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밍(lemming)’은 국내에서는 ‘레밍쥐’ 또는 ‘나그네쥐’로 알려져 있는 설치류다. 크기는 작은 편으로 몸길이는 약 7~15㎝이며, 몸무게는 약 30~110g이고,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짧은 꼬리를 가졌다.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나 ‘노르웨이레밍’이 대표 종이라고 한다. 집단을 이루고 살며, 집단행동을 한다. 임신 기간은 약 20일로, 한 배에 2∼8마리를 낳는다. 이 설치류는 '집단 자살’로 유명세를 탔는데, 특히 1958년 상영된 디즈니 영화 '하얀 광야 (White Wilderness)’에서 수십 마리의 레밍이 절벽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쥐는 주기적으로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집단 자살로 이를 ‘자동 조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개체 수 폭증으로 서식 밀도가 과도하게 올라가 먹이 구하기 등 생존이 어려워지면, 이 종은 사방으로 서식지를 찾아 집단적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시력이 나쁜 쥐들은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는 작은 강으로 착각해서, 건너편 육지로 가려고 뛰어들었다가 헤엄쳐 가도 가도 육지가 안 나오니 탈진해 죽는 현상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집단행동 특성 때문인지 국내에서 설화 사건이 나곤 했다. 2017년 여름에 한 지방의회 의원이 해당 지역의 물난리에도 외유성 ‘해외 연수’를 떠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중 한 의원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국민이 꼭 집단행동을 하는 레밍 같다”고 발언했다가, 뒤늦은 사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사퇴하게 됐다. 1980년쯤에는 주한 미군 사령관이던 위컴이 당시 쿠데타로 실세로 떠오른 신군부에 앞다투어 줄을 대려는 사람들을 향해 ‘레밍 떼’ 같다고 말했다가 큰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2│그리스신화에서 ‘신 중의 신’인 제우스는 거인 티탄 족의 왕이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와 그의 누이 레아의 사이에 막내로 태어난 아들이다. 이들 부부 사이에서 헤스티아, 헤라, 데메테르 등의 누이와 하데스, 포세이돈 등의 형제도 태어났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녀들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이를 막으려고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모두 삼켜버렸다.
출산 때마다 아이들을 빼앗긴 레아는 막내 제우스 대신에 남편에게 새로 낳은 아기라며 돌덩이를 줘 삼키게 했고, 제우스를 몰래 키웠다. 장성한 제우스는 지혜의 여신 메티스가 만들어 준 설사약을 아버지에게 먹여 형제, 누이들을 모두 토하게 했고, 그들과 합세해 티탄 족과 전쟁에 이긴 후 올림퍼스 신들의 왕이 된다.
#3│매년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교수신문은 지난해 사자성어로 “이익을 보기 위해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 를 선정했다. 이 말의 출처는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등장하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의 ‘견리사의(見利思義)’ 의 반대 개념으로 파생됐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이 신문은 관련해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운 정치보다는 눈앞의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편에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이 입안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한 교수의 주장도 소개했다.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2023년 4분기)는 합계 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이 0.7 밑으로 내려가면서, 크로노스(시간)가 자기 아이를 삼키듯 한국인의 ‘인구 소멸’이 가시화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인을 레밍에 빗댔다가 큰 설화를 겪은 전례가 있어서 그런지, 사석에서만 ‘자발적인 인구 감소’에 나서는 모습이 꼭 레밍 같다고 평하는 학자들도 봤다. 더 나아가 여성이 개인적인 이익을 앞세워 출산을 꺼리다 보니 국가 전체의 생존이 위태롭게 됐다며, 이것이야말로 ‘견리망의’의 모습이라고 개탄하는 ‘우국지사’도 보인다. 그런데 여성이 출산을 거부하거나 꺼리는 양상은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를 보면 이미 1980년대 중반에 1.57로 떨어진 합계 출산율은 1990년대에는 1.5 안팎을 꾸준히 유지했으나 2000년대 들어 1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8년부터는 1를 밑돌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여성의 출산 기피 이유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된다. 진보 정권이 처음 집권하면서 국민의 의식도 진보 성향으로 흐르며 ‘남성 주도의 가정 꾸리기’ 등 ‘구체제’의 가치가 부정되기 시작했고, 여기에 여성만 출산의 부담을 지는 것이 부당하다는 소위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가세하며 그렇게 됐다는 조금은 과한 주장도 있다. 물론 집값 폭등, 일자리 불안, 보육 시설 부족 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모든 문제의 근본은 아무래도 집값과 사교육비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집값 상승은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평균 결혼연령 상승이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발하며, 이에 따라 여성의 출산 기피 등의 사이클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집값 상승 시기에는 출산율이 하락하며, 안정(하락) 시기에는 출산율이 올라가는 모습이 발견된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진보 정권 시기에 경제정책을 맡았던 ‘아마추어’ 경제학자들이 시행한 저금리와 통화팽창 정책은 어김없이 집값 상승을 초래했고 출산율도 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발표된 국토연구원의 보고서는 이를 뒷받침한다. 주택 가격 상승 충격이 발생하면 합계 출산율 하락은 최장 7년간 지속하며 1%의 가격 상승에 향후 7년간 합계 출산율이 약 0.014명 감소한다는 것이다. 설사 아이를 낳았다 하더라도 더 이상 양가 부모에게 양육을 부탁할 수 없는 문화적 변화와 보육 시설 부족 등도 가세하는 모습이다. 물론여기에 잘못된 교육정책 등으로 사교육비가 기혼 커플의 생활비 상승을 유발해 이와 같은 출산 기피를 촉진한 면도 있다.
결국 2006년 이후 300조~400조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별 효과가 없는 이유는 대부분이 애먼 곳에 쓰였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이런 재원을 갖고 가임 부부나 결혼을 앞둔 커플의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나아가 태어난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저출산 관련 재정 투입의 실효성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 자녀를 낳은 가구에 최우선적으로 중대형 영구 임대주택을 배정해 주고, 일본처럼 세 자녀를 낳으면 세 자녀 모두의 대학 등록금을 국가가 내 주자는 것이다. 또한 100만 쌍의 신혼부부 중 60% 정도가 집이 없는 것을 감안해, 결혼 후 5년간은 공공 임대주택 거주가 가능하도록 하면 결혼연령이 낮아지면서 출산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재원 확보가 관건이다. 작년 한 해 공급된 공공 임대주택 수가 10만 가구, 예산이 16조원인 바, 이를 두 배 정도 늘리려면 그 만큼의 재원이 소요되는데, 기존의 가덕도 공항 건설 계획을 주변 토지의 간척과 병행한다면, 얻어진 토지 매각 수익은 공항 건설 비용을 제하고도 이에 필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세종연구원)은 귀 기울일 만하다. 또한 세 자녀 교육 지원 정책은 지방 재정 교부금의 상당 부분을 현재 학령인구 감소로 수요가 갈수록 적어지는 초·중등교육에서 대학 교육으로 돌리면 충당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여성이 아이를 낳는 일이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 주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의 탈출구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견리망의’를 ‘견리성의(見利成義·이익을 좇았더니 의로움이 이루어진다)’로 바꿔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