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주요국 기술평가에서 한국이 확연히 중국에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봤을 때 유럽연합(EU)이 94.7%, 일본이 86.4%, 중국이 82.6%, 한국이 81.5%순으로 평가됐다. 2020년 한국과 중국은 양국 모두 미국보다 3.3년 뒤처진 것으로 분석돼 같았지만, 이번 평가에서는 중국(3년)이 한국(3.2년)보다 미국과의 격차를 더 줄였다. 

문제는 미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략기술 부문에서 한국은 이차전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소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국에 비해 떨어지고 있으며, 특히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인공지능(AI), 차세대 통신, 양자, 우주항공해양 등 분야에서는 중국에 비해 현격히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중국의 약진은 예견된 결과

중국의 약진은 중국이 과거의 모방에서 벗어나 기술혁신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고 하겠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미래가 기술혁신에 달려 있다는 인식하에 정부 주도로 정부 연구기관, 학계, 대기업, 중소기업, 심지어 국방 관련 기관까지 모두 연계해 중점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미·중 간 기술 전쟁 이후 중국은 현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간주하면서 기술 발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요즘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AI 분야는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중국이 꼽히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이미 지난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 AI가 향후 국제 경쟁의 각축장이자 경제발전의 새로운 엔진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AI 발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정부가 앞장서서 인프라 구축, 발전 계획 수립, 연도별 전략 목표 수립 등을 통해 제조, 물류, 상업, 금융, 농업 등 각 산업에서의 활용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중국의 산업 정책 눈여겨봐야

위의 결과를 보면 중국이 미국의 기술이전 금지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중국 정부의 일관된 산업 정책과 소비자의 빠른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개방 초기 중국 정부는 대규모의 보호 장벽을 만들었다. 중국이 1990년대에 구축했던 소위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고 하는 보호 장벽을 쌓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화벽을 쌓은 이유는 중국이 정보에 대한 통제 능력을 상실할 것이 우려됐기 때문인데, 이는 미국의 많은 인터넷 플랫폼 기업의 중국 진출을 제약해 중국의 스타트업들이 숨 쉬고 발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기대 밖의 성과를 거두게 했다. 초기에는 구글, 페이스북(현 메타), 트위터 등이 진출 초기 수년간 활동을 하다 떠났으나, 후에 진출한 아마존이나 에어비앤비 등은 중국 시장에서 바로 퇴출됐다. 

반면에 중국의 기업가나 과학자들은 방화벽을 회피해 미국 등 기술 선진국들과 교류를 지속함으로써 선진 기술과 혁신 시스템이 중국 내 생태계로 유입되는 것을 촉진시켰다. 이런 상황은 최근 들어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 교류를 불허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고, 앞으로 중국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어 더욱 많은 자원과 인력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일단 특정 산업이나 분야가 국가 중점 기술로 선정되면 각 부문이 모든 힘을 쏟아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협조한다. 예컨대 앞에서 언급한 AI 발전을 위해 교통 당국은 자동운전 시범 프로그램을 만들고, 각 지역 정부는 AI 가속기를, 대학은 머신러닝을, 경찰은 첨단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기술 개발 과정에서 일부 프로젝트가 실패해 경제적 비효율이 있을지언정 기술 과제 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은 심지어 실패한 프로젝트마저 전체적인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보면서 프로젝트 실패를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한편 혁신적 기업가들이 생산해 내는 첨단 기술이나 상품과 그에 따른 급속한 변화를 신속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들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대부분 국가가 GDP(국내총생산)가 10배 이내로 증가한 데 비해 중국은 30배가 넘게 증가하는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중국의 소비자들은 생존을 위해 변화에 적응해 온 것이다. 그 한 예가 중국에서는 거지들조차 현금을 받지 않고 QR 코드를 스캔해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로 돈을 받는 것이다. 이는 왜 중국이 하루에 12억 번의 위챗페이 거래가 발생하는 데 반해 애플페이는 한 달에 10억 번의 거래가 발생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중국의 기술 도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중국의 기술 우위는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미 한중 무역수지는 작년에 적자로 돌아섰다. 일시적인 요인도 있지만 주로는 중국의 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 제품의 경쟁우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가 감소한 반면 대중 수입은 8% 감소에 그쳐 180억달러(약 23조7000억원)의 대중 무역 적자를 시현했다. 

기술은 국가 간 경쟁력을 나타내는 척도다. 중국의 기술평가가 우리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중국에 수출할 가능성보다는 수입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구조가 고착화됨을 의미하며, 더 넓게는글로벌 제조 강국인 한국과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피나는 시장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요인 없이 제품의 경쟁력만 가지고 볼 때 우리가 세계 수출시장에서 중국에 우리의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 기술에서의 열위는 우리 열세가 장기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거의 계획경제 시스템처럼 움직이는 중국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미래지향적, 거시적안목을 가지고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 설정 등을 좀 더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 기술 분야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는 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을 꾸준히 확대하고, 지출 대비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R&D 비용의 효율적 사용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막대한 예산과 40%가 넘는 이공계 졸업생 등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우리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절실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도 중요하다 하겠다. 또한 정부 연구기관, 대학, 기업 간 R&D 협력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기술협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