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입법회에서 의원들이  홍콩판 국가보안법 통과 직후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홍콩 입법회에서 의원들이 홍콩판 국가보안법 통과 직후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 손뼉을 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홍콩이 반역·내란 등에 대해 최고 종신형을 선고하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면서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아시아 금융 허브’ 위상을 사실상 스스로 내려놨다. 중화권에 속해있으면서도 자유롭고 개방적인 경제체제라는 홍콩만의 매력을 포기한 것이다. 홍콩이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경제를 뜻하는 ‘중국화’하면서 글로벌 자금의 홍콩 이탈 속도가 한층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월 19일 홍콩 입법회(의회) 주석과 의원 88명은 홍콩판 국가보안법 ‘기본법 제23조’ 를 입법화하는 ‘수호국가안전조례’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중국은 이듬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제정해 시행해 왔는데, 홍콩이 이를 보완하는 법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통과시킨 것이다. 법안은 나흘 뒤인 3월 23일부터 즉시 효력이 발생했다.

기본법 제23조는 국가 분열과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 결탁 등 39개 안보 범죄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최대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다. 특히 외국 세력과 공모해 범죄를 저지를 경우 독립 범행보다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가령 허위 사실 공표처럼 비교적 가벼운 죄질이어도 외부 세력과 공모했다면 10년 형을 받을 수 있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 위해 공공 인프라를 손상하면 독립 범행일 경우 최고 20년 징역형을 받지만, 외부 세력과 함께했다면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외부 세력의 정의가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외부 세력은 외국 정부와 정당, 다국적기업과 국제기구 등 ‘외국 정부 희망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있는 이들을 말한다. 홍콩반정부 시위가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직간접적 지원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시각이 반영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친(親)중국 성향의 존 리 홍콩행정장관은 “새로운 법은 간첩 활동이나 홍콩을 향한 음모, 적들의 피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끊어낼 수 있다”며 “(법이 통과된) 오늘은 홍콩에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한때 세계 1위 경제 자유지역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 홍콩의 ‘아시아 금융 허브’ 위상은 수직 낙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홍콩은 197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본격적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하며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성장했다. 1997년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을 때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덕분이었다. 중화권에 속해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외환 거래와 유연한 노동시장, 투자를 끌어들이는 최소한의 규제와 낮은 세율, 외국인 친화적인 환경에 전 세계 큰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보수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집계하는 경제자유지수에서 항상 1위를 유지할 만큼 높은 경제적 자유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홍콩의 자유는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국이 민주화 시위 제압을 위해 홍콩보안법을 제정, 과도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었다. 여기에 같은 해 미국이 1992년부터 실시해 온 ‘홍콩정책법’ 폐지까지 맞물리면서 홍콩의 명성이 급격히 흔들리게 됐다. 홍콩정책법은 관세와 투자,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 본토와 다른 특별 대우를 홍콩에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 봉쇄, 중국 경기 둔화 등 다른 악재까지 겹겹이 쌓였다.

글로벌 금융 기업들은 돈을 싸 들고 서둘러 홍콩을 떠나고 있다. 2019년 최고 2만8000대에 달했던 항셍지수는 현재 40% 이상 급락했다. 이에 따라 세계 4위의 주식시장이라는 지위는 지난 1월 인도로 넘어갔다. 기업공개(IPO)도 어려워졌다. 지난해 홍콩 증시 IPO는 전년 대비 56% 급감한 460억달러(약 61조7918억원)로, 2001년(62억달러)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가장 적은 자금을 조달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시티그룹 등은 인력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금융 부문이 2022년 홍콩 국내총생산(GDP)의 약 23%, 고용의 7.5%를 차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둔화는 전체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세계 우려에도 中 "외국 투자자 보호 효과"

이 같은 추락 속도는 홍콩판 국가보안법시행으로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민감한 정보를 자주 다루는 금융 전문가들은 (홍콩판 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이 전통적인 보안 분야를 넘어 경제, 사회, 기술 발전을 포괄하는 중국의 광범위한 정의를 반영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며 “일부 외국 기업의 리더들 역시 새로운 법을 준수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해 투자자들이 자본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요하네스 핵 독일상공회의소 회장은 “홍콩에 대한 외부 인식이 바뀌었다”며 “여전히 중국 본토와 구분되는 곳이긴 하지만, (홍콩 당국이) 국가 보안에 집중한다면 (중국과) 구분이 점점 더 모호해질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자유주의 국가들도 일제히 홍콩판 국가보안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이번 법안은 한때 개방적이었던 홍콩의 폐쇄성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많은 문구와 범죄가 빈약하게 정의됐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안을 분석 중이며, 미국 국민뿐 아니라 미국 국익 차원에서 어떤 잠재적 위험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고 했다. 영국 외교부도 “국가 안보와 외부 간섭에 대한 광범위한 규정이 홍콩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성명을 내놨다.

반대로 중국은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해외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며 환영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국가 안전(안보)을 지키는 것은 곧 일국양제를 지키는 것이고, 홍콩의 번영·안정을 지키는 것이며, 외국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며 “홍콩의 민주·자유를 지키는 것이자, 홍콩 전 주민의 인권과 근본 복지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홍콩 보안법 시행에 각국 ‘여행 주의보’… 관광도 타격

안개에 싸여 있는 홍콩 국제금융센터(IFC). 사진 로이터뉴스1
안개에 싸여 있는 홍콩 국제금융센터(IFC). 사진 로이터뉴스1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가 홍콩 여행 주의보를 발령하고 나섰다. 반역죄와기밀누설죄 등의 기준이 광범위하고 모호해 여행객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 정보기관인 국가안정국의 차이밍옌 국장은 3월 21일 대만 입법회에 출석해 “홍콩에 입국하려면 개인 안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입국 과정에서 구금이나 심문을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전에 홍콩에서 조사받았거나 소셜미디어(SNS) 등에 중국 비판 글을 올린 적이 있다면 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차이 국장의 설명이었다.

호주 정부도 다음 날 홍콩 여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호주 측은 “홍콩 국가보안법이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어 여행자가 의도치 않게 법을 위반할 수 있다”며 “법 위반 시 기소 없이 최대 16일 동안 구금할 수 있고, 48시간 동안 변호사를 접견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봉쇄로 인해 타격을 받았던 홍콩 관광산업이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망가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BBC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을 찾은 관광객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발생 이전인 2019년의 60% 수준에 불과했다.