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일본에서 취업 준비생(취준생)에게 뜨고 있는 직장은 어디일까. 요즘 일본 대학생에게 인기 있는 기업은 그들의 부모 세대인 24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 공무원, 은행, 대기업에 쏠렸던 트렌드에서 벗어나 출판, 게임 등 콘텐츠 관련 업체들의 선호도가 부쩍 높아졌다.
취직․이직 정보 업체 가쿠조가 2023년 4~10월에 가쿠조 주최 이벤트에 참석한 학생 및 ‘아사가쿠내비(취업 조사 기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2025년 4월 사회에 진출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가 가장 선호한 기업은 이토추상사였다. 이어 고단샤, 슈에이샤, 닌텐도, 아사히음료순이다.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도쿄대 출신의 취업 인기 순위는 조금 차이가 났다. 이들은 도쿄대, 액센추어, 소니그룹, 라쿠텐그룹, 일본 IBM 등에 많이 진출했다.

도쿄 소재 간다외국어대 류재광 외국어학부 교수는 “한국과 달리 특정 몇몇 대기업에 쏠리지 않고, 다양한 업종의 우량 기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 졸업생은 임금 수준이 높은 기업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토추상사, 6년 연속 1위 지켜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가쿠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토추상사가 6년 연속 취업 인기 기업 1위 자리를 지켰다. 출판사인 고단샤와 슈에이샤가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4위 닌텐도 등 콘텐츠 기업이 대거 상위권에 들어갔다.
종합상사는 일본 젊은이로부터 수십 년간 꾸준히 인기 높은 업종이다. 대기업 종합상사는 엔화 약세 및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10여 년 전부터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등은 2022 회계연도에 사상 최고 이익을 기록했다. 이토추상사는 1858년 도매업으로 출발한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상사로, 1950년 상장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이토추재벌의 핵심 기업으로 섬유 재벌로 꼽혔다. 중국 등 경쟁국에 밀려 섬유업 경쟁력이 떨어지자, 식료, 생활 자재, 정보·통신, 보험, 금융 등 비자원 분야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연 매출은 10조엔(약 89조원) 선, 직원은 11만 명이 넘는다.
이토추상사는 2013년, 오후 8시 이후 잔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실시,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아침형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사원의 노동 방식 개혁에도 적극적이다. 이런 근무 시스템 혁신에 힘입어 사내 출생률이 2021년에 1.97을 기록, 도쿄도 전체 1.08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 기업, 취업 선호도 높아져
‘2025년 졸업 예정자 취업 인기 기업 랭킹’ 상위 10사 가운데 출판사가 네 개에 달했다. 2001년 공식 조사 이후 출판사들이 동시에 최상위권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닌텐도는 4위에 올라 콘텐츠 파워가 있는 기업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편리하게 볼 수 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 콘텐츠 인기가 높아졌고, 대박을 내는 콘텐츠가 매년 탄생하고 있는 덕분이다. 2위를 차지한 고단샤는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 출판사다. 만화부터 실용서, 학술서까지 다양한 서적을 발행한다. ‘주간 소년 매거진’ ‘모닝’ ‘주간현대’ ‘FRIDAY’ 등 30여 종 이상의 잡지를 낸다. 창업자 노마 세이지(野間淸治)가 1909년 ‘대일본 웅변(雄辯)회’를 설립하고, 변론 잡지 ‘웅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회사 명칭 ‘고단(講談)’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2000년대 초반 잠시 적자에 빠졌으나 2015년부터 전자 서적 등 디지털 판매와 국제 저작권료 증가에 힘입어 2021년에 매출 1701억엔(약 1조5000억원), 순이익 155억엔(약 1380억원)을 기록하며 회복세로 돌아섰다.
슈에이샤(集英社)는 1925년 쇼가쿠칸(小學館)의 오락 출판 부문에서 독립한 출판사다. 회사명은 에이지(英知·지혜가 모임)에서 따왔으며, 1949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주간 소년 점프’ ‘주간 플레이보이’ ‘non-no’ 등 인기 잡지를 보유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매출은 3000억엔(약 2조6000억원), 순이익은 160억엔(약 1400억원) 정도다.

취업 인기 기업, 20년 전과 달라져
취준생의 보호자 세대로 볼 수 있는 2001년 졸업 대상자의 취업 인기 순위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소니, 산토리, NEC(일본전기), 아사히맥주, NTT, 기린맥주, 후지쓰, NTT데이터, 세키스이하우스, 모리나가유업순이었다. 소니, NEC, 후지쓰 등 전자·IT 업계를 선도했던 일본 제조업 대표 기업들이 특히 각광받았다. 이들 기업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24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 수준이다.
부모 세대 관점으로 요즘 젊은이의 취업 활동을 조언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상철 간사이대 상학부 교수는 “전국 대학 수준에 따라 취준생의 선호 기업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종합상사, 금융업, IT 기업 인기는 여전하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인지 호텔 등 레저 업계와 언론사의 인기도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도쿄대 출신, 공무원보다 기업 선호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도쿄대 출신의 취업 인기 기업 및 기관도 2023년에 상당히 바뀌었다. 2022년에는 전년에 이어 도쿄대 1위, 도쿄대 의학부 부속병원이 2위 자리를 지켰다. 2023년에는 도쿄대, 액센추어, 소니그룹, 라쿠텐그룹, 일본 IBM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예전에 압도적으로 졸업생이 많이 진출했던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관공서 가운데 가장 높은 외무성 순위도 13위에 그쳤다. ‘도쿄대 졸업=관료’ 이미지는 먼 얘기가 됐다.
컨설팅 회사들의 인기는 여전히 높았다. 액센추어, 맥킨지앤드컴퍼니, 노무라종합연구소, PwC컨설팅, 언스트앤드영(EY) 등 5개 컨설팅 업체가 20위권에 포함됐다. 입사 후 특정 분야에서 프로 전문가로 자리 잡을 기회가 많은 컨설팅 업계와 성취욕이 강한 도쿄대 출신자의 수요가 잘 맞아떨어진 덕분으로 풀이된다.
2022년에 랭킹에 들어가지 못한 일본 IBM과 리쿠르트가 각각 5, 10위로 급등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19년에 도쿄대와 일본 IBM은 양자 컴퓨팅 기술 혁신과 실용화를 목표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어 2021년에는 미래 양자 컴퓨팅 기술 연구개발(R&D)을 진행하기 위한 하드웨어(HW) 실험센터를 도쿄대 캠퍼스에 개설하는 등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리쿠르트는 2022년 도쿄대에서 개설된 ‘메타 캠퍼스 공학부’의 핵심(플래티넘) 법인 회원으로서 공학 분야의 DEI(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산학 협력 덕분에 두 회사가 도쿄대 졸업자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