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과 납품 단가를 지원하고, 할인 규모를 확대하면서 사과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金사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사과 가격에 소비자들은 수입하면 사과 가격이 내릴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하지만, 정부는 ‘당장 수입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과 수입 논의는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사과 수입 논의는 1989년 호주와 처음 시작했다. 이후 일본, 미국, 독일 등이 수입 논의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모두 수입의 기본 요건인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수입 위험 분석 절차는 외래 병해충의 국내 유입을 막기 위한 검역 체계를 마련하는 절차다.
한 종을 수입하기 위해선 200여 종 병해충에 대한 안전성 평가와 명확한 검역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외국산 과일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병해충이 함께 들어와 국내 과수원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이면에는 국내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의지도 담겨 있다. 가격이 저렴한 수입 사과가 밀려 들어오면 국내 사과 농가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사과 농가가 작목을 전환해 국내 사과 생산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 가격과 수입 논의 현황을 문답 형식으로 하나씩 확인해 봤다.
국내 생산량이 부족하면 수입을 하면 되지 않나. 왜 사과를 수입하지 않는가.
정부는 사과 수입을 위한 검역 절차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외국에서 사과를 수입하면서 병해충이 같이 들어와 국내 사과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사과 농가 보호라는 목적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2023년 기준으로 보면 사과는 모든 과일 중 재배 면적이 가장 넓은 과일이다. 사과를 자유롭게 수입하면 국내 농가가 타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검역 절차라는 것은 무엇인가.
과일을 수입하려면 국제 협약과 국내법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제식물보호협약(IPPC)과 세계무역기구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 협정(WTO SPS)은 과학적 증거에 따라 검역 절차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국내법으로는 ‘식물방역법’에 수입 위험 평가와 관리 방안이 명시돼 있다. 국제 협약과 국내법의 핵심은 생과실과 열매채소는 원칙적으로 수입을 금지하되, 하려거든 병해충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한 후 수입하라는 것이다. 절차는 수출 희망국의 요청 접수→수입 위험 분석 절차 착수→예비 위험 평가→개별 병해충 위험 평가→위험관리 방안 작성→수입 허용 기준 초안 작성→수입 허용 기준 입안 예고→수입 허용 기준 고시 및 발효 등 8단계를 밟아야 한다.
현재 한국에 사과 수출을 희망하는 나라는 어디이며, 협의는 얼마나 진행이 됐나.
구체적인 수입 절차가 진행 중인 나라는 일본, 뉴질랜드, 독일, 미국 등 네 개 나라다.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중국,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등 일곱 개 나라는 한국으로의 사과 수출을 희망한다는 입장은 밝혔지만,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착수하진 않았다. 절차가 가장 많이 진행된 나라는 일본으로 5단계인 위험관리 방안 작성 단계에 들어가 있다. 7~8단계는 국내 행정적 절차라서 6단계까지만 종료하면 수입 시행 단계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5~6단계 절차가 언제 끝날지 알긴 어렵다. 일본이 사과 수입 검역 절차 5단계에 들어온 게 2011년이다. 13년 이상 협상 진전이 없다는 얘기다. 현재 일본은 사과보다 ‘배’를 우선순위에 두고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다. 일본이 수입 품목 중 사과를 후순위로 미룬 것은 자국 내 나방 문제가 번지면서 이를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과 수입 논의를 2008년부터 시작한 뉴질랜드와 2016년부터 시작한 독일은 현재 3단계 예비 위험 평가 진행 단계에 머물러 있다. 1993년부터 사과 수입 논의를 시작한 미국은 2019년 수출국 제공 자료 검토를 완료하고 3단계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일시적으로 일정량을 긴급 수입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수입 위험 분석 절차는 ‘식물방역법령’을 준수해야 하며, 절차를 임의로 생략할 수 없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공식 입장이다. 분석 절차의 성격상 단계별 검토를 마쳐야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일부 단계를 간소화하는 것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통 경로를 제대로 파악하고, 외부 유출을 막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파리나 나방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이를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과일을 일시적으로 수입한 사례는 없나.
농식품부는 “없다”고 했다. 해외에도 수입 검역 절차를 건너뛰고 일시적으로 수입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AI(조류인플루엔자)로 수급 우려가 커지자, 계란은 신속하게 수입을 결정했는데, 사과와 상황이 어떻게 다른가.
계란과 같은 축산물도 농산물처럼 수입을 하기 위한 위험 분석 8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계란의 경우, 이미 위험 분석 절차를 마친 상태였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계란 수입 위험 분석이 미국과는 1996년 8월, 스페인과는 2008년 7월, 태국과는 2017년 5월 마무리됐다. 평시에 수입을 안 하는 이유는 수익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신선 식품인 계란은 유통기한이 한 달밖에 안 돼, 외국에서 들여오려면 비행기로 공수해야 한다. 저렴한 상품인 계란을 물류비가 많이 드는 항공으로 수입하면 수익이 나기 어렵다. 2023년 외국산 계란을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수입사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송비 등 경비를 부담해서 가능했다.
당시 정부가 신속하게 수입 검역 절차를 마쳤다고 홍보하지 않았나.
수입을 하기 위한 ‘수입 위험 분석 절차’ 를 신속하게 처리했다는 뜻이 아니라,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통관과 검역 절차를 최대한 신속하게 했다는 의미라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농산물 수입 허용 절차는 얼마나 걸리나.
지금까지 수입이 허용된 76건은 평균 8.1년이 걸렸다. 가장 빨리 완료된 사례는 중국산 체리로, 3.7년이 걸렸다. 우리 농산물을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상대국의 위험 분석 절차를 거친 경우, 평균 7.8년이 소요됐다.
외국산 사과의 국내 유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무엇인가. 예방법은 없나.
외래 병해충이 유입돼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의 견해다. 타 작물로 피해가 확산해 방제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와 관련해선 과실파리류나 잎말이나방류가 위험 병해충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사과 생산국이면서 수입국이기도 한 미국은 2015년 ‘지중해과실파리’가 유입돼 농작물 피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망고나 오렌지, 포도 등 수입 과일들도 과실파리나 잎말이나방류가 함께 유입될 수 있는 품목이다. 현재 정부는 이들 품목에 대해서 증열처리나 훈증, 저온 처리 등의 방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사과 병해충도 이러한 방식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입 가능성이 있는 모든 병해충에 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정부가 사과 수입을 추진할 의지는 있나.
사과 등 과일 수입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정부 의지다. 그동안 사과 농가들을 고려해 수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부는 사과 가격이 급등하자 수입하는 방안까지 열어두고 대책을 검토 중이다. 다만, 수출입 논의는 수요자 측의 입장만으로 신속하게 진행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수출하려는 나라도 통관 단계에서의 통상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위험 분석 절차에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농식품부 관계자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