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불리는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는 등 국제 유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최근 과일값을 중심으로 튀어 오른 소비자물가는 국제 유가란 복병까지 더해져 정부의 걱정거리로 부상했다. 4·10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2분기 전기료가 동결된 상황에서 한국전력의 적자 문제도 다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잠시 잠잠해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하 인플레)이 다시 최대 경제 현안으로 부각될 조짐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3월 19일(이하 현지시각) 4월 인도 WTI는 배럴당 83.4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 27일(85.54달러)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후 다시 안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80달러 선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WTI 가격이 8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11월 초 이후 처음이다.

올 들어 19% 뛴 국제유가… 불안한 물가 곡선

지난해 12월 중순 배럴당 68.61달러까지 떨어졌던 WTI값은 올 들어 19%가량 뛰었다. 최근엔 러시아 정유 시설이 우크라이나의 무인기(드론)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에 유가가 뛰었다. 여기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전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130만 배럴 증가할 것’이란 전망까지 하면서 이런 급등세를 부추겼다. IEA가 전망한 올해 수요 증가 규모는 기존의 ‘하루 120만 배럴 증가’ 전망치에서 상향한 것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여타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감산이 예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어, 연말까지 원유 시장에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며 “미국의 양호한 경제성장, 중국의 경기 회복 등으로 전 세계 원유 수요 전망도 상향됐다”고 했다.

국제 유가의 흐름과 비슷하게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덩달아 내림세를 그리다가, 최근 반등하는 모습이다. 2%대로 잡히는가 싶더니, 물가 상승률은 32년 만의 최대 폭인 과일 물가 폭등 충격으로 지난 2월 다시 3%대로 올라버렸다. 당장 과일값을 잡을 묘수가 없는 상황에서, 국제 유가 상승 소식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의 1~3개월 전 선행 지표로 여겨지는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는 지난해 11·12월 두 달 연속 떨어졌다가 올해 1월(2.5%)·2월(1.2%) 다시 상승세다.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 영향이다. 정부의 ‘3월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을 통한 물가 진단 또한 당초 ‘둔화’에서 ‘둔화 흐름 다소 주춤’으로 표현이 바뀐 만큼, 위기의식이 고조된 분위기다. 기획재정부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일몰이 도래하는 다음 달 말 또다시 연장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유가가 4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3월 1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4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3월 1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게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2분기 전기료 '동결'인데 유가 급등 복병

한전의 적자 문제도 물가 못지않게 우려 거리로 또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전은 2분기(4~6월)에 적용할 전기 요금을 현 수준으로 동결했다. 전기 요금을 구성하는 연료비 조정 단가를 현재와 같은 ㎾h㎾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가정용에 적용되는 전기 요금은 사실상 3분기째 그대로다. 지난해 전기 요금은 1·2분기엔 올랐고, 3분기에는 동결됐으며, 4분기에는 대기업에 적용하는 산업용만 ㎾h㎾h당 10.6원 인상된 바 있다. 문제는 그간 누적돼 온 한전의 재정난이다. 지난해 하반기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에 힘입어 겨우 ‘흑자’를 기록하고 올해 전망도 긍정적인 한전이지만, 누적 적자가 43조원에 달하는 구조를 해소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를 타개할 전기 요금 현실화는 총선 이후인 3분기에나 기대해 볼 법한 상황에서, 만약 그전까지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아 전력 도매가격 상승 등을 부추긴다면 한전엔 위기가 될 수 있다.

산업부는 단순 전기 요금 인상뿐 아니라, 추후 원가에 전기 요금을 연동하는 방안 등이 담긴 요금 체계 개편을 추진할 방침이다.또 정부로부터 ‘전기위원회’를 독립시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운영하는 것이 알맞은지에 대한 연구 용역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Plus Point

3%대로 다시 오른 물가
정부 물가 잡기 ‘총력전’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던 물가가 2월 들어 3%대의 상승률로 다시 튀어 오르면서, 최근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8%, 11월 3.3%, 12월 3.2%, 올해 1월 2.8%로 내림세를 그리다가 2월 3.1%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과 더불어, 과일 가격 급등이 그 요인으로 꼽혔다.

정부는 물가 잡기에 그야말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서민 체감도가 높은 과일·채소 등 ‘먹거리’ 물가가 문제 된 터라 더욱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물가가 4월 총선의 변수로 떠오른 모양새다.

정부는 1500억원 규모의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농산물 납품 단가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해, 지원 품목·금액을 확대한 것이다. 또 전국 유통 업체에서 농축산물을 구입할 때 최대 1만~2만원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혜택도 늘리기로 했다. 

세제 지원도 동원됐다. 체리·키위·망고스틴 등 과일 총 29종에 대해선 물량에 상관없이 모두 관세 인하를 적용하는 것이다. 바나나·오렌지 등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직수입 물량도 확대하기로 했다. 천정부지로 값이 뛴 사과·배 등 과일을 대신해 소비할 수 있도록, 수입 과일 공급을 확대하자는 차원이다.

과일뿐 아니라 최근 상승세를 보이는 석유류 가격 안정에도 힘쓸 방침이다. 정부는 4월 말 일몰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를 또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고, 전기 요금을 비롯한 모든 공공요금에 대해서는 상반기에 동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물가 안정 정책 발표(3월 15일) 이후 3월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3월 하순 대파 소비자 가격은 1㎏에 2729원으로 2월 하순보다 37.6% 하락했다. 사과 가격은 이달 하순 10개에 2만4528원으로 전달 하순과 비교해 16.3% 내렸고, 배는 10개에 3만8741원으로 6.1%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