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청약제도가 아직도 이 시대에 유지될 필요성이 있을까. 부동산 정책의 주요 수단 중 하나였고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앞당겨 준다는 명분 때문에 5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왔지만, 이제는 그 역사적 소명을 뒤로하고 전면 폐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듯하다.
청약 점수의 가치 하락
오랫동안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청약 통장을 유지해 온 많은 무주택자 입장에서, 청약 당첨은 언제나 로또처럼 낮은 확률만을 보여주는 신기루 같은 좁은 문이었다. 어느덧 나이가 50세를 넘어가고 오랜 기간 무주택자였으며 부모까지 모시고 있어 각종 가점을 받을 조건을 갖추었지만, 해마다 청약 당첨 커트라인은 점점 높아진다고 많이들 생각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청약 점수 1점의 가치가 해마다 하락하는, 즉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나 혼자 무주택자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며, 다른 모든 경쟁자도 나와 똑같은 속도로 청약 가점을 쌓고 있다면, 내가 해마다 청약 점수를 쌓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청약에 당첨되는 커트라인이 매년 사상 최고라는 뉴스는 내 나이가 매년 사상 최고를 갱신한다는 뻔한 스토리와 다를 게 없다. 사실 많은 청약 대기자는 본인이 들고 있는 청약 통장의 가치가 이러한 청약 점수 인플레이션에 따라 사실상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반시장적인 추첨제
그렇다면 가점제와 함께 한 축을 이루는 청약 추첨제는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왜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인위적인 공급을 계속해야 하는지, 원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했을 때, 공평하게분양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오던 방식이다. 사실 2007년 도입된 가점제와 달리, 뺑뺑이로 당첨 기회가 제한된 공급을 나눠 가지는 게 청약제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주택 공급률 자체가 충분히 올라온 데다 과거 매우 빠른 속도로 주택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투기를 억제하고 무주택자의 수요를 확보하고자 하는 청약제도의 필요성 자체가 없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설령 서울 및 일부 대도시같이 지속적인 초과수요가 발생하는 입지일지라도 주변 단지와 차액을 만들어내 투기 조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주택 공급을 하기 위해 인위적이고도 복잡한 청약제도라는 방식을 운용해야 할지, 허탈감이 온다. 좋은 입지로 인해 수요가 몰려 사치재라 할 수 있는 일부 주택단지를 왜 공급자가 제값 받고 팔 수 있게 그냥 두면 안 되는가. 어차피 신규 공급 주택의 억눌러진 가격은 그 즉시 시장가격으로 튀어 올라 청약 당첨된 수분양자에게 상당한 프리미엄을 줄 뿐, 주택 시장가격 안정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려울뿐더러, 전매를 통한 투기 욕구만 자극하고 있진 않은가.
소외 계층의 건전한 자산 형성 의욕 가로막는 청약제도
청년을 위한 청약 가점제란 존재할 수 없다. 소위 말해 당첨 확률에 있어서 짬밥이 중요한 가점제와 달리 추첨제는 청년 계층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식이라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청년이 평생 청약 추첨제에 기대어 기약도 없는 당첨을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청년 계층 대부분이 청약 추첨제에 기대어 세월을 보내는 동안, 내 집 마련의 꿈과 자산 증식의 기회가 얼마나 오랜 기간 지연되는지 생각해보면, 사실 이는 청년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차라리 안정적으로 큰 규모의 모기지(motgage·장기주택담보대출) 기회를 조기에 제공해 장기간 인플레이션 및 주변 인프라 형성을 통한 자산 형성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미래에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로또 당첨을 오매불망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게 해선 안 된다는 점에서, 가점제뿐 아니라 추첨제 역시 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분양권 전매는 과연 사회악인가
또 분양권 전매라고 하면 매우 부정적인 투기 수요로 보아 온 기존 시각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분양권 투전판으로 만드는 것은 시장가격에서 정책적으로 억눌려 온 분양가를 만들어 낸 청약제도에 있는 것이지, 이익을 추구하는 전매 행위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에서 거래를 통한 이익 추구는 당연한 것이다. 일관되지 않게 전매를 조였다 풀었다 할 게 아니라 청약제도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사실 오랫동안 인내하여 수분양 자격이 되어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던 분양권을 자신의 판단으로 현재 시점에 이익 실현하는 게 부정적인가. 투기를 막는다는 미명하에 이러한 거래 자체를 막는 것도 반시장적이다.
시공비 상승으로 청약제도 존립 의의 사라져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통화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해 일시적일 것이라 여겨왔던 주요국의 재정지출 및 통화량 증대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정책만으로는 인플레이션 속도만 제어될 뿐, 거시경제학에서의 화폐수량설에 입각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원자재 및 임금 등 가격 수준은 그칠 줄 모르고 올라갈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및 노임 상승으로 주택 시공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미 착공된 현장마저도 공사 중단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주택 가격 인플레이션이 있어 왔지만, 기본적으로 실수요에 기반하여 발생한 전반적인 주택 시장 활황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규 주택과 구주택 시장 사이에 뚜렷한 간극이 벌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공비가 급등한 신규 주택 분양가는 높을 수밖에 없는 반면, 각종 금융 규제와 어느 정도 차오른 주택 보급률로 인해 구주택 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주택 청약제도는 주변 (구)주택 가격이 상승하여, 과거 분양 당시에 낮게 세팅된 신규 주택 분양가와 차액을 노리는 수요를 다루기 위한 도구다. 근래엔 이러한 전제가 뒤집히게 된 것이다. 시공 가격(분양 가격)이 구주택 가격을 크게 앞서면서 청약제도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외에도 청약제도의 의의는 많았을 것이다. 예컨대 청약 통장을 유지토록 함으로써 실수요자로부터 강제 저축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도 자본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했을 쌍팔년도에나 유효했던 방식이지, 현시대의 은행이나 정부도 고작 청약 통장 팔아서 저축률 높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상가, 오피스텔처럼 통장 없이도 주택을 청약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쯤에서 왜 우리가 이런 복잡한 제도를 관성적으로 들고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자문해 보자. 여러 제도 중에서도 정말로 보기 드물게 누더기도 이런 누더기가 없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이러한 누더기 청약제도는 지나치게 복잡해서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래왔듯 정권에 따라 세부 내용이라도 개편되면 향후 내 집 마련을 위한 예측 가능성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