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① 올해 초 동체에 구멍이 뚫려 비상 착륙한 항공기 사진이 국내외서 화제가 됐다. 이후 이륙한 지 얼마되지 않은 비행기가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착륙하는 영상이 주목받았고, 비행 중 외장 패널이 떨어진 채 착륙한 항공기에 대한 뉴스도 나왔다. 이들은 모두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기체들이었다.동체에 구멍이 뚫려 비상 착륙한 보잉 737 맥스 기종은 2018년부터 두 차례 추락사고로 총 346명의 탑승자가 전원 사망하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세계 항공기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보잉은 어느새 경쟁사 에어버스에 추월당했다. 보잉기 인도 물량은 2021년 340대, 2022년 480대 수준이었지만 같은 기간 에어버스는 각각 609대, 661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보잉이 수주한 신형 비행기 주문 대수는 1456대, 에어버스는 2319대였다.
잇단 사고 여파로 미국 보잉의 수뇌부도 줄줄이 자리를 떠나게 됐다. 3월 25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보잉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인 데이비드 칼훈은 연말 사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잉 이사회의 래리 켈너 의장도 재선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사측에 밝혔고, 상용 항공기 부문의 회장 겸 CEO인 스탠 딜도 자리를 스테파니 포프에게 물려주고 은퇴할 예정이다.
필자들은 “책임감, 안정성, 안전에 대한 헌신을 핵심 가치로 삼아 항공 산업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보잉에 주문한다. 지금과 같은 느슨한 기업 문화가 계속되면 쇠퇴가 불가피하다는 게 필자들의 경고다.
커지는 보잉의 위기는 할리우드에서 꾸며낸 항공 스릴러를 닮아가고 있다. 최근 상용 비행 중 동체 일부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에 더해, 미(未)인도 항공기에서 잘못 뚫린 구멍이 발견되는 걱정스러운 일이 있었고, 검사관이 공급 업체의 작업에서 ‘과도한 결함’을 발견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그런 문제들로는 충분한 악재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지난 2월에는 연방항공청(FAA)이 보잉의 기업 문화에 대한 냉혹한 검토 결과를 전달하면서 50가지 이상의 안전 관련 변화를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보잉은 90일 이내에 품질 관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보잉은 책임을 인정하면서, 위험할 만큼 빠른 제조 속도를 늦추고, 개선을 약속했다. 최고경영자(CEO) 데이브 칼훈(Dave Cal-houn)은 미국 상원의원들을 만났고, 보잉 공장은 하루 동안 생산을 중단하고 품질 관리에 집중하는 ‘스탠드 다운’ 행사를 진행했으며, 최근 실적 발표에서 안전, 품질, 신뢰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잉은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잉은 과도하게 느슨해진 문화를 단단히 조여야 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조직과 그 내부 부서는 엄격한 조직 또는 느슨한 조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엄격한 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조직에서는 사람과 관행, 리더십이 일반적으로 조정과 효율, 자기 규율을 통해 질서를 만들어낸다. 관행은 표준화된 공식 채널을 통해 신중하게 전달되며, 직원들은 규칙을 따르고 실수를 방지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조직은 종종 계급에 따른 피라미드 같은 구조를 나타내며, 중앙 집중적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최고 경영진이 지휘와 통제권을 갖는다. 이를 통해 규율에 따른 행동으로 조직의 우수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엄격히 통제된 환경을 조성한다.
반면 느슨한 문화는 자유를 수용하고 관용을 베풀며 창의성을 키우는 등 개방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관행은 표준화 정도가 낮아서 유연성, 비공식성 그리고 실험이 더 많이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직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도록 독려를 받는다. 느슨한 문화를 가진 조직은 일반적으로 리더가 협력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현재 모습에 도전하는 더 평면적이고 분권화된 구조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환경이 요구하는 적절한 수준의 엄격함 또는 느슨함에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정렬 과정에 문제가 생겨 문화적인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② 몇 년 전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직이 지나치게 엄격해질 수 있고, 그 결과로 혁신을 억제할 수 있다. 또는 ③ 테슬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조직이 너무 느슨해져서 비효율성이나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보잉에는 문화 전환이 필요하다. 보잉의 운영 환경은 다른 고위험 산업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지만, 그런 산업의 문화적 특성에서 벗어나 너무 느슨해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공학 기술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보잉은 세금 공제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옮기면서 고위 경영진과 수많은 엔지니어 및 직원 사이에 2000마일(약 3218㎞)이 넘는 지리적 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2022년에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으로 또 한 번 이전을 발표했다. 이러한 물리적 분리는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규칙을 모니터링하고 시행하는 능력을 제한하여 기업 전체를 일관성 있게 조율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
책임감 부족은 공급 업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보잉은 생산의 대부분을 다양한 하청 업체에 아웃소싱했다. 다시 말하지만, 보다 광범위하고 분산된 네트워크로의 전환은 느슨함을 조장하고 규정을 감시하고 시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보잉 내부의 혼란도 문화적으로 느슨해지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년 동안 5명의 CEO가 교체되는 등 잦은 리더십 교체로 인해 엄격한 통제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리더십의 잦은 교체는 2018년 라이온 에어 추락 사고 이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 경영진의 관심이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보다는 신속한 단기적 해결에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 문화가 잘못 정렬되었을 때 문화를 전환하고 재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보잉에 SECURE 모델을 도입하여 지나치게 느슨한 문화에 더 많은 책임을 도입할 것을 조언한다. SECURE는 이 약자는 명확한 기대치 설정(Setting clear ex-pectations), 구조 확립(Establishing struc-ture), 의사결정 중앙집중화(Centralizing decision-making), 모니터링 강화를 통한 감독 유지(Upholding oversight through increased monitoring), 규칙 시행 보장(making sure Rules are Enforced)을 의미한다.
보잉은 또한 안전 규범 위반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근로자에게 보상을 제공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FAA 보고서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 중 하나는 안전 문제를 제기한 근로자가 보복 당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제재는 안전보다 침묵과 신속한 생산을 점점 더 중요시하는 기업에서 안전 관련 문화가 느슨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잉은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문화적 나침반을 재조정해야 한다. 책임감, 안정성, 안전에 대한 헌신을 핵심 가치로 삼는 것은 항공 산업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안전 조치를 강화하며 조직의 우수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보잉이 지금과 같은 움직임을 계속하면 필연적으로 조직과 경쟁력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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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1월 5일 미국에서 알래스카 항공 소속 보잉 737맥스9 기종 여객기 동체 일부에 구멍이 나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 우려가 커졌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공항에서 이륙한 지 20분 만에 비상구를 막아놓는 부품 ‘도어플러그’가 떨어져 나가며 비상 착륙한 것.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예비 조사 결과 비행기 조립 시 문을 고정하는 볼트 네 개가 누락됐다고 발표했다.
② 2017년 4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이 아무 잘못도없는 승객을 기내에서 질질 끌어내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전 세계적인 공분(公憤)을 샀다. 정원 초과를 이유로 승객인 베트남계 의사를 강제로 끌어내린 것. 승객이 피를 흘리며 짐짝처럼 끌려 나가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이 회사 시가총액 수천억원이 증발했다. 다수의 전문가는 고객 만족보다 비용감축에 집중하는 등 실적 중심의 기업 문화가 승객 경시로 이어진 것을 문제의 본질로 봤다.
③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생각이 곧 비전과 목표가 되는 회사다. 톱다운 방식의 의사 결정과 기업의 리스크 관리의 한계가 크다 보니 외적 성장과 별개로 기업 문화는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