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와 기업 실적 개선에 대한 낙관론이 커지면서 주요 자산시장이 사상 최고치를기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S&P500,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 일본의 닛케이 225, 독일의 닥스, 프랑스의 CAC40 지수, 금 가격 등은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유발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희망 속에 최근 몇 주 동안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가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과 경제성장에 힘입어 미국과 주요 경제가 올해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기업 실적도 랠리에 힘을 보탰는데, 인공지능(AI) 칩 제조 업체인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 80% 가까이 상승했다. AI라는 새로운 혁신 기술에 대한 베팅이 이번 랠리의 주요 동인이다.
이 와중에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경신하고 있다는 뉴스도 연일 화제다. 3월 14일(이하 현지시각) 기준 비트코인 가격이 7만3000달러(약 9600만원) 수준으로, 연초 대비 65% 상승했다. 2009년 비트코인의 등장을 첫 번째 사이클, 2015년 이더리움이 출시된 이후 ICO(Initial Coin Offering·코인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 붐이 시작되었던 2017년이 두 번째 사이클,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제로금리와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인한 세 번째 사이클에 이어, 2024년 금리 인하 기대감으로 출발한 네 번째 사이클이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일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비트코인이 초기 결제 목적을 주창하며 등장했지만, 비트코인은 거래 확인이 너무 번거롭고 느리기 때문에 광범위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연준의 양적 완화를 비판하며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된 화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연준의 양적 완화에 정작 가장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건 비트코인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15년 동안 비트코인 성격과 용도, 제도권 금융에서 받아들이는 입장 모두 크게 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된 결제 수단이 아니라 투자자산으로 자리 잡았다면, 자산으로서 특징은 무엇인가. 비트코인은 궁극적으로 2100만 개의 토큰만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이나 달러 같은 법정화폐의 가치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선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digital gold)’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자산으로서 특징을 보려면, 속성과 가격 특징을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비트코인의 속성은 일견 금과 유사하다. 주식과 채권 뒤에는 회사가 있다. 따라서 주식을 사면 회사의 이윤에 따라 배당을 받고, 채권을 사면 이자를 받는다. 그러나 금과 비트코인은 아무런 현금 흐름을 주지 않는다. 단지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트코인은 2021년과 2022년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간에 가격이 폭락하면서 안전 자산으로서 성격을 증명하지 못했다. 비트코인 가격의 움직임은 오히려 기술주와 유사한 위험 자산에 가깝다. 또한 기술주와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동시에 블록체인 생태계 자체의 전망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2021년 중반 기술주가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에 대해 부정적인 트윗을 올린 후 비트코인은 급락했다. 2022년 말에도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했는데, 이는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파산 때문이었다. 물론 비트코인 거래량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의미한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 2020년 이후이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을 충분히 분석할 데이터가 부족하다. 만약 다음 금융시장 하락기에 비트코인이 가격 방어 기능을 보여주면 디지털 금이라는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올해 비트코인이 폭등한 이유는
올해 비트코인이 상승한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경제지표 개선으로 금리 인하에 대한 예측 때문이다. 둘째, 올해 비트코인 반감기 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한다. 셋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인해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이 비트코인 시장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에만 특수하게 적용되는 반감기와 비트코인 ETF 승인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비트코인의 최대 공급량은 2100만 토큰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21만 블록마다 반감기가 발생한다. 반감기는 거래를 검증하고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는 채굴자에게 보상으로 지급되는 비트코인 개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이벤트를 말한다. 블록 하나를 생성하는 데 대략 10분이 걸리므로 10분×21만 블록=210만 분=3만5000시간=1458일=3.99543년, 즉 4년마다 반감기가 도래했다. 2012년(채굴 보상이 1블록당 25비트코인), 2016년(12.5비트코인) 그리고 2020년(6.25비트코인)에 반감기가 왔고, 2024년 4월(3.125비트코인) 그리고 2028년(1.5625 비트코인)에 다음 반감기를 예상하고 있다.
비트코인 반감기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성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부족하여 일정한 패턴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2020년 반감기까지의 비트코인 투자는 마니아 커뮤니티에서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심리적, 바이럴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반감기에 비트코인 가격이 오른다는 바이럴 자체가 자기실현적 기대로 작용하고 있는 중이다.
1월 10일 미국의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을 승인한 이후 현재까지 약 500억달러(약 65조8500억원)가 유입됐다. 65조원이면 매우 큰 액수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ETF 시장이 7조달러(약 9219조원)이기 때문에 아직 1%가 되지 못하는 규모다. 비트코인은 위험 자산의 성격으로, 주식과 상관관계가 높다. 포트폴리오 최적화 이론에 따르면상관관계가 적당한 투자자산에 분산 투자함으로써 위험 대비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기관투자가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 편입 수요는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다만 반감기나 기관투자가의 분산 투자를 위한 비트코인 편입 수요가 비트코인의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이 전반적인 블록체인 생태계의 확장 가능성을 대표하는 상품이라고 본다면, 블록체인 생태계에서의 기술혁신과 이로 인한 블록체인 기술의 범용적 사용이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 비트코인 반감기를 올해 처음 들어봤다면, 투자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산은 언제 사느냐보다 언제 파느냐가 더 중요하고, 이것은 거시경제의 움직임과 금융시장, 해당 산업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