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Ed Con-way)는 신간 ‘물질의 세계’에서 중국의 반도체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심지어 대만을 침공해 TSMC를 강탈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래가 없어서다. 모래 주성분인 ‘석영’ 때문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스프루스 파인 광산 한곳에서만 생산되는 초고순도 석영 없이는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게 제조 공정 특성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작은 모래 한 알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이처럼 모래·소금·철·구리·석유· 리튬 등 대체 불가능한 물질의 여정을 추적하며 무엇으로 스마트폰에 전력을 공급하고, 집과 빌딩을 지으며, 의약품을 만드는지 확인한다. 그는 “이 여섯 가지 물질은 희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세상의 뼈대를 이루는 벽돌”이라며 “이 물질이 없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은 작동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광산부터 대만의 반도체 공장,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소금 호수를 누비며 집필한 그의 저서 ‘물질의 세계’가 3월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지난해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FT)’ ‘더 타임스’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신간이다. 다음은 저자 콘웨이와 이메일 인터뷰 일문일답.

에드 콘웨이 영국 스카이뉴스 경제전문기자
영국 옥스퍼드대 영어영문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에드 콘웨이 영국 스카이뉴스 경제전문기자
영국 옥스퍼드대 영어영문학 석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코르테스 광산을방문했을 때였다. 작은 귀금속 조각을 얻기 위해 지구를 엄청나게 파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나는 금 채굴이란 터널을 파서 반짝이는 광석층을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산을 폭파하고 암석을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주로 장식용이나 금전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금속을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문명을 지속하는 데 정말로 필요한 물질을 얻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이 이 책을 쓰기까지 내가 밟아온 흔적이다. 지금까지 연구해 온 것 중 가장 흥미로웠다.”

전 세계가 AI를 비롯해 첨단 기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지금. 되레 원초적 물질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는.

“만약 엔비디아 같은 회사에서 만든 아주 특별한 반도체가 없었다면 과연 AI가 존재했을까. 바이러스보다 작은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TSMC와 ASML 같은 회사의 엄청난 기술 덕분에 이러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땅에서 지저분한 암석 덩어리를 캐내어 실리콘 웨이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또 다른 수많은 회사가 없었다면 AI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AI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집중적으로 필요하다. AI 서버는 막대한 양의 전력뿐 아니라 냉각에 필요한 물같이 여러 자원을 소비한다. 밖에서 볼 때는 비물질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질세계 그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AI는 인류에게 훨씬 많은 이득을 주겠지만, 물질적인 측면에서 부담과 결과가 함께 따를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드 콘웨이의 신간 
'물질의 세계'. 인플루엔셜
에드 콘웨이의 신간
'물질의 세계'. 인플루엔셜

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 여섯 가지 물질에만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물질이 최종 목록은 아니다. 우리가 훨씬 더 엄청난 양으로 소비하는 다른 물질도 많다. 다만 내가 이 여섯 가지로 제한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책은 수천 쪽까지 분량이 늘어났을 것이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길다고 생각한다(국내 번역서는 584쪽이다). 이 여섯 가지 물질을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출발점 정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책에서 당신은 탈물질화한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존할 수 없다고 확신하진 않는다. 어쩌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요 메시지는 만약 이 물질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은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얻는 질소 비료가 없다면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을 것이다. 콘크리트가 없다면 우리는 도시화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철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일방향으로 혹은 쌍방향으로 의지하는 거의 모든 것이 땅에서 가져와 제품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거나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것들 말이다.”

그럼에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탈물질화한 세계를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자원이 한정된 세계에서 낭비를 줄이고 우리 주변의 물건을 더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자원을 왜 이렇게까지 낭비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이유로는 플라스틱부터 전자 기기까지 모든 물질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이 놀라운 과정 자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인지한다면, 모든 물질세계를 훨씬 더 존중하게 될 것이다.”

칠레의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 사진 셔터스톡
칠레의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 사진 셔터스톡

다행히 전 세계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 같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화석연료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의존도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현재 석유와 가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55%를 차지하고, 이 비율은 지난 수십 년간 놀랍도록 일정했다.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을 달성해도 우리는 여전히 이 연료들을 2050년까지 계속 사용할 거다.”

어째서인가.

“부분적인 이유로는 이 연료들은 여전히 그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 도전 과제 중 하나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금속이나 비료 같은 주요 물질들을 잘 생산해내는 효과적인 연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더 깨끗하되 에너지 밀도가 훨씬 낮은 다른 솔루션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마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TSMC부터 테슬라 공장까지 전 세계 산업 현장을 다니며 여섯 가지 물질을 추적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칠레의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가장 큰 구덩이라 협곡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광산에서 나오는 폐석이 너무 많아지면서 근처 마을을 뒤덮어버려 사람들이 마을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곳은 20세기 초 전기 시대 초기에 구리를 채굴하던 광산으로, 2024년에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광산 중 하나다. 이제 그들은 미래에 풍력 터빈과 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갈 구리를 추출하기 위해 지하 터널을 더 깊게 파고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이런 광산이 환경을 더럽힌다는 사실이다. 땅에 엄청나게 큰 구멍들을 남겨 칠레 정부는 미래에 더 많은 구멍을 떠안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는 가끔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아주 우울하게 생각하는 날도 있다. 기후변화나 에너지 전환 그리고 이 책에 언급된 이슈들이 우리 문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단한 해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현실이다. 독자들도 혼란을 느끼며 이 책을 끝내길 바란다. 선과 악의 싸움이나 영웅과 악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복잡하기도 하고 충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매혹적이기도 한 현실 세계에 관한 것이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