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는 2022년 12월 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기존 투자액의 세 배가 넘는 400억달러(약 53조2240억원)를 미국에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 공장 두 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같은 해 8월 미국이 자국에 반도체 설비를 건립하는 기업에 지원금과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①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이 발효되면서 TSMC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낸 모양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TSMC는 두 공장의 준공을 미루고 있다.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이 충분하지 않고, 숙련된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경제 및 반도체 전문가인 필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TSMC가 피닉스에서 새 공장을 건립하는 데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칩스법을 계기로 TSMC가 보조금 확보에 더 신경을 쓰면서 자칫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고, 대만의 경제와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신 필자들은 "대만의 안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라며 미국이 대만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결과적으로 미국에도 이로울 것이라고 조언한다.
2022년 12월 6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웨이저자(왼쪽) TSMC 최고경영자(CEO), 류더인 TSMC 회장이 함께 걷고 있다. /로이터뉴스1
2022년 12월 6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웨이저자(왼쪽) TSMC 최고경영자(CEO), 류더인 TSMC 회장이 함께 걷고 있다. /로이터뉴스1

첨단 반도체 제조업이 집중된 대만을 중국이 봉쇄하거나 침공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공급망이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칩스법은 이러한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520억달러(약 69조1912억원) 규모의 보조금으로 반도체 제조 기업들의 미국 이전을 촉진,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본다. 심지어 대만의 가장 중요한 반도체 산업을 약화시켜 대만의 안보를 더욱 위협할 수 있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에 분포한 특화된 기업들에 의해 지배된다. 대만 TSMC는 주로 하이엔드 반도체를 중심으로 위탁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AMD, 엔비디아, 퀄컴 등 반도체를 설계하는 미국 기업들이 있고,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도쿄 일렉트로닉 같은 반도체 장비 기업, 영국의 ARM처럼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제작 업체도 있다. 이러한 ‘전문화(specialization)’ 는 두 가지 중요한 이점을 제공한다. 첫째, 글로벌 공급망의 각 부분이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하고 개선할 수 있으며, 이는 공급망의 다른 부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공급망의 모든 부분에서 글로벌 역량이 증가해 업계가 수요 충격에 더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다만 전문화는 공급 충격에 취약하다. 이 문제는 대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공급망의 모든 부분이 잠재적인병목 지점이 될 수 있다. 

창 타이 셰이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전 세계은행 방문학자
창 타이 셰이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전 세계은행 방문학자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TSMC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현재 TSMC는 이들 국가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했거나 건설하려고 한다. 그런데 미국 피닉스에 TSMC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가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다. TSMC가 워싱턴주 카마스에서 공장을 운영해 온 지난 25년을 돌이켜 볼 때 피닉스 공장의 전망엔 의구심이 든다. 당초 TSMC는 워싱턴주의 공장이 미국 시장의 전진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경쟁력을 유지하고 필요한 인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동일한 교육과 동일한 장비로 사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생산 비용은 여전히 대만보다 50% 더 높다. 그 결과, TSMC는 기존 공장을 확장하지 않기로 했다. 

진짜 문제는 미국 근로자들이 반도체 설계에 숙련돼 있지만,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이나 의욕을 가진 근로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제조 분야에선 전문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작업자는 꼼꼼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일관성, 완벽성, 적시 생산에 전념해야 한다. 또한 고도로 발전하거나 맞춤화된 장비의 작동 원리와 현장의 데이터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갖춘 미국 근로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TSMC는 피닉스 공장을 건립하는 데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번 린 대만 국립칭화대  반도체연구대 학장전 TSMC 부사장
번 린 대만 국립칭화대 반도체연구대 학장
전 TSMC 부사장

따라서 반도체 제조를 미국으로 이전해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2022년 ② TSMC의 설립자 장중머우(張忠謀)가 경고한 대로 “비용이 많이 드는 허무맹랑한 행동”이 될 것이다. 칩스법에 포함된 520억달러가 많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피닉스에서 자생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기엔 충분하지 않다.

산업 정책은 올바른 상황에서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TSMC가 그 증거다. 대만의 산업 기획자들은 제조업에 대한 기존 강점을 바탕으로 한 틈새시장을 분명하게 선택했다. 당시 대만이 최고의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을 모방하려고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갖춘 대만 근로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산업 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많은 결과를 초래한다. 무료 자금이 제공되면 TSMC는 혁신에 끊임없이 집중하던 회사에서 보조금 확보에 더 신경을 쓰는 회사로 변할 위험이 있다. 또 피닉스 공장 건설 프로젝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경영진은 다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이 너무 커서 작년 12월 ③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이 올해 사임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칩스법은 세 가지 큰 위험을 내포한다. 우선, TSMC가 혁신에 대한 집중력을 잃게 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고객과 (부품 및 장비) 공급 업체(대부분 미국 기업)가 될 것이다. TSMC가 만든 반도체로 구동되는 광범위한 인공지능(AI) 혁명도 멈출 것이다. 게다가 TSMC가 대만 내 생산능력에 대한 투자를 줄일 경우 수요 충격에 대한 전체 산업의 탄력성이 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TSMC는 다른 기업이 첨단 반도체 제조의 선두 주자로 부상할 정도로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친타이 신 대만 국립칭화대 교수전 대만 공업기술연구원 원장
친타이 신 대만 국립칭화대 교수
전 대만 공업기술연구원 원장

대만에서는 이미 칩스법을 미국이 대만의 기술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대만 이 사업하기에 위험한 곳이라거나 중국이 침공할 경우 미국이 TSMC 공장을 폭격하고 경영진을 미국으로 공수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만인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의 경제와 안보가 약화된다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피해는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그리고 더 비싼 비용)로 인한 이익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대만의 안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다. 의도는 좋지만, 칩스법은 잘못 설계됐다. 미국에서 지속 가능한 반도체 제조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보다는 TSMC와 궁극적으로 대만 경제에 장기적인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 안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대만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할 것이다. 대만을 방어하고 일본과 같은 국가(TSMC의 비즈니스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작은 국가)에서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그러한 전략이 될 수 있다.

Tip

2022년 8월 발효된 미국의 반도체 생태계 육성법안.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보조금 390억달러(약 51조8934억원) 등 반도체 산업에 직접 지원하는 금액만 총 52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에 반도체 시설을 투자하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담겨 있다.

영문 이름이 모리스 창으로, TSMC를 창업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로 키워낸 대만의 ‘반도체 대부’. 1931년생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55년 미국 실바니아전자에 입사해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25년간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5년 대만 정부 산하의 공업기술연구원(ITRI) 책임자로 영입돼 대만에 귀국한 뒤, 1987년 TSMC를 설립했다. 이후 TSMC에서 30년간 회장으로 재직하다가 2018년 공식 퇴진했다.

마크 리우로 불리는 류더인 회장은 미국 UC 버클리 전기학 박사, 인텔과 AT&T를 거쳐 1993년 TSMC에 합류했다. 2018년부터 회장직을 맡아오다 2023년 12월 퇴진 계획을 발표했다. “수십 년간의 반도체 경험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생의 다음 장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류 회장은 오는 6월 퇴진하고 웨이저자(魏哲家) 최고경영자(CEO) 겸 부회장이 신임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