씨 1.5도 올라가 1000년 이래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AP연합
한 보트가 2019년 8월 15일 늦은 오후 그린란드 동부 쿨루수크 타운 부근의 빙하 옆을 지나가고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북극 아래 그린란드 빙상의 2001∼2011년 온도가 20세기 평균보다 섭씨 1.5도 올라가 1000년 이래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AP연합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면 분명 다양한 국가로 떠난 여행인데 신기할 정도로 한 가지 주제가 겹친다. 피오르로 떠난 여행은 아름다운 산과 강, 새하얀 빙산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빙산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과 함께 기후변화가 진행 중임을 알린다. 동남아시아로의 여행은 이국적인 문화와 음식을 흠뻑 즐기다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조망한다. 와인 산지로 출발한 여행은 와인 제조의 역사와 포도의 종류를 설명하다가 이상기온으로 포도밭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사과 하면 대구가 떠오르는 게 당연하였지만 21세기 말에는 강원을 떠올리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제주의 한라봉은 충주로, 경산의 포도는 영월로, 과일의 재배 한계선이 북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비단 과일만이 아니라 날씨에 대한 뉴스에서 ‘몇십 년 만의 처음’ ‘기상 관측 이래 최초’ ‘사상 첫’ 등의 표현이 낯설지 않게 보인다. 각국은 각기 다른 변화에 맞닥뜨리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공통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국제 공조로 오존층 파괴 물질 배출 규제

기후변화는 전 지구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환경 이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는 과거에도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는 국제 공조로 성과를 이룬 사례도 있다. 바로 오존층 파괴다. 오존층은 성층권의 고농도 오존막으로 자외선을 흡수하여 지구상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산업 활동 등으로 파괴되어 지난 몇십 년간 그 두께가 점점 얇아졌고, 남극 상공의 오존층엔 구멍이 뚫리기도 하였다. 오존층 파괴는 백내장, 피부암 등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식물의 생육을 저하시켜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전 세계는 1985년 비엔나 협약을 시작으로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 등을 통하여 오존층 파괴 물질을 규제·관리하는 데 협력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23년 1월 세계기상기구(WMO), 유엔환경계획(UNEP), 미국 해양대기청(NOAA),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공동 발간한 보고서 ‘오존층 감소에 대한 과학적 평가: 2022(Scientific As-sessment of Ozone Depletion: 2022)’에서 2040년까지 대부분의 오존층이 1980년대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선보였다.

이런 희망적인 결과를 기후변화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국가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28차례 열었으나 오존층 보호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유의미한 성과는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존층 파괴와 기후변화의 대응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오존층 파괴 물질은 프레온가스 등 인공 합성 물질이기에 어디에서 얼마나 생산되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이 말은 곧 오존층 파괴 물질에 대한 배출 통제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를 통제해야 하는데, 온실가스는 산업·수송 부문 등 다양한 곳에서 배출되고 있어 감축량 통제가 어렵다. 

이에 더하여, 전문가들은 오존층 파괴와 기후변화라는 환경 이슈가 선진국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오존층 파괴로 인한 자외선은 북미와 북유럽 등 극지방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피부암 발병 등 인체에 미친 피해도 해당 지역에서 크게 나타났다. 이에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프레온가스의 대체 물질을 연구하고 개발도상국도 지원하며 몬트리올 의정서의 이행을 위해 노력하였다. 

두바이 COP 28, 기후변화 피해국 지원 기금 출범 성과

기후변화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나 큰 영향을 받는 지역은 대체로 적도에 가까운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이다. 기후 난민의 분포는 이를 더욱 확연히 보여준다. 기후 난민은 해수면 상승, 가뭄, 홍수, 폭염 등 기후변화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터전을 떠난 사람들로,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에서 발생한다. 국제 NGO 자국내난민감시센터(IDMC)의 보고서 ‘GRID 2023’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기후 난민은 약 3260만 명으로 파키스탄, 필리핀, 중국 등에서 많이 발생했다. 즉,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은 대체로 개발도상국인데 에어컨이나 방파제 등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투자가 어려워 더욱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편,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온대 지역과 추운 지역에 분포한다. ‘기후 책(The Climate Book)’에서 솔로몬 시앙(Solomon Hsiang)은 온대 지역의 경우 온난화로 인한 삶의 질 변화가 거의 없으며 추운 지역은 오히려 겨울철 호흡기 질환이 감소하는 등의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이는 선진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오존층 파괴보다 소극적이라는 평가에 대한 함의를 제공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은 세계 각국이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이 끊겼을 때 취약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는 한편,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지원 속에 전 세계 연구진 및 학계-산업계 간 협력 결과,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백신이 개발되면서 다시 한번 적극적인 국제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2023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 28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국을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으로 출범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이행과 효과를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허윤지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 2021년 한국경제학술상 수상
허윤지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 2021년 한국경제학술상 수상

저탄소 제품 구입하는 소비자도 기후변화 해결에 기여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응하는 주체가 국제 협력 같은 거대한 체계여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 개개인이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녀 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는 ‘실용적인 유토피아(Practical Uto-pi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는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 기후 위기, 사회 불평등 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하여 전 세계 사람과 가상 커뮤니티에서 토의하였다. 다양한 주제, 예를 들면 어떤 집에서 살지, 무슨 재료로 집을 지을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할지 등에 대하여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방안을 고민하였다. 그 결과 기후 위기는 다차원적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여 함께할 때 성공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는 이러한 결과는 우리 각자가 기후변화 해결의 주체임을 일깨워준다.

에너지 절약,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소비자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같은 제품을 소비하더라도 전기차나 고효율 가전 기기 같은 저탄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기업들은 이렇게 발생하는 수요에 반응한다. 수요가 많을수록 기업들은 더 많이 투자할 것이다. 더 많이 투자할수록 대규모 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된다면 저탄소 제품 가격이 하락하여 더 많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 것이다. 소비자의 관심이 없다면, 좋은 기술과 제품도 결국 실험실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유토피아는 그냥 찾아오지 않는다. 디스토피아는 피해야 할 것이다. 실용적인 유토피아는 우리 모두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기후 피로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후변화가 진부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한 걸음이 기후변화 해결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