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 브릭스(BRICS)로 대표되는 거대 개도국들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경제성장률로 소위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간격을 좁히고 있다. 중국을 필두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2010년에 이미 세계 2위 GDP(국내총생산) 규모로 성장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도 2022년 식민지 모국이었던 영국을 넘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됐으며, 2027년쯤에는 GDP 규모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주요 7개국(G7)을 대신해 주요 20개국(G20)이 새롭게 정상회의로 발돋움한 것도 이러한 세계경제 지형의 변화에 기인한다. 

향후 전망도 이러한 흐름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 GDP 규모로 세계 8위권에 모두 들어 있던 G7 국가가 2075년에는 미국(3위), 독일(9위), 영국(10위) 세 나라만이 10위권에 들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은 12위, 프랑스는 15위에 그칠 것이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에 이어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브라질이 순위에 올라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2030년에 G7 국가 중에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네 나라만이 10위권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본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도전과 한계 있어

세계화 이후 다국적기업들이 세계 경영을 해 나가면서 거대 개도국 해외투자는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2022년 490억달러(약 64조5000억원)에 달하는 그린필드 투자(해외 진출 기업이 투자 대상국에 생산 시설, 법인을 직접 설립해 투자하는 방식)를 유치했던 인도는 한때 중국으로 향했던 다국적기업들의 최대 투자처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다른 거대 개도국으로 확산할 것이다. 개도국 정부들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과 제도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그린필드 투자 유치를 통해 개도국은 기술 전수,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거대 개도국은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의 투자지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세계화로 국경 간 교역이 활성화됐지만, 경제 안보 시대에 많은 제조업은 큰 수요가 있는 시장으로 향한다. 공급망 불안에 대비하고, 교역 마찰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 인구만 많고 구매력이 약했던 거대 개도국들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중국같이 큰 내수 시장은 토착 기업의 성장을 촉진해, 경쟁이 치열한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은 토착 기업은 단숨에 국제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한다. 국내 시장 크기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글로벌 사우스를 연구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방향은 의심할 바 없이 맞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먼저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이 그리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국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이를 가로막는 요인도 많이 있다. 가장 중요한 제한 요인은 기술혁명이다.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이라는 대전환을 맞아 현재 대다수 신산업은 미국과 그 친구들에 대항하는 중국의 대립과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통적 제조업이 글로벌 사우스를 부흥시킨다고 하더라도 기존 제조업의 디지털화와 그린화를 요구하는 작금의 상황은 혁신 기술의 전파 지체로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을 더디게 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웨스트-이스트로 재편되는 국제 질서

보다 근본적으로 전 세계를 글로벌 노스-사우스로 이분하는 것 자체가 변화하는 작금의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데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를 명명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글로벌 사우스를 지리적으로 볼 때 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일본, 한국,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다수 아시아와 호주 및 뉴질랜드를 제외한 오세아니아 국가를 지칭했다. 이 국가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낮은 소득과 빈곤, 높은 인구 증가율, 불충분한 주거 환경, 제한된 교육 기회, 불충분한 의료 체계, 빈약한 사회간접자본을 꼽는다. 이 기준에 따르면, 단시일 내 빈곤에서 벗어났고, 잘 갖춘 인프라와 주거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다른 개도국에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는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라고 볼 수 없다. 현재의 성장 속도가 유지된다면 인도도 향후 20~30년이 지나면 글로벌 사우스를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러시아의 경우에는 경제구조나 소득 수준에서 글로벌 노스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전 세계를 남과 북으로 단순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인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G7과 여타 유럽 국가, 호주, 뉴질랜드, 한국 등의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구분이 미·중 경쟁 속 세계 질서의 변화를 해석하는 데 더 유용할 것이다. 즉, 작금의 상황은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의 대립이므로, 글로벌 사우스는 글로벌 웨스트 및 이스트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글로벌 사우스의 대변자 자리를 놓고 중국과 인도가 경쟁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글로벌 사우스는 새롭게 해석해야 하며, 전쟁을 통해 서방과 대립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에 정성을 쏟고 있는 러시아 대외 정책의 본질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한국, 장기적 시야 갖고 대응해야

우리의 대외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대응은 긴 안목을 갖고 차근차근히 해 나가되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첫째, 섣불리 글로벌 노스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계속 위축되고 있는 G7 입장에서 볼 때 G7의 확대는 필수 불가결하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더 강화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웨스트에 정체성을 두고 글로벌 이스트와 사우스를 구분해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거대 개도국에 대한 우리 정책이 보다 정밀해져야 함을 말한다. 거대 개도국과 보다 촘촘하고 다면적인 협력 관계를 확대·발전시키고 단기 충격에 따라 성급하게 정책 기조를 변경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셋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더 확대해야 한다. 인도· 태평양 지역 선진국과 협력은 안정적인 다자 틀 위에서 구축되어야 하며, 개도국과 협력은 개발 협력을 넘어서야 한다. 넷째, 대전환이 가져오는 부작용과 충격을 줄이기 위해기술 개발, 인적 자본, 국제 협력, 통상 정책을 모두 고려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외 정책은 정밀하고 다양하며 선별적이어야 하며, 국내 정책과 긴밀히 조응하고,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아래 전략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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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글로벌 노스(Global North)

글로벌 사우스는 1969년 정치 운동가 카를 오글스비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지는데, 대체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제삼세계 개발도상국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1980년대까지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제일세계, 소련 제이세계, 개도국 제삼세계로 불렸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제삼세계란 말 대신에 글로벌 사우스란 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북반구에 쏠려 있는 선진국들을 가리키는 글로벌 노스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미·중 갈등 속 양 진영에 들어가지 않는 개도국을 가리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