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의 변화를 촉진시킬 밸류업(val-ue-up·가치 상승) 프로그램도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2월 말 밸류업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공개된 직후에는 기업의 자율성에만 의존한다는 한계점이 노출됐다. 하지만 이후 금융 당국이 밸류업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사는 거래소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외국인에 이어 기관의 수급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증시 여건은 지속 개선되고 있다. 증시의 활동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래 대금(일평균)의 경우 1월에는 19조원 수준에 머물렀지만, 2~3월 들어서는 22조~23조원으로 확대되어 지난해 7월 ‘서머랠리(여름철 강세장)’가 나타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투자자들은 다시 증시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높이며 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증시를 둘러싼 환경이 우호적인 시기일수록 수면 아래 잠재해 있는 위험 요인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 내 위험 자산 선호도가 높아지고 주요국 주가지수가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위험자산이 있는데, 바로 부동산이다. 국내에서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에도 여전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둘러싼 우려가 상존하고 있으며, 해외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부실 금융권엔 부담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공개된 점도표는 현재 금리 수준(5.25~5.5%)에서 연내 0.25%포인트씩 세 차례 정도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최초 인하 시점은 기존 상반기에서 6월 이후로 늦춰진 상태다. 중요한 점은 주식 같은 금융자산의 경우 향후의 기대감이 투영되기 때문에 금리가 인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격에 미리 선반영하지만, 부동산의 경우 실수요자가 참여하는 시장의 특성을 갖고 있어 절대 금리 수준이 충분히 낮아지기 전까지는 의미 있는 가격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한 코로나19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재택근무가 보편화됨에 따라 오피스 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공실 리스크가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
이러한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위험은 해외 주요 금융권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미국의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은행과 일본의 아오조라(Aozora)은행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과 관련된 대규모 손실로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유럽의 도이체방크 역시 상업용 부동산 관련 손실을 대규모로 인식했으며, 스위스 은행인 줄리어스 베어는 부동산 대출 부실로 약 9000억원의 충당금을 일시에 적립했다. 202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미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5600억달러(약 75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업용 부동산 저당증권(CMBS) 연체율이 6%대로 상승하는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부실 우려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한국은 부동산 PF가 변수
국내 금융권 또한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내는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를 중심으로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를 지속 늘려 왔다. 과거 저금리 환경에서 오피스 빌딩, 호텔 등에 투자해 안정적인 배당(혹은 이자) 수익을 확보하고, 매각을 통해 차익을 남길 수 있었기에 상업용 부동산은 대표적인 대체 투자 수단으로서 각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규모는 각각 10조원, 20조원을 상회한다. 자기자본 대비 비중은 20% 수준이다. 은행과 보험사의 경우 대부분 선순위 대출 위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식의 투자를 하는 반면, 증권사는 중순위와 후순위 비중이 높고 자기자본 투자, 펀드 형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를 해왔다. 이로 인해 지난해 대형 증권사들은 상업용 부동산을 포함해 해외 대체 자산에서 대규모의 부실이 발생하면서 경영 실적에 악영향을 줬다. 문제는 금리 수준이 충분히 낮아져야 상업용 부동산 리스크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야 미국의 금리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고, 인하 속도도 당초 기대만큼 빠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상업용 부동산 이슈는 국내외 금융권과 금융시장에 지속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과 대칭되는 국내 리스크로는 부동산 PF를 꼽을 수 있다. 은행과 보험사를 포함해 사실상 국내 모든 금융기관은 부동산 PF에 대한 ‘노출도(익스포저)’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주거용보다는 상업용 PF 비중이 높고 선순위보다 중·후순위로 주로 참여한 증권사와 캐피털사, 저축은행의 리스크가 월등히 크다. 2023년 9월 말 기준 전 금융권의 PF 대출 잔액은 135조원에 달한다. 이 중 은행과 보험사 비중이 65%이고 나머지가 증권사, 저축은행, 캐피털사 등으로 구성된다. 금융권 전체 PF 대출의 연체율은 2.4%로 높지 않으나 저축은행과 캐피털사는 4~5%로 상대적으로 높고 증권사는 무려 13.9%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주요 증권사의 경우 부실 사업장의 PF 대출 및 보증과 관련해 대규모의 손실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금리 낮아져야 숨통
해외 상업용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국내 부동산 PF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금리 수준이 충분히 낮아져야 한다. 이에 더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담이 완화하고 공사비가 하락해 PF의 사업성 또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고금리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금융권의 건전성이 위협받고 중소형 건설사의 부실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 시 실물경기 회복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물가 우려에도 미국의 S&P500 지수는 최고치를 지속 경신하고 있으며, 일본 증시 역시 금리 인상에 나섰음에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중국 또한 증시 부양책 효과로 부진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밸류업 훈풍에 외국인과 기관에 이어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정작 기대했던 글로벌 금리 인하와 유동성 확대가 지속적으로 연기되고 있음에도 서둘러 랠리에 동참하지 않으면 더욱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현재의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역설적으로 수면 아래 감춰진 위험 요소들을 차분히 살펴봐야 한다. 증시와 부동산이 항상 동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흔들리거나 앞서 나가면 나머지 하나는 시차를 두고그 뒤를 따라간다. 주식과 부동산 둘 중 어느 방향이 맞는지는 아직 섣부르게 결론지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