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3월 4일(이하 현지시각) 미 연방대법원은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자격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혹자는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미국 대법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돼 있고, 보수 성향 6명 중 3명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사람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대법관마다 각기 다른 이유를 제시했지만 판결 자체는 만장일치였다”고 전했다. 왜 그랬을까. 정치적 성향을 기준으로 보면 적어도 3인의 진보 성향 판사가 반대 의견을 개진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간단한 기사 한 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 된 이야기를 살펴야 한다. 독일인은 역사를 ‘이야기(Geschichte)’라고도 부른다.
트럼프와 반란
2020년 11월 대선 패배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선거 사기를 주장했고 급기야 2023년 1월 6일 연방의회가 열린 의사당 안으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폭도가 난입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23년 9월 콜로라도주 유권자 여러 명이 콜로라도주 법원에 트럼프에 대한 경선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1월 원심법원은 “내란 가담자의 출마 자격을 금지하고 있는 수정헌법 14조 3항은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2월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 3항은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란을 선동했으므로 트럼프 후보의 경선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24년 3월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왜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더 먼 과거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미국 혁명전쟁(1775~83) 이후 13개 식민지는 독립을 쟁취했지만 북부와 남부의 경제적 차이로 인해 정치적 갈등이 커졌다. 공업이 발달한 북부 지역은 무역 경쟁자인 영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고, 농업이 발달한 남부지역은 원료 수입자인 영국과 우호 관계에 있었다. 보호무역주의를 둘러싸고 두 지역의 경제적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연방의회의 주도권을 두고 정치적 분쟁이 발생했다. 영토를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으로 확장하던 신생 공화국은 새롭게 편입된 지역을 노예주로 할 것인지 자유주로 할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정치적 갈등에 휩싸였다. 이것은 단순히 노예제도를 둘러싼 윤리적 분쟁이 아니라, 연방의 주도권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이었다.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돈의 불장난’‘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1868년 북부 동맹은 내전 수습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수정헌법 14조는 모두 5개 조항으로 구성됐는데, 1항은 흑인과 그 후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2항은 내란에 가담한 사람들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이를 통해 남부의 하원의원 정수를 축소하는 내용이었으며, 3항은 반란 가담자의 공직 취임을 금지했다. 4항은 북부 동맹의 전쟁 채무를 합중국이 승계하는 반면 남부 연합의 전쟁 채무를 무효화했고, 5항은 수정헌법 14조의 실시 권한을 연방의회에 부여했다.
대법원의 판단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의 다섯 개 조항 중 3항에 집중했다. 동조 3항은 ‘과거에 연방의회 의원, 미합중국 공무원, 주 의회 의원 또는 각 주의 행정공무원이나 사법공무원으로서 합중국 헌법을 수호할 것을 선서하고, 후에 이에 대한 폭동이나 반란에 가담하거나 또는 그 적에게 원조를 제공한 자는 누구라도 연방의회의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 대통령 및 부통령의 선거인, 합중국이나 각 주의 민간 공무원 또는 군사 공무원의 관직에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간단히 말해서 반란 가담자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조 3항에서 ‘대통령’ 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민간 공무원’의 개념에 ‘대통령’이 포함된다고 본다면 트럼프 후보에게 이 조항의 적용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개헌 당시의 의사록, 18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누적된 관련 판례를 망라하면서 수정헌법 14조 전체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즉, 수정헌법 14조는 미국 내전의 산물로서 주의 자치권을 희생하면서 연방의 권력을 확대하고, 연방과 주의 권력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조항이다. 1항에 따르면 이제부터 ‘주정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개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고, … 모든 사람에 대한 동등한 법적 보호를 거부할 수 없게 됐다’고 명시한다.
3항 역시 ‘주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지만, 다른 방법(공직 취임권 제한)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내전 이후 남부 연합이 권력을 되찾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연방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했다. 이 조항은 ‘한때 미국 헌법을 지지하기로 맹세한 후 나중에 미국 정부에 반항한 사람들을 공직에서 제외함으로써 그러한 준동의 부활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3항은 ‘특정 개인에게 예방적으로 심각한 처벌(다양한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자격 박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자격 박탈이 의미를 가지려면(실체적 판단) 특정 개인이 이 규정에 포섭되는지에 대한 결정(절차적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5항은 ‘적절한 입법을 통해 수정헌법 제14조를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의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요약하면, 수정헌법 14조 3항을 시행을 위해서는 연방의회의 입법이 선행돼야 하는데 그러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후보 자격 박탈 여부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와 분리될 수 없는 경제
이런 헌법 논쟁은 순수하게 정치적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은 독립 직후 영국은행을 모방한 연방은행의 신설 여부를 둘러싸고 해밀턴과 제퍼슨 사이에 심각한 헌법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정치와 경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로 입후보 자격이 유지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태평양 변방의 신흥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 후보의 대선공약집인 ‘어젠다 47’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신흥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트럼프 후보는 기존에 주장하던 ‘보호무역 정책’ 이외에도 새롭게 ‘에너지 정책’ 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래의 모든 제조 공장, 데이터센터, 반도체 시설 및 조립 라인이 미국에 건설되기를 원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세계에서 에너지 비용이 가장 적고, 노동력이 우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 전기차 정책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천연가스, 석탄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기 인프라를 현대화해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리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낮추겠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의 값싼 수입품의 홍수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충격을 받고 미국 심장부의 모든 마을과 도시가 파괴되는 동안 바이든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