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더 강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높은 득표율(87.2%)로 5선 고지에 올라서는 것을 확정하면서 한 발언이다. 이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0년 이후 30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됐다. 이는 옛 소련 최장수(29년)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그는 앞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공세를 강화하고 서방 진영과 신냉전 구도를 고착화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3월 1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군중에게 연설하고 있다. 사진 AF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3월 1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군중에게 연설하고 있다. 사진 AFP

역사상 최고 득표율로 5연임 확정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3월 15일부터 17일(이하 현지시각)까지 진행된 러시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푸틴 대통령이 득표율 87.28%(개표율 100% 기준)를 기록하며 당선을 확정 지었다. 러시아 대선에서 80%대 득표율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당선이 확정된 후 모스크바 선거운동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난 푸틴 대통령은 “무엇보다 우리는 ‘특별군사작전(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틀 내에서의 과제를 해결하고 국방력과 군대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는 현재 빠른 속도로 수준 높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선 종료 이튿날인 18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콘서트’는 푸틴 대통령의 5선 자축 성격을 띠었다. 그는 “크림반도는 결코 러시아에서 분리된 적이 없었다. 새 영토를 거쳐 크림반도로 갈 수 있는 철도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그가 “이것이 우리가 함께 전진하는 방법”이라고 말하자 붉은광장에 많은 수천 명의 사람이 “러시아! 러시아!”를 외치며 화답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 진영에 대한 경고도 날렸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간 충돌 가능성에 대해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군사 동맹의 직접적인 충돌은 제3차 세계대전과 한 걸음 차이라는 걸 의미하는 만큼 누구도 이 시나리오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러시아 휴전 제안과 관련해서는 “1년 반에서 2년간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정말 두 국가 사이에 평화롭고 좋은 이웃 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평화 협상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TV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7월) 파리올림픽 기간 휴전할 것을 요청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자료=위키피디아
자료=위키피디아

푸틴 5선에 중국·북한·이란 우호국들 '환호'

푸틴의 5연임 성공에 우호국들은 환영하는 반응이다.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축전에서 “당신(푸틴)이 다시금 당선된 것은 당신에 대한 러시아 인민의 지지를 충분히 방증한다”며 “중국은 양국의 전략적 협력에 대한 지속적이고 심도 있는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일에 정상회담을 갖고 ‘무제한 협력 관계’를 천명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연임 성공 이후 첫 해외 순방 일정으로 오는 5월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보도했다. 가디언은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일원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에 도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전했다. 브릭스 회원국은 올해 11개국으로 6개국이 추가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축전에서 “당신의 정력적이고 올바른 인도 밑에 국제적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고 자주화된 다극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위업 수행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다방면 협력을 강조해 왔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고급 차량 아우루스를 선물했다.

미국의 제재 속에 러시아와 밀착해 온 이란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러시아는 이란에서 들여온 자폭 드론(무인기) 등을 우크라이나 침공전에 사용하면서 공습에서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CNN은 “푸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거나 푸틴을 고립시키려는 미국 주도의 노력을 막아 온 국가들은 푸틴의 승리를 계기로 러시아와의 결속 안정성을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는 대러 추가 제재 결정 

EU는 푸틴 대통령의 5선이 확정된 직후인 18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과 관련한 새로운대러 제재 30건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EU 내 러시아 동결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 수익을 우크라이나 지원 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이날 회의에서 논의됐다고 전했다. 

Plus Point

최장수 러시아 지도자 된 푸틴

‘21세기 차르(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헌법 개정 등 여러 방법으로 사실상 종신 집권 길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으로, 이때까지 총리 두 번(1999~2000년, 2008~2012년)과 대통령 네 번(2000~2008년, 2012~현재)을 역임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AFP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AFP

푸틴 대통령은 지난 1999년 총리로 임명된 뒤, 같은 해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을 대행했다. 이듬해인 2000년 3월 26일 처음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2004년 재선됐다. 당시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정하고 연속으로 2번만 수행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총리로서 실권을 행사했다.

이후 2009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렸고, 2012년과 2018년 집권 3, 4기를 지냈다. 2020년에는 재차 개헌을 통해 ‘불연속 2회’가 가능하게 하고 “개헌 발효 시점 이전 대통령직 임기는 산정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으로 이전 임기를 ‘제로(0)’ 로 만들었다. 결국 올해(2024년)와 2030년 대권 도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가 만약 오는 2030년 대선에도 출마한다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정권을 쥘 수 있어 러시아 황제 예카테리나 2세(1729~96년)의 재위 기간(34년)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